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산 153

봄이 내려앉은 흔적_20200326

싱그러운 봄의 조화로움으로 모든 생명이 무사히 지나간 고난에 대한 안도와 함께 움츠린 기지개를 켠다. 비록 황량한 들판이 자욱할지라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동감은 그래서 더 돋보이고 반갑다. 내가 사는 고장도, 머나먼 지역도 봄은 늘 같은 행보를 걷지만 천차만별의 각양각색을 일깨운다. 늘상 부는 바람도 각별하게 만드는 봄, 모든 계절이 사이좋게 오고 가는 대한민국은 이래서 숭고하고 아름답다. 작은 병아리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것 같은 개나리는 흔하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면 보이지 않던 애정이 넘친다. 산수유꽃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열매가 약이 되는 건가? 복합문화센터의 정취에서 봄의 싱그러움과 나른함이 느껴진다. 착한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으로 어느 누군가의 선행이 끊이질 않고, 이 가련..

일상_20200315

일 년 중 대기가 청명한 날이 그리 많지 않은 현재를 비교해 보면 맑은 봄의 대기가 그토록 소중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어김없이 계절의 화사함에 이끌려 주변을 둘러보지 않으면 언제 다시 맞이 할지 기약 없는 귀한 손님 같다. 더불어 겨울색 짙은 황량한 대지에 이따금씩 뚫고 나오는 봄의 전령사가 눈부신 시기다. 산수유가 겨우내 참아왔던 꽃망울을 터트려 절정의 미모를 과시하는 시기다. 반석산 둘레길로 향하며 공원 한켠에 다수의 산수유가 미세한 봄의 훈풍에 손짓을 한다. 가장 반가운 봄의 전령사 중 하나가 진달래 되시겠다. 반석산에는 이런 진달래가 군락지 정도는 아니지만 곳곳에 피어 있어 겨울색이 짙은 산에서 그 눈부심이 증폭된다. 반석산에 생강꽃이 있다니... 전망데크로 가는 둘레길 여기저기에 진달래는 ..

눈 내리는 산책에서 만난 냥이_20200216

그립던 눈이 사무치도록 내리던 휴일, 반석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동안 변덕스럽게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내리던 눈은 이내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지만, 발길이 쉬이 닫지 않는 곳에선 서로 모여 무던히도 조잘댄다. 겨울에만, 그것도 눈이 내릴 때만 만날 수 있는 뽀송뽀송한 눈꽃이 화사한 꽃잎을 부풀려 이따금 내비치는 햇살을 굴절시켜 망막이 시큰거리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모든 신경은 지칠 기색이 없다. 햇살을 가르며 그치질 않는 눈송이가 어느새 무르익어 추운 겨울밤도 따스하게 저민다. 눈이 내린 시간은 좀 지났지만 여전히 눈발은 날려 눈이 쌓일만한 곳엔 풍성한 솜을 뿌린 것 같다. 굶주린 길냥이 가족을 만난 곳, 세찬 눈보라와 달리 정취는 따스하다. 올라프?는 아니구나. 굵직..

동탄 노작홍사용문학관_20200207

동탄에 있는 노작 홍사용 문학관은 아름다운 시가 때론 추위나 표독한 칼끝보다 날카로운 무기와 같음을 전시해 놓았다. 허나 칼날이 한결 같이 서슬퍼렇고 위협적이라면 시구는 더욱 예리하면서도 거부감이 전혀 없고, 밤하늘에 약속된 별처럼 묵직하고 개운한 여운을 약속한다. 동탄에 들어선지 꽤나 오래된, 아담한 박물관에 수놓은 시는 아름다운 물결과도 같고, 강인한 파도처럼 글은 언제나 꿈틀댄다. 일제침략기에 우회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시인들의 넋은 영원한 유물인 시로 남아 숭고한 정신-일본을 저주하거나 비꼬는 게 아니라 오로지 독립의 신념-을 표현함으로써 어쩌면 역사적인 앙금 없이 민족의 우직함을 각인 시켜준다. 문학관을 방문하기 전, 반석산 정상과 둘레길을 먼저 거닌다. 둘레길 대부분에 눈은 녹아 흔적이 없지만..

일상_20200124

명절 연휴 첫 날. 오는 사람들마다 난리다. 덕분에 이 녀석이 가장 풍성한 명절을 보냈고, 선물도 잔뜩 받았다. 낯가림 없이 아무한테나 덥석 안기는 넉살과 한 인물하는 면상이라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녀석이 주인공으로 자연스레 캐스팅 되어 버렸다. 고관절과 왼쪽 다리 골절 흔적으로 인해 걸을 때 절룩거리지만 장난감으로 사냥놀이 즐길 때는 냥이의 본모습이 나와 무척 날렵해진다. 안충과 귀에 득실 대던 진드기, 여타 다른 질병은 이제 거의 다잡았는데 글로불린과 백혈구 수치가 특히 높게 나와서 그 추이를 지켜보잔다. 잠시 외출하려고 옷을 끄집어 내어 한눈 판 사이 옷을 점거해 버렸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외출도 이제 눈치를 봐야 한다. 노작마을을 지나 오산천 산책로를 걷는데 공원이 텅 비어 무척 을씨년스..

일상_20200101

새해 첫날, 지난 연말의 피로를 푼답시고 퍼질러 자고 늦게 일어나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동탄 산책을 나섰다. 이번 겨울이 그리 춥지 않아 경량 패딩에 바람막이를 덧대어 걸쳐 입고 초저녁 어둠이 자욱한 반석산으로 향했다. 복합문화센터를 지나 반석산 정상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전망 데크에 도착하여 한동안 텅 빈 데크 위에서 음악을 틀어 놓은 채로 야경을 마주하곤 머물러 있었다. 새해 첫날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간헐적으로 보이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그 이후 어떠한 사람들과도 마주치지 않았던 만큼 반석산은 텅 빈 새해 첫날밤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반석산 데크에 서서 마치 세상 전체의 시간이 정지했을 만큼 고요한 야경을 바라보는 순간, 새해 첫날이라는 의미가 뒤섞여 묘한 여운과 더불어 지나간 시간의..

일상_20191229

하루가 지나 초저녁 무렵에 전날처럼 반석산 둘레길을 같은 경로로 걸었다. 다만 달라진 건 화창하던 날씨가 얇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로 바뀌었다는 것. 우산을 쓰고 터벅터벅 걷다 전망데크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여전히 초저녁시간이라 도시의 불빛은 화려하지만 동탄 1과 2 신도시 사이 꽤나 너른 공간은 허허벌판이라 깊은 암흑 바다 같았다. 노작공원 방향으로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내리막길 도중에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쉬었다 가고 싶지만 빗물이 흥건해 그냥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걸로 만족했고, 하루 만에 멧돼지에 대한 공포는 사라져 버렸다. 둘레길을 통틀어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 중 몇 손꼬락 안에 드는 괜춘한 곳이다.

일상_20191228

늦은 시간에 오른 반석산은 언제나처럼 적막했다. 언젠가 동탄에 멧돼지가 출현했다던데 괜한 기우인지 둘레길을 걷던 중에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예민해졌다. 결국 한 바퀴 돌고 나서는 별 거 아닌데 싶었지만 모처럼 야밤에 반석산을 왔던 게 덤덤하던 기분을 잊어버렸나 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노작 마을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돌아 복합문화센터로 내려왔고, 동지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초저녁인데도 벌써 야밤처럼 전등이 켜지지 않은 둘레길은 깜깜했다.

일상_20191225

성탄절의 설렘보단 늘 맞이하는 휴일 중 하루를 대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계절이든 각각의 매력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겨울이나 여름이 되면 마음과 달리 몸은 위축되어 정적으로 바뀌고, 이내 익숙해져 버렸다. 느지막이 집을 나서 여울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가 모처럼 공원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나무를 만났다. 겨울이라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오산천 산책로를 따라 나무가 가까이 있는 북쪽 공원 입구로 들어서 나무를 한 바퀴 둘러보자 그제서야 서쪽으로 기운 석양이 눈에 띄었다. 언제 보더라도 나무의 기품은 변함이 없고, 가지를 지탱하는 기둥이 옆으로 뻗은 나무 가지를 지지하고 있었다. 나무를 잠시 둘러보고 오산천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파트 건물 사이에 걸린 석양이 보인다. 휴일 ..

일상_20191029

하루 여유를 부려 정처 없이 동탄을 방황했다.이미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 부쩍 짧아진 낮을 실감케 했고, 일찍 찾아오는 밤에 쫓기듯 잰걸음으로 발길 닿는 대로 돌아 다녔다. 올 가을은 그리 자주 다니지 않아 가을색이 만연해지는 이 거리를 잊고 지냈다.아직 계절 옷을 덜 입어 은행나무 가로수조차 연녹색으로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여느 지역의 가을처럼 금새 물들었다 낙엽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터라 틈틈히 다니며 구경하기로 했다. 오산천 산책로를 밟기 전, 가을이 이제 막 젖어들기 직전이 아닌가 착각이 들만큼 계절에 둔감하다. 전날 내린 가을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심적인 여유가 충만한 가을처럼 누가 볼새라 금새 달아나 버리던 빗방울은 아직 풀입 위에 남아 여유를 부린다. 인공 여울은 갈대 세상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