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564

가을 전주곡, 동탄 반석산_20241006

전날 내린 비와 아직 남은 구름이 묘한 가을 정취를 연출했고, 그로 인해 가을은 한층 익어 그립던 제 빛깔을 되찾아 세상을 활보했다.반석산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로 향하며 매년 가을마다 습관처럼 육교에 서서 길을 따라 번지는 가을에 중독되어 버렸다.이 나무의 이름도 모른 채 십여 년 이상 가을마다 나무 사잇길로 지나다녔다.대왕참나무?이 나무들도 가을이 깊어질 때면 붉게 물들며 지나는 사람들을 반기겠지?반석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초입에 묘한 기시감이 들어 고개를 돌리자 냥이 녀석이 쳐다보고 있었다.집사라고 꽁꽁 숨어 있는 녀석을 단번에 알아보다니.한동안 쳐다보던 녀석이 내가 아는 척을 하자 두 발짝 멀어졌다.녀석에게 있어 내가 공포의 대상이라 얼른 자리를 벗어나 언제나처럼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과 보폭을 ..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동탄 보나카바_20240414

김제에서 동탄까지 날아온 동상, 그래서 뭔가 특별한 식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입맛에 후회는 없어야 되겠는데 녀석의 입맛을 잘 알기 때문에 주저 없이 보나카바로 예약을 했다.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적 원주로, 학교는 충주로, 회사는 오산으로, 다시 회사가 전부 이전하면서 김제로 기구한 삶(?)을 사는 녀석이지만 워낙 해외 출장이 잦고, 회사 내 입지가 괜찮아 심적 안정이 느껴졌다.근데 거구인데도 불구하고 가리는 식재료는 어찌나 많은지.예전에 익산 일해옥-여기 완죤 내 스탈-에 데려갔다 쥔장의 한 마디에 삐칠 정도로 마음도 여리지만(?), 가리는 식재료는 무궁무진한데 특히 범용으로 사용되는 계란과 파는 거부했다.일해옥에서도 계란과 파를 빼고 달라는 말에 쥔장께서 "뭐든 다 잘 먹게 생겼는디 워째 가리는 게..

일상_20240328

시나브로 봄이 왔고, 그걸 뒤늦게 눈치챈 뒤에야 겸연쩍어 시선을 낮춰 그 컬러의 향기에 잠시 여유를 찾는다.벌써 이 들판의 존재들을 깨우고 있었음에도, 비가 내려 행여 흩어지고 달아날까 물방울 아래 가뒀음에도 뭐가 그리 건조한 삶을 추종한 건지 파릇하던 봄의 기대를 잊고 지냈다.그리 작은 프레임과 그 작은 세상에 가둬둔 내 삶을 이렇게 달래 보는 것도 그나마 좋은 방법 아니겠나.퇴근길에 동탄역 인근에 내려 이발하러 가는 길에 생소한 고수부지를 지나면서 개나리에 이끌리듯 데크로 향했고, 개나리 안내로 세상의 봄에 초대받았다.개나리 십장생처럼 공간에 스스로 갇히지 말라고.이발을 하고 나와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여울공원 봄소식이 무척 싱그러웠고, 특히나 만개를 시작한 목련과 그 꽃잎에..

일상_20240317

봄소식하면 머니머니해도 봄의 전령사들인 꽃 아니겠나.그 봄소식을 주워 담으러 동네 산책을 나섰다.어느새 산수유도 서둘러 봄소식을 알렸다.반석산에 흐드러지게 핀 생강나무꽃은 사실 다른 전령사들에 비해 부지런하고 지구력이 좋다.반석산 낙엽무늬 전망데크에 도착.대기가 비교적 깨끗한 날이라 성석산과 부아산이 조망되었다.조만간 이 황량한 들판이 봄에 물들겠지?겨우살이는 부쩍 자랐다.도심에 겨울살이가 있으리라 생각 못했지만 몇 년 전 가족들과 산책하며 알려줘서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째려봤다.또 다른 봄의 전령사, 매화도 이제 막 개화 중이었다.복합문화센터 뒷뜰에 매화와 산수유가 모여 봄잔치를 준비 중이었다.

일상_20240211

왕형님이자 어르신 만나러 가는 길에 어설프지만 엷은 바람 옷가지 입고 찾아온 봄의 향기를 만났다.땅밑 동토는 깊이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봄이 데리고 온 대낮은 부쩍 길어진 자취를 남겼는데 거기에 맞춰 어딘가 숨어버렸던 길 위 작은 생명은 한둘 모습 드러내며 극적으로 봄을 마중 나왔다.아직은 황량한 겨울 잔해 속에서 조심스레 봄을 맞이할 또 다른 생명은 그 누굴까?휴일에 정갈한 공원의 정취는 그 어느 곳보다 친숙해져 버렸다.걸음 수를 채우려 한참을 걷다 여울공원까지 넘어왔는데 점점 익숙해짐과 동시에 거리감도 무뎌졌다.여울공원의 정중앙이자 화목원 한가운데 그리스식 조형물과 더불어 비정형적이면서도 나름 원칙이 있는 계단의 기하학적 배치가 정형적인 길을 연장시켰다.여울공원에 온 김에 꼭 찾아봬야 할 왕형..

일상_20230723

장마에도 꽃은 피고, 물방울 열매는 맺는다. 그 계절의 작은 탄생들은 길 따라 해류처럼 흐르고, 어딘가에 고여 길의 형체도 덧씌워 생명을 이끈다. 아무리 견고하게 다진 길도 생명의 분절은 길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처럼 길을 만드는 건 실체를 짓누르는 중력이 아니라 유수처럼 흥겨운 흐름이 궁극이다. 비구름이 유유자적하는 길을 밟으며 어느새 길의 호흡에 자연의 혈관은 심장처럼 멈출 줄 모르고 약속처럼 의지를 추동하던 날이다. 우산 하나에 의지해 물에 젖을 각오로 길을 나서 습관처럼 오산천변 산책로의 나무 터널 아래로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자연 발원하는 여울도 많은 비를 방증하듯 갈래갈래 폭포가 되어 이별과 재회를 반복했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는지 꽃은 세찬 장마에도 꼿꼿이 살아갈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여울..

가을 찾기, 일상_20220926

정처 없이 걷는 가을 길목에서, 어차피 계절은 명확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가장 화평하며 뚜렷한 간극도 없었다. 인생의 변곡점처럼 시간에 대한 명징한 기약은 없어도 필연의 만남과 작별만 명제로 다짐할 뿐이었다. 걷는 걸음 사이 로즈의 이쁜 품새에 깊은 한숨 뱉어 버리듯 잠깐의 휴식은 혐오가 도저히 가장할 수 없는 뽀얀 사색의 선물이었다. 베란다에 어느새 방아나물이 제 안방처럼 자라 꽃을 선물한다. 서로의 관심에 함께 화답하는 징표다. 가을이 짧다고 여겨지는 건 사람들 머릿속에 그려진 전형적인 가을만 추동하기 때문이다. 오는 가을에서 아름다운 진면목을 찾는다면 가을은 충분히 긴 시간이다. 로즈 동생이면서 무척 경계심이 많으면서 다가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녀석이지만 이쁜 옷을 입었다. 얼굴만 이쁜 게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