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400

밤의 적막에 홀로 한 찰나, 대구 망우당공원_20250221

퇴근과 동시에 허기진 속도 참고 참아 곧장 약속 장소인 대구 망우당공원에 도착했을 무렵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30분 정도 여유를 공원의 싸늘한 겨울밤 구경에 나섰다.금요일 밤이라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거릴 거란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한적했는데 덕분에 갓길에 주차 걱정 없이 차를 세우곤 숨을 헐떡이며 공원으로 올라가 강바람이 대기를 뒤흔드는 텅 빈 공원길을 가르듯 걸었다.30분이란 시간이 길면서도 이럴 땐 무척이나 짧게 느껴지는 걸 알기에 급한 약속이 있는 것처럼 잰걸음으로 이동하여 곽재우동상을 지나 오랜 추억이 서려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이전 관련글] 추억을 정리하며_20171130숨 가쁘게 지나간 하루 일정을 끝내고 숙소인 인터불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엔 친구들과 조촐하게 한 잔 박살내고 느긋하게 걸..

가을의 포근한 고요, 대구 망우당공원_20221106

가을 정적이 무거운 공원에서 문득 먼 길 달려온 가쁜 숨을 쓸어내렸다.4년 전 빼곡하던 교육 과정을 겪으며 도리어 정이 들고 야경이 익숙해져 버려 이번 여정에 슬쩍 끼워 넣곤 한 달 전 미리 예약한 숙소 주변을 서성였는데 꽤 한적하고 어둑한 곳임에도 이따금 지나는 외국인들은 그 모습이 신기한지 공원 옆 강변에서 연신 사진을 찍거나 낙엽 자욱한 가로등 아래 벤치에서 심약한 등불에 의존해 독서삼매경에 빠졌다.사과와 돌배가 한아름 담긴 지인이 건네준 검은 봉투의 무게감도 잊고, 그래서 가을 향연이 넘실대는 곳에서 먼 길 달려온 가쁜 숨이 편안해졌다.차가 쌩쌩 질주하는 대로와 바로 옆 강변 사이에서 강변 쪽 절벽 위에 이 자리가 추억에 부풀어 있었다.오래된 정취와 더불어 강변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을 즐길 수 있었..

문화의 수풀, 경천대관광지_20220126

우연히 낙동강을 따라가다 들렀던 경천대는 전국 각지의 명승지처럼 선명한 역사가 숨은 곳이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어 별 기대 없이 주차를 하고 간소한 차림으로 느린 산책을 했는데 지역에선 나름 명소였는지 평일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인적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전망대를 거쳐 경천대를 거쳐 별 의심 없이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지는 곳을 추종했는데 아주 작은 규모의 드라마 촬영장과 출렁다리였고, 비교적 오래 머문 사이 함께 몰려왔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조각공원에 들렀을 무렵엔 텅 빈 공간에 홀로 작품을 마주했다. 문화와 예술에 문외한이긴 하나 인간의 최종 욕구는 자아실현이며, 그 접점은 문화예술이라 나름 이런 독창적이고 독특한 작품 앞에선 꽤 감동을 받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무한한 창의성에 비록 뱁새가 가..

낡은 세련미, 허나 딱 한 번 오미자터널_20210306

옛 철도 터널을 추억의 장소처럼 재현시켜 오미자 터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색찬란한 빛과 색을 옛 정취 남은 터널에 입혀 놓자 완전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되었고, 그리 긴 구간은 아니지만 손이 간 흔적은 꽤 많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간이 운영하는 테마 파크라 입장료는 기본이고, 터널 내 카페와 상점을 뺀다면 주말치곤 조용하다. 여기서 판매하는 제품은 문경 특산물이 아니라 조금 뜬금없다. 한 병 구입한 와인이 충북 영동산이라고? 근래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옛 정취 위에 독특한 컨셉을 살짝 가미했다. 이런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줄곧 빈티지 위에 세련미를 덧씌웠다. 직접 그린 건데 낡은 철도 터널 벽화는 재밌고 독특했다. 이건 이쁘다. 벽화와 소품을 활용했지만 뼈대는 옛 기차터..

시간의 침묵, 동탄호수_20200808

줄곧 내릴 것만 같던 비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인 사이 호수 산책로를 걷는다. 호수에 비친 세상 그림자가 휘영청 늘어서 무거운 하늘을 잠시 가리며 근심을 잊으라 한다. 그 울림에 무심히 걷다 어느새 다시 굵어지는 빗줄기가 금새 인적을 증발시키고, 덩달아 초조한 아이처럼 잰걸음으로 비를 피한다. 이렇게 사진이라도 남기길 잘했다. 찰나는 그저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내 인생을 하나씩 엮어 나가는 조각들이라 무심하게 지나는 것들이 내게 간절했던 기회일 수 있다. 올해도 이미 반 이상 뒤로 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바, 그래서 다행이고, 그로 인해 용기를 내고, 그래서 도전한다.

일상_20200701

어느새 냥이들의 마중에 애정은 깊어간다. 오는 길엔 길목에 서서 어느 하나 꼭 반기고, 가는 길엔 길목을 따라 배웅 나오며 여운을 남긴다. "다음엔 언제 올래?" 치즈 얼룩이가 먼저 알아보곤 바짝 다가왔다. 경계 3인방 중 하나인 카오스는 이제 나에게 만큼은 신뢰의 화답으로 줄행랑을 보이지 않는다. 두 넉살꾼, 치즈 얼룩이와 검정 얼룩이는 모든 밥그릇에 입을 대고 냥마을 이장임을 과시한다. 물론 격한 환영으로 몸을 비비고, 궁뎅이 팡팡을 해달라고 들이미는 건 기본이다. 녀석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카오스가 배웅을 나왔다. 충분히 식사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녀석의 이런 모습은 잘 볼 수 없는데 가는 길목에 이렇게 따라오는 걸 보면 녀석도 마음을 꽤나 많이 열었다는 방증이고 여간해서는 캣맘분들한테도 ..

시간의 자취, 담양 메타세쿼이아길_20200623

걷다 걷다 다리가 지친 들 멈출 수 있을까? 잠시 멈춘 사이 길 위에 서린 아름다운 시간들이 흩어질까 두려워 사뿐한 발걸음을 늦추더라도 멈출 순 없다. 가을만큼은 아니지만 여름에 걷는 이 길도 막연히 걷다 가끔 뒤돌아 보게 된다. 가슴에서 미어터지는 아름다운 추억에 저미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이 끝나는 아쉬움에 비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길이 참 부럽다. 많은 이야기들을 벅찬 내색 없이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