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웅크린 여름, 죽주산성_20200816

사려울 2022. 12. 18. 20:04

자그마한 숲을 지나 한적한 산성 안에 또 다른 녹음이 웅크린 채 잊혀진 시간을 되새긴다.

졸고 있는 시계바늘을 흔들어 깨워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이 바삐 달려가던 해가 서녘으로 기울며, 치열한 여름의 허공을 붉게 적신다.

6년 전 지나던 길에 한 차례 유혹의 눈빛을 보내던 산중 성곽을 그제서야 찾아내곤 시간을 거스르듯 회상의 길을 찾는 동안 바람살이 반가이 맞이한다.

접근이 용이한 산성이라 가벼운 차림에 이내 성문에 접근할 수 있다.

때마침 녹음 사이로 석양이 몸을 숨기기 직전이다.

비교적 아담한 산성 내부는 하나의 공원으로 단장되었다.

성곽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하늘과 만나는 선을 종종 만난다.

산성의 서쪽에 있는 성문으로 진입하여 약속한 듯 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성곽의 오르막길에 오르자 주위 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올해 유별난 비로 인해 곳곳이 유실되어 이런 장면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작은 산성인데 잠시 오르면 죽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틀어 이천, 음성 방면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꽤 멀리까지 시야는 방해받지 않는다.

새로 단장한 성곽과 그 이전에 잔존한 성곽의 경계가 선명하다.

성밖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

남쪽으로 열려 있는 성문 일대는 수풀이 우거져 있다.

남문을 지나 뿌듯한 오르막길에 오르면 망루 같은 높은 자리에서 지나온, 혹은 훑어본 지역들을 재차 읽을 수 있다.

석양이 서녘 비봉산자락을 뉘엿뉘엿 넘는다.

굴곡진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걷는 동안 후덥지근한 여름을 잊게 해 준다.

주차장과 산성에 꾸준히 들르는 방문객들을 보면 일대 지역의 명소임엔 분명하다.

잠시 말동무가 되어준 이정표.

이 또한 근래 들어 쏟아진 폭우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빼곡한 나무숲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성벽은 구부정 유연한 곡선을 그린다.

지난 장마의 위세를 말해 주듯 터줏대감이 뿌리를 내린 곳은 멀쩡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대조된다.

분주한 거미.

성벽이 유실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또한 성문으로 인간을 위한 배려라 읽어도 괜찮을 만큼 아담하다.

허허롭던 공백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나무가 꽤나 운치 있다.

지상을 내려다보는 뒷모습에서 세상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간헐적으로 지나던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자욱하게 내리기 시작한 산성에서 치열하게 달려온 삶에 잠시 쉼표를 남긴다.

이따금 들리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가느다랗게 뒹굴던 물소리가 정적을 깨는 목탁소리처럼 선명해지고, 햇살을 피해 숨어 있던 그늘에는 암흑이 들어찬다.

어느새 왔던 길을 바란 발걸음에 몸을 맡긴 채 저물어가는 시간을 기억 속에 정리한다.

가끔 밟았던 궤적을 따라 시선을 거스르는 기분은 가려워 몸서리쳤던 안도를 다독거리는, 습작의 크로키를 완성한다.

사람들이 떠나 버린 자리에 물소리가 증폭되어 요란하면서 경쾌하다.

산성을 떠나기 전, 뒤돌아지는 땅거미를 바라보자 미련이 하염없이 타들어간다.

전국을 다니며 여러 순댓국에 맛을 들여 보면 먹을 만한 식당들이 참 많다.

그중에 내 입맛에 으뜸이라면 개군 순댓국과의 치열한 접전 끝에 백암제일순대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올해 방문 했던 순창 순대는 진한 냄새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내 입엔 그 정도 비린 건 괜찮고, 익산 순대는 양도, 맛도 푸짐하다.

영월시장 순대는 건데기가 좋지만 퉁명스러운 응대가 불만이고, 개군 순대는 백암처럼 깔끔하면서도 특유의 풍미와 은은한 맛이 일품이다.

그럼에도 개군 순대보다 백암 순대가 좀 더 호감이 가는 건 깔끔함의 차이.

백암에 종종 들렀던 근원은 작은 교회 목사님 내외분-종교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하고-을 꾸준히 뵙던 건데 잘 계시려나?

백암 순대에 처음 발을 들인 것도 이제 18년이 지났다, 18년.

죽산에 들른 김에 참새가 방앗간을 걍 지나칠 수 없는 벱이라 길목에 있는 백암에 들러 폭풍 흡입했고, 식당을 나와 사진 한 장 찍고 보니 냥이 한 녀석이 쪼그리고 앉아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도 아랑곳 않는다.

배도 채우고, 눈인사도 하고... 일석이조, 칼을 뽑은 김에 무우도 자르고, 파리도 쫓은 셈이다.

근데 녀석에게 나 한 번 쳐다볼래? 그러자 마지못해 고개를 살짝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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