여름 338

짧은 시간의 장벽, 장미산성_20200829

변화무쌍한 날씨답게 이내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을 떨군다. 온몸이 젖은 들 대수롭지 않다 여겼건만 갈피를 잡지 못한 천둥소리에 떠밀리듯 걸었던 길을 되밟는다. 인적이 전혀 없는 길을 따라 평원을 휘몰아치는 남한강 물줄기를 제대로 가슴에 담지 못했는데... 고즈넉한 산사의 길을 따라 그 끝이 궁금했는데... 나처럼 힘겹게 산을 이고지고 올라선 바람의 연주를 채 끝까지 듣지 못했는데... 허공 어딘가에 숨은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음에 다시 오라 한다. 다시 오는 건 아깝지 않다만 지금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회가 아쉽다. 자연과 시간은 항상 내 주위에 있건만 미묘한 감각은 제각각이지 않은가. 초행길이라 지도에 표기된 봉학사 바로 아래 주차한 뒤 길을 걸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오를수록 안개가 ..

남한강의 곁가지, 장자늪_20200829

충주로 내려오는 길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폭우가 쏟아졌고, 서충주신도시에 도착하여 커피 한 잔 내릴 무렵 천의 얼굴을 가진 하늘에서 무자비한 구름이 창궐했다. 꼭 들러야 되는데 늘 지나쳐 왔던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에 기필코 오겠다는 다짐으로 도착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휴관이라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고구려란 이름에도 흥분되는 걸 보면 한민족의 숨겨진 기백과 한이 이 나라에 서려 있고, 화려한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 시간은 영원히 이 땅과 가슴속에 남을 거다. 코로나19와 피서철로 인해 국내 여행객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관심의 뒷전에 밀린 곳은 어쩌다 들리는 발자국 소리조차 굉음으로 들렸다. 코로나19로 임시휴관이라 아쉽지만 어차피 충주는 만만한 거리에 자주 오는 여행지라 다음을 기약하..

미호천의 시작, 망이산성_20200822

왜 그리 산성을 찾아다니세요? 근래 들어 종종 받는 질문인데 별 다른 의미 없어요 라고 하면 당연히 안 믿는다. 그렇다고 많은 산성을 오른 건 아닌데 최근 몇몇 사례가 있다 보니 그런 질문을 받는 건 당연지사. 여주 파사산성, 담양 금성산성, 오산 독산성, 안성 죽주산성, 이번에 찾은 음성 망이산성 정도 뿐인데?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산은 힘든데 산성은 상대적으로 큰 힘 들이지 않고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파수가 되려면 높거나 사방이 트인 곳이 제격이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낮으면서도 사방이 트인 곳에 산성을 쌓아 주변 동태를 살피며 때에 따라 침략에 대한 방어를 해야 하는지라 지형이 바뀌지 않는 한 산성에 오르면 주변을 두루 둘러볼 수 있을 뿐..

웅크린 여름, 죽주산성_20200816

자그마한 숲을 지나 한적한 산성 안에 또 다른 녹음이 웅크린 채 잊혀진 시간을 되새긴다. 졸고 있는 시계바늘을 흔들어 깨워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이 바삐 달려가던 해가 서녘으로 기울며, 치열한 여름의 허공을 붉게 적신다. 6년 전 지나던 길에 한 차례 유혹의 눈빛을 보내던 산중 성곽을 그제서야 찾아내곤 시간을 거스르듯 회상의 길을 찾는 동안 바람살이 반가이 맞이한다. 접근이 용이한 산성이라 가벼운 차림에 이내 성문에 접근할 수 있다. 때마침 녹음 사이로 석양이 몸을 숨기기 직전이다. 비교적 아담한 산성 내부는 하나의 공원으로 단장되었다. 성곽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하늘과 만나는 선을 종종 만난다. 산성의 서쪽에 있는 성문으로 진입하여 약속한 듯 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성곽의 오르막길에 오르자 주위..

시간의 침묵, 동탄호수_20200808

줄곧 내릴 것만 같던 비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인 사이 호수 산책로를 걷는다. 호수에 비친 세상 그림자가 휘영청 늘어서 무거운 하늘을 잠시 가리며 근심을 잊으라 한다. 그 울림에 무심히 걷다 어느새 다시 굵어지는 빗줄기가 금새 인적을 증발시키고, 덩달아 초조한 아이처럼 잰걸음으로 비를 피한다. 이렇게 사진이라도 남기길 잘했다. 찰나는 그저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내 인생을 하나씩 엮어 나가는 조각들이라 무심하게 지나는 것들이 내게 간절했던 기회일 수 있다. 올해도 이미 반 이상 뒤로 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바, 그래서 다행이고, 그로 인해 용기를 내고, 그래서 도전한다.

헬로~ 옛학우들_20200731

1년 7개월 만에 만난, 2018년을 함께 했던 학우들. 당시처럼 막회를 곁들이며, 축제와 같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했지만 아쉽게 참석이 힘든 학우도 있어 보란 듯이 더 재밌게 보냈다. 근데 막회집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이날 휴가 들어간 날이고, 2차는 그때처럼 같은 치맥집으로 갔지만 야외에서 마시던 중 급작스런 소나기에 후다닥 실내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너무 강렬한 불금이라 이튿날 머리는 지진이 났지만 근래 마시는 자리를 거의 갖지 않아 가끔 한 번 정도는 괜찮다. 중간에 앉은 학우는 예나 지금이나 투철한 봉사 정신으로 특히 아이들이 있으면 막대 풍선으로 아주 특별한 기념품을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 줬다. 다음엔 언제 볼까? 3명이 빠졌지만 이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서먹함에 익숙해질 것만 같다.

냥이_20200717

필요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에서 이케아를 다녀왔고, 어김없이 주머니를 살짝 열어야 했다. 마치 코스트코를 가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커져 구매목록은 무시 되고,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 마냥 충동구매를 해 버리게 된다. 조립을 해야 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아무리 단순한 제품일지라도 첫 조립 시 헤매게 되는 과정만 극복한다면 이음새의 견고함에 살짝! 감탄할 수 있다. 박스는 냥이 차지. 새로운 제품은 늘 검수를 하는 녀석인지라 조금이라도 만만한 싹이 보이면 바로 맹수(?) 본능의 이빨 세례가 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면 한 편으론 어이없지만 나머지 한 편으론 귀엽다. 빈 박스를 포착하는 능력은 가희 신급이다. 정리를 위해 나오라고 보채도 절대 나오지 않고 버틴다. 나름 편한 자세가 나오고 눈인사도 보낸다. 장..

도심의 작은 쉼터, 독산성_20200717

억겁 동안 세속을 향해 굽어 보는 나지막한 산에 둥지를 틀고 앉아 잠시 기댄 문명의 한 자락. 그 담벼락에 서서 흐르는 공기를 뺨으로 더듬어 본다. 마치 하나의 형제처럼 산성과 사찰은 나약한 의지를 위로하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많은 바램들을 몽롱한 목탁 소리로 바람처럼 흩날린다. 많은 시간을 버텨 왔지만 앞으로 맞이해야 할 시간의 파고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두려움처럼 막연한 시련과 희열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의지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를, 또한 자연의 포용이 변치 않기를 기대하는 포석 같다. 석양의 볕이 꺼지며 하나둘 밝혀지는 문명의 오색찬연한 등불이 특히나 아름다운 저녁이다. 도심에 둘러 쌓인 작은 녹지치곤 꽤나 멋지다. 사람들의 발걸음만큼이나 분주한 까치가 알싸한 데이트에 여념 없다. 독산성에 오르..

무선의 진수, 에어팟 프로_20200716

음악에 대한 집착, 주구장창 음악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분석하거나 야트막한 지식으로 평하고 싶지도 않아 있는 그대로 즐길 뿐이다. 월정액으로 곡을 구입하면서 리필되는 일자를 손꼽아 기다려 음원을 구입하고 나면 허무하게도 허벌나게 듣던 곡들을 무심코 재생해 버린다. 그럼에도 아이폰에 곡을 넣는 순간이 행복하다. 더불어 오롯이 음악 리스닝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려나 싶어 노이즈 캔슬러가 적용된 에어팟프로를 뒤늦게 질렀고, 과도한 저음을 좋아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아이폰의 플랫하고 단단한 음색에 길들여져 에어팟의 편안한 소리에 벗어나기 힘든 시기다. 이러다 아주 가끔 가속도가 붙은 심박에 맞춰 아토믹 플로이드를 통해 락을 듣노라면 가슴에서 미세한 전율이 느껴진다. 사실 프로는 건너뛰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는데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