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445

남한강 울타리 속 자연, 충주 비내섬_20240620

적당한 물비린내와 풀내음이 뒤섞인 비내섬은 남한강이 만든 섬으로 장자섬과 함께 가끔 들러 봄에는 공허함 가운데 신록의 파릇한 민낯을, 가을엔 생명의 성숙을 가르며 잔잔한 산문집을 읽는 기분으로 거닐던 곳이었는데, 문화 컨텐츠의 화력으로 인해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 명소다.산문집이 그렇듯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쉽게 읽히지도 않는 것처럼 빼어난 풍광이나 특출 난 경관을 바란다면 이 또한 처음 몇 페이지만 읽다 덮고 서가에 먼지가 쌓이는 산문집과 같았다.걸음을 멈추고 익숙해진 화이트 노이즈를 잊어버린다면 무성한 풀섶 어딘가에서 들리는 여러 종의 새소리 화음이 뒤늦게 들렸고, 여러 종의 생명이 바람에 응수하는 제각각의 노래를 깨칠 수 있었다.이왕 비내섬에 왔다면 이미 떠나버린 사랑의 불시착보단 늘 ..

냥이_20240620

자는 걸 보고 그냥 나갔다고 너구리 총각은 집사한테 크게 삐쳤다.아이든 반려 생명이든 삐친 모습이 귀엽게 보이는 건 비단 나뿐만 아니겠지?집을 나서기 전 녀석은 낮잠을 청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숙면에 빠져든 상태였고, 그 모습을 뒤로하고 충주 비내섬으로 향했다.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자 어디서 많이 본 너구리 총각이 삐친 채 돌아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근데 귀는 까딱까딱 뒤로 향했는데 난 저 모습이 더 귀여워 계속 짖궂은 장난으로 삐치게 하고 싶다옹~

하늘재가 이어준 베바위, 충주와 문경의 하늘재_20240619

하늘재를 넘어 포암산 베바위 아래 포암사를 거쳐 다시 하늘재로, 하늘재에서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다른 숲 속 자연관찰로를 밟아 원점으로 돌아왔다.무성한 숲이라고 폭염을 피할 수 없지만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무거운 더위를 떠받쳐주는 산의 숲에서 말 없는 유약한 길도 그 품을 파고든다.예전엔 끈적한 여름이 싫었는데 어느 순간 나이를 짊어져 무거운 추회를 읽는 순간부터 여름은 피하고 떨치는 계절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자연이 주는 축복이었고, 이렇게 내게 주어진 축복을 덤덤히 즐기는 것 또한 자연에게서 배웠다.더위에 흠뻑 젖은 내게 봇짐을 파는 분이 내민 생수 한 잔은 그 축복의 연장선상이었으며, 인근 수안보 온천에서 몸을 이완시키는 건 행복이었다.하늘재옛길을 걸어 포암산 베바위 아래 포암사에 도착했다.베..

이천 년 삶의 희로애락, 충주 계립령 하늘재_20240619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이자 남북을 잇는 요충지인 계립령로 초입에 자리한 절터에 도착하여 폭염을 뚫고 하늘재로 향하기 전, 역사의 흔적에 잠시 숙연한 상상에 빠졌다.한 때는 성행했고, 또 한 때는 외면받았던 하늘재 길목은 창칼을 겨누거나 큰 희망의 고갯길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거운 공기만 가득했다.그래서 그 무거운 정적의 내음과 자취가 이끄는 대로 길을 밟으며 둔중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하늘재는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을 잇는 고갯길로 공교롭게도 충주 방면은 미륵리, 문경 방면은 관음리란 지명을 갖고 있었다.미륵과 관음이라...이승과 저승의 고갯길이 하늘재, 계립령이란 말일까?미륵대원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고려전기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사찰터로 198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하늘재[..

하늘재 가는 길에 조령산_20240619

충주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옛길, 하늘재로 가는 길에 조령산의 멋진 산세를 잠시 감상했다.하늘재의 옛 명칭은 계립령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문경새재보다 더 오래된 길이라고.험난 하기로 유명한 두 개의 산인 조령산과 월악산 사이를 관통하는 그 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위를 잊기 위해 가던 중 이 땅을 지키는 산의 곁길로 향했다.

냥이_20240618

집사 짬밥이 늘었다는 건 녀석과 뒤섞여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안다는 수준까지 이르렀다.팔꿈치로 녀석을 감싸고 손은 키보드를 두드리고,그러면서 필요한 무언가를 하며, 수시로 녀석이 좋아하는 영상도 함께 시청했다.그러다 녀석이 잠에 취할 때까지 안고 있다 제 자리로 옮겼다.그래서 때로 경험은 훌륭한 스승이다.화사한 일광을 좋아하는 냥이들의 습성에 맞춰 녀석도 창가에 자리잡고 일광을 즐겼다.이케아표 튼튼한 의자는 구입 이후부터 녀석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팔꿈치로 녀석을 보듬고 손은 현란한 키보드 놀이.집사 생활의 짬밥이 주는 노련함이랄까?녀석이 잠들면 어느 정도 취할 때까지는 방치해 놓는다.그러다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느라 녀석을 등한시 했더니 삐쳐서 등을 돌렸다.근데 귀는 뒤로 쫑끗거리는 이유는 모냥..

냥이_20240617

괜히 심드렁한 녀석이 하루죙일 집사를 미행하더니 결국 집사의 허락도 없이 무릎 위에 올랐고, 손을 달라고 재촉해서 내밀자 거기에 턱을 고이고 낮잠을 청했다.비슷한 경우가 매일 있어 낯선 게 아닌데 집사 또한 자연스럽게 녀석의 과학이 된다. 식사 중인 집사의 정면 밥상머리에 앉아 이렇게 요지부동.마치 고문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책상에 앉자 이렇게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라왔고, 손바닥을 달라고 해서 주뎅이를 받혀 줬다.처음엔 잘거라 예상을 못했는데...녀석이 점점 빠져든다.빠져든다.빠져든다아아아.빠져들었다아아아아아.

독립의 의지가 담긴 노작 문학관_20240616

노작 홍사용 문학관에 들러 소위 멍 때리며 덤덤히 파란만장했던 한 족적을 응시했다.글 속에 용해된 영혼들의 무거움을 작은 그릇으로 담을 수 없었지만 스미고 스쳤다.눈에 보이지 않고, 규정할 수 없어도 영혼에 물든 그 공간에서 그렇게 여름의 흥건한 땀 대신 글의 숭고함에 잠시 젖었다. 홍사용은 1900년 음력 5월 17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 151번지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육군헌병 부위를 지낸 홍철유(洪哲裕)와 어머니 능성(綾城) 구씨(具氏)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무관학교 1기생으로 합격한 부친을 따라 백일 즈음에 서울 재동으로 이주했다. 8세 무렵 군대가 해산되자 다시 아버지를 따라 생가 인근 마을인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모루] 492번지로 내려온다.9세가 되었을 때, 후..

아산을 만날 결심, 곡교천 은행나무길_20240614

바람이 많은 날에 문득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걷고 싶었다.곡교천에는 강물이 흐르고, 거리엔 바람이 꿈틀거리고, 허공엔 하늘이 흐르는 곳.덩달아 사람들도 은행의 녹음 제방 사이로 흘러흘러 삶의 단맛을 머금었다.버스를 타고, 다시 1호선 전철을 타고, 그러곤 온양온천역에 내려 버스를 타면 충분히 닿을 수 있어 가끔 차가 짐이라 여겨질 때 부담 없이 올만했다.사람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생명이라 같은 존재를 제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내게 있어 아산은 단순히 온천을 넘어 여행의 기분을 배부르게 채워주는 곳이었으며, 거룩한 현충사가 있는 의미심장한 곳이기도 했다.그래서 아산에 와서 덤덤히 걸으며 멋진 은행나무 가로수길의 낭만을 배웠다.아산을 가로질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곡교천은 천안천, 온양천 등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