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산 153

냥이_20200529

똥꼬발랄함과 밝은 모습에 애교까지 섞인 녀석을 보면 아이 같은데 가끔 사춘기를 지난 청년 같을 때가 있다. 한참 가족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껴 녀석을 보면 어김없이 눈인사를 건네며 늠름한 모습을 보인다. 냥이는 하루 16시간 이상 잔다고? 그래서 화사한 대낮의 봄햇살 아래 이렇게 잠든 모습을 보면 나 또한 나른해진다. 베란다엔 봄의 축제가, 들판엔 계절의 여왕이 납신다. 걷는 동안 쉼 없이 봄의 행복과 고마움을 읽을 수 있지만 이제 여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날 채비를 끝냈다. 20년의 봄에게 감사와 더불어 작별을 고한다.

일상_20200528

이제는 좀 더 가깝고 안심을 하는지 지나친 경계나 주눅 들지 않는다. 경계가 심한 레이다 3묘방 중 두 녀석은 마음을 열었고, 나머지 한 녀석은 별 진척은 없지만 부근에서 부르면 알아듣고 쪼르르 달려오는 시늉은 한다. 레이다 3묘방인 뚱냥이와 카오스가 이렇게 밥을 먹으면 나머지 녀석들은 한결 수월해진 거라 괜스레 보람을 느낀다. 제대로 된 치즈뚱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인물 좋은지 알 수 있다. 이 모습은 마치 슈렉에서 장화 신은 냥이 모습 같지 않나? 얼룩이 녀석은 워낙 성격이 쾌활해 냥마을을 자주 비우는데 연 이틀 만난다. 잘 살펴보면 상당히 귀염한 카오스도 가까이 다가와 식사를 한다. 냥마을엔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꽃들이 많은데 서서히 더운 여름의 서막과 함께 꽃잎은 떨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열정을..

일상_20200527

경계심이 거의 최신 레이다 수준이던 녀석이 이제는 가까이 다가오고 반가운 눈빛도 나눠 준다. 네가 뭐라고 인색하던 표현 하나에 괜히 설레는 걸까? 그렇다고 스톡홀름 증후군은 아니라 자부하는 건 도리어 너희들이 선한 생명이기 때문일 거야. 무척 경계심 많은 카오스가 어느새 겁을 상실했나? 근데 그게 뭐라고 희안하게 고맙지? 주객이 전도 되어도 유분수지...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뜨면서 잠시 멈칫하더니 뒤돌아 눈인사를 전한다. 무뚝뚝 하지만 잔정은 많은 녀석 같다. 치즈뚱이와 함께 냥마을 공동 육아를 담당하느라 녀석도 얼마나 힘들꼬. 아직은 경계심 많지만 은근 친해지려는 태비 메롱???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벗어나던 중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반석산에 산딸기 군락지가 있다. 열매를 열..

일상_20200526

지나는 길에 들른 회사 사우와 함께 점심과 커피를 즐긴 뒤 넉넉한 시간을 이용해 야외음악당을 산책하고, 길냥이들이 사는 곳으로 안내했다. 울 냥이한테 캣타워를 선물한 동료라 미리 챙겨간 밥을 나눠 주기 위함이었는데 시골 출신 답게 냥이 마을에 들어서자 신중하게 움직이고, 앉아 있을 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역시 착한 사람들은 달라~ 다행히 내가 이뻐라 하는 녀석이 이번에 찾아왔는데 늘 식사는 후순위에 경계가 심해 다른 녀석들에 비해 식사 양이 적어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이번엔 뚱냥이 저리 가라 할 만큼 많이 먹어 안심이다. 덕분에 회사 동료도 쬐끔은 특별한 산책이었겠지? 식사 시간이 되면 가장 먼저 입을 대는 녀석은 언제나 얼룩이 두 녀석이다. 사우와 동행했음에도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는 건 나쁜 사..

일상_20200522

해 질 녘 둘레길에 발을 들여놓고 쉴 새 없이 한 바퀴를 둘러보며 아카시꽃이 떠난 흔적을 되짚어 본다. 미려한 향과 형형색색 다른 표정을 지닌 봄의 결실을 이어받아 곧 찾아오는 여름은 과연 어떤 모습 일까? 겨울이 훑고 간 황량한 스케치북에 하나둘 그려진 신록의 싹과 자연의 붓이 찍어낸 고운 색결, 거기에 더해 심심한 여백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역동적인 생명들. 조만간 신록으로 그득히 채워질 약속만 남겨 두고 한 계절을 풍미하던 시절의 흔적들은 이따금 지나는 빗방울에 용해되어 시간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노인공원에서 둘레길 곡선에 발을 들인다. 얼마 전 지나간 태풍의 풍마로 쓰러진 아카시 나무지만 여전히 왕성하고 집요한 생존 본능으로 새 생명을 잉태시켰다. 큰 나무들이 또 다른 세상을 만든 것 같은 둘..

일상_20200520

하늘을 무겁게 누르는 구름도, 그 구름을 뜨겁게 불태우는 일출의 노을도 장엄하다. 이른 아침, 계절의 역행과도 같은 서늘함은 곧 다가올 여름에 비한다면 이별이 못내 아쉬운 봄의 감정이 무르익은 표현이다. 두터운 구름을 비집고 동녘에 찬란한 하루가 떠오른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구름까지 온통 불타오른다. 창 너머 비치는 세상이 바다를 뒤집은 듯 투명하고 깊다. 자연 또한 사람과 같아 괴롭히면 찡그리고, 가만히 두고 바라보면 이렇게 원래의 민낯을 보여 준다. 하늘에 조각난 구름은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새떼 같다. 어느덧 정겨운 발걸음 중 하나가 길냥이들 만나러 가는 때다. 나도 사람인지라 마냥 극도의 경계와 자리를 회피하게 된다면 어찌 될런지 모르나 몇 번 봤다고 아는 척도 해주고, 점점 거리를 좁혀 오는 데..

일상_20200519

봄의 불청객이자 단골 손님인 황사와 미세 먼지가 올해는 예외다. 하늘만이라도 맑은 대기로 제 빛깔을 찾아 돌아오는 날엔 덩달아 기분도 화창해진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여세를 몰아 밥 한 주먹 정도 챙겨 냥이들 만나러 갔다. 온순하고 말끔한 건 한결같다. 보정하지 않은 벨비아의 채도 높은 하늘이 인상적이다. 문득 이런 하늘을 바라보면 여행 욕구가 울컥한다. 치즈뚱이 가족이 가장 먼저 반겨 밥 한 주먹 내어 주자 냉큼 식사를 한다. 이젠 약속처럼 절도 있게 모든 행동이 연결된다. 냥마을에 살지 않지만 늘 여기에서 다른 냥들과 어울리는 어린 냥. 이 녀석을 감안해서 밥 한 주먹은 꼭 남겨둔다. 가장 경계심 없는 치즈뚱이 아이는 이제 몸을 부비는 건 기본이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반기는데 반해서 좀 더 신경 쓰게..

일상_20200512

눈 덮인 양 이팝나무가 뽀얗게 물들고, 넘실대는 바람결에 향긋한 아카시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봄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야생마 같지만 그 계절의 옷깃에 내비치는 풍경은 향기로 가득하다. 살랑이는 아카시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소담한 길을 따라 피어나는 신록을 만나러 가는 길은 흥겨운 놀이를 쫓는 아이 같다. 산책의 행복을 저미던 시간, 손끝에서 조차 잠자고 있던 유희의 감각이 긴 잠을 깨치고 일어나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도 피부를 간지럽힌다. 노작마을 초입에서 반겨주는 이팝나무의 화사한 인사. 마치 뽀얀 눈이 덮여 눈꽃 만발한 나무 같다. 여기를 지나 곧장 노인공원을 거쳐 냥마을로 향했다. 뽀샤시한 외모와 순둥순둥 성격, 하지만 길냥이 특유의 경계심으로 가..

일상_20200504

마치 녀석은 처음부터 가족 같다. 붙임성과 넋살에 있어 냥이와의 간극은 기우였을 뿐,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무척이나 적응을 잘하고 애교도 끊임없다. 올리브영에서 구입한 딸랑이 두 개 중 하나는 거의 외면당하고, 나머지 하나는 잘 가지고 논다. 아주 미세하게 방울 소리만 나도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사냥놀이에 바로 빠져든다. 이런 녀석과 한참을 즐긴 후 창 너머 청명한 대기를 쫓아 냥이 마을로 출발한다. 어린이날 전날이라 그런지 야외공연장 잔디광장엔 아이들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냥이 마을로 바로 직진하지 않고, 반석산 둘레길로 우회하여 냥이 마을로 들어서기로 하자. 특히나 노란 꽃들이 눈에 띄어 쉰들러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데 노란색 인식이 완벽하지 않지만 이쁘게 잘 표현되었다. 하..

일상_20200502

봄은 봄이다. 아직도 꽃을 틔우지 않은 꽃은 많지만 시기의 차이일 뿐, 자연의 약속은 그릇됨이 없다. 하루 종일 따스한 봄볕이 가장 좋은 양분이었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그 빛깔은 더욱 곱기만 하다. 이미 한 달 전에 꽃잎을 열고 함박웃음을 짓는 두 녀석들은 언제 봐도 화사한 미소로 삭막하던 베란다에 화색을 돌게 한다. 냥이가 뜯어 먹었던 이파리는 원래대로 자라 점점 단풍의 위엄(?)을 갖기 시작한다. 이제 온전히 제 의사가 되어 버린 탁자 의자에서 나른한 하루를 보내는 녀석은 어딜 가나 따라다닌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가족이 걸리면 발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앉아 있기 전까지는. 택배 박스는 녀석이 필히 검수하는 항목이자 전유물이다. 그렇다고 오래 있는 건 아닌데 어떻게든 한 번은 이렇게 들어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