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400

삶과 삶 사이로, 오산 오색둘레길_20250303

적당한 맛과 멋, 적절한 땀과 그때그때 주어지는 보상.게다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둥지와 터전 사이로 지나가는 오산의 오색둘레길은 냉정하게 말하면 동탄에서 허벌나게 돌아다닐 때만큼 흥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 가까이 자연과 문명을 버무린 길이 있어 다행이었다.2009년 동탄에 이사를 했을 때 회사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동탄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들이 열에 아홉이었고, 그마저 아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편견으로 한 마디 거들었다.그 먼 곳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다니냐, 동탄이 화성?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그 화성?, 반도체 공정에서 불산이 나오면 어쩌나 등등막상 동탄에서 사는 난 그 쾌적함에 처음부터 대만족이었다.사람들이 많지 않음에도 매끈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주변과 하루 종일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법한..

냥이_20250303

다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지내던 중 방바닥에 둔 아이뽕 셀카를 작동시키자 녀석이 급 호기심을 드러내며 다가와 아이뽕 화면에 뜬 녀석의 모습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핥기까지 했다.비교적 오래 핥고 주시했는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돌아서 다른 자리에 궁뎅이를 깔았다.대낮에 세라젬 위에서 창 너머 세상을 바라보는 건 이제 녀석의 생활 일부분이 되어 이렇게 한참 동안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아파트 단지엔 특히나 젊은 부부들과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의 뛰어노는 모습이 신기했던 걸까?늦기 전에 밖으로 나가 지난번 둘러봤던 산 능선을 이은 오색둘레길의 가장 정점인 노적봉까지 걸어갔다 돌아왔을 무렵엔 부쩍 낮이 길어져 아직 땅거미가 있던 시간이었는데 방에 앉아 맥북을 두드리던 중 머리 위에서 따가운 ..

냥이_20250302

세상 구경 삼매경에 빠진 녀석은 집사가 포근한 모포를 덮어주면 좋아했다.봄이 왔다고 하지만 겨울에서 순식간에 봄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시나브로 찾아와 아직은 겨울과 별반 차이 없었고, 그래서 모포 안에 맴도는 체온은 더욱 따스할 때였다.같은 자리에서 여러 가지 빵을 굽는 녀석의 털을 보면 참으로 오묘했다.겉은 흑미식빵인데 속털은 영락없는 두유 식빵이나 마찬가지.그런 녀석을 두고 난 맥북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이 녀석은 세상을 여행하느라 노곤했는지 집사한테 다가와 허락은 눈곱만큼도 없이 무릎 위에 올라와 자리를 잡고 이내 잠에 빠져 들었다.이제는 이런 모습이 익숙해서 그런지, 또한 이런 붙임성이 더해져 녀석은 수십 년 전부터 가족의 일원인 양 친근했다.이 상황에서 집사의 몰취미는 바로 잠자는 녀석의 주뎅이..

냥이_20250301

집에 들어와 냥냥거리며 따라다니는 녀석.그런 녀석과 함께 사냥 놀이를 즐기다 어느 정도 즐겼는지 녀석이 바닥에 넙쭉 자리를 잡고 요지부동이었다.녀석도 힘이 들었는지 배를 바닥에 깔고 식빵을 굽고 있었다.입양 전 왼쪽 다리 골절이 주홍글씨처럼 남아 이제는 작은 장애를 갖고 사는 녀석이었지만 그 애잔함과 그에 반한 녀석의 사교성에 한 가족으로써 손색이 없었다.다른 냥이들처럼 식빵 자세를 취하면 그게 도리어 불편해 왼쪽 다리를 옆으로 빼고 그러면 그 자세가 편한지 한참을 이렇게 있었다.그런데 왜캐 항상 거실이나 방 한가운데 퍼질러 자리를 잡는 거냥?집사들이 다닐 때 늘 빙빙 돌아서 가는 게 월매나 불편한지 넌 아냥?잠시 기운을 차린 녀석은 밖을 내다보며 하염없이 삼매경에 빠졌다.녀석은 뭘 그리 골똘히 쳐다볼까..

냥이_20250224

자정 넘어 집사들과 함께 티비를 뚫어져라 시청하는 녀석의 뒷모습은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같은 냥이들에 대한 관심일까? 아님 그저 티비에서 아른거리는 동체에 대한 호기심일까?저 뒤통수가 신기해서 연신 쳐다보면 냥이에 대한 묘한 매력도 읽을 수 있었다.녀석은 아침 식사를 하면 2~3시간 정도, 하루 중 유일하게 칩거나 혼자 동떨어져 잠을 자는데 집안 난방과 별개로 녀석은 제 모포를 덮어줘야 꼭 잠들었고, 점심때 엉금엉금 기어 나오다 보면 가끔 덮어준 모포를 그대로 등에 덮은 채로 거실에 발라당 드러누웠다.이렇게 녀석으로 인해 웃음소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냥이_20250223

하루 중 녀석이 칩거하는 시간은 대략 2~3시간 정도로 낮 시간 동안 깊은 잠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집사의 전파가 잡히는 곳에 붙어 다녔다.다른 냥이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전형적인 분리불안이 있어 밤에 제 쿠션에서 자다가도 엉거주춤 일어나 수면보행증이 도져 집사들이 자는 자리를 번갈아가며 기대어 잤다.그래서 키친 테이블은 대낮에 녀석의 고정적인 잠자리인데 티비나 라디오 소리가 끊이지 않음에도 이 자리를 고집하는 건 화이트 노이즈처럼 숙면을 도와주는 자장가로 들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그러다 해가 지고 집사들의 저녁 식사가 끝나면 용케도 알아채곤 집사들 무릎에 번갈아 가며 나머지 잠을 청했는데 이때는 집사한테 고개를 파묻고 코까지 골아댔다.녀석의 이런 모습들이 ..

냥이_20250209

꽁꽁 얼어붙은 추위 속에서 거실엔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덩달아 적당히 따스할 정도로 온도를 설정해도 그 햇살로 인해 난방이 작동하지 않았다.그래서 녀석은 아무 곳이나 퍼질러 잤다.이사한 뒤 이틀 만에 적응한 녀석은 시간대별로 퍼질러 잘 수 있는 선호 구역을 정했는데 햇살이 너무 따가울 땐 적당히 햇볕도 피하면서 조금만 움직이면 다시 따사로운 햇볕을 볼 수 있는 자리를 선점했다.집사는 덩달아 녀석의 평온한 표정과 모습에 마음이 따스했다.근데 주뎅이를 보면 아랫입은 겨우 달린 것처럼 보였다.잘못하면 떨어지겠다, 뇬석아!

냥이_20250128

낮이 짧은 겨울이라 저녁 식사를 하고 어영부영하는 사이 깜깜한 밤이 되었고, 9시가 되자 아파트 단지를 제외하곤 온 세상이 암흑 천지였다.신기하게도 아파트단지와 진입로는 인적이 끊이질 않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입주했는지 밤이 늦도록 산책을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그런 모습을 녀석은 창 너머로 신기한 듯 한참 쳐다보며 낙으로 삼다 저녁이 되자 칭얼거려 거실 바닥에 내려앉자 바로 무릎 위로 타고 올라와 졸아댔다.길게 뻗는 바람에 녀석을 지탱하는 게 힘들어 꼼지락 거리자 녀석이 서서히 졸린 눈을 뜨기 시작.결국은 잠에서 깨어나 유튭을 함께 시청했다.한참 앉아 있자니 다리가 저려 녀석을 쿠션에 내려두곤 다시 야밤의 산책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