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118

냥이_20240126

사람한테 엉겨 붙는 습성은 갈수록 다양하고 집요하게 나타났다.티비 보고 있자니 기대어 자고, 햇살 아래 뭐든 덮어주면 다소곳이 잤다.한밤 중 자다가 몸이 불편해 눈을 떠보면 집사 위를 자근자근 밟고 다니며 같이 자자고 보챌 때도 많았다.역시나 열 번, 백 번 듣는 것보다 직접 지내면 우리가 알던 잘못된 편견을 자각하고, 깊은 정을 나눌 수밖에 없다.근데 사람한테 기대어 자는 모습이 너무 사람 같지 않나?

냥이_20240121

모포를 덮어준 게 마음에 드는지 그 상태로 번갈아가며 졸다가 눈을 떠도 온기로 무장된 이불 밖을 떠나지 않았다. 녀석에게 있어 자신이 찜한 이불 밖은 위험한가 보다. 이렇게 금세 졸다가도 움직임이 포착되면 민감한 감시카메라가 작동하여 간헐적으로 눈을 떠서 동태를 살피거나 부르면 쳐다보는 정도로 그치고, 주뎅이 스담을 해도 가만히 있었다. 상황을 보면 단순히 따뜻한 걸 넘어 포근한 경지에 이른 표정이었다. 그러곤 한 동안 모포 둥지를 떠나지 않다 대게와 횟감에 자리를 벗어나 가족들한테 다가왔다. 아무렴. 먹을 때는 같이 줍줍 해야지. 모두가 포식하던 날이었다.

냥이, 그리고 노을_20220828

'집사, 요상한 물 언제 다 마시냥? 얼른 털어 넣으면 안되냥?' 커피 마시는 자리 옆에 붙어 계속 째려보는 녀석은 사실 잠깐 일어난 사이에 자리를 점거해 버리곤 눈총을 주다 커피가 바닥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돌아 앉아 '참을 인'을 되뇌이고 있었다. 사실 커피 다 마신 뒤에 일부러 빈컵을 입에 갖다 대는 시늉을 했던건데 녀석은 그저 지루할 뿐이었다. 커피 마시면서 흑미식빵도 곁들이라는 걸까? 마치 어린 바다표범 같았다. '아직 마시냥? 얼른 완샷으로 털어 넣으면 안되냥?' 빈컵을 연신 입으로 갖다대며 마시는 척하자 녀석이 아예 돌아섰다. '내가 저 꼴은 못보겠다옹!' 민무늬 달팽이의 펑퍼짐한 골반이 보였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예전 같지 않은지 쾌청한 날이 많아 덩달아 하늘에 찍어 그린 그림에 심도가..

냥이_20220825

집사를 손꼽아 기다린 모습에 녀석이 품안에서 잠든 걸 허락한다옹~ 어느새 나 또한 녀석의 사진을 종종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 빈도가 늘어나는 건 온전히 녀석 덕분이다. 늦은 밤 퇴근하여 간단히 요기하는 동안 옆에서 집사를 묵묵히 기다렸다. 녀석과 잠시 놀아주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데 녀석은 습관처럼 냉큼 집사 무릎에 자리잡고 퍼질러 잤다. 조만간 하계 방학이 끝나고 2학기 시작인데 뭘해야 되나? 잠깐의 사색에 해답은 찾지 못하고 녀석의 집사가 되어 버렸다. 이게 집사의 인생이다.

냥이_20220726

그리 긴 외출이 아닌데도 녀석은 어찌나 애틋한지. 때론 아끼는 가족, 사람에게 이렇게 맹목적으로 애틋해질 필요가 있음에도 그런 표본이 없다면 쉽지 않고, 녀석으로 인해 맹목적인 순수를 배웠다. 그로 인한 화답으로 새가 지저귀는 영상을 틀어 주자 거기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사는 녀석의 그런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초저녁부터 발치에서 떠날 줄 몰랐다. 심지어 방까지 따라와서 바닥에 붙어 이렇게 째려봤다. 이 눈빛 왜캐 불쌍불쌍해 보이지? "난 컴 키보드를 팰 테니 넌 지저귀는 새를 패거라." 정말 화면이 뚫어질 기세로 초집중했다. 새가 날아왔다 날아가면 이따금 앞 젤리를 날리거나 혓바닥으로 쓸어버렸다. 그러다 솜뭉치를 걸치곤 밀려오는 피로감을 꾸역꾸역 참다가 급기야 녹다운되어 버렸다. ..

냥이 족발로 마수걸이_20220622

마수걸이란 게 새제품이 아까워 선뜻 사용하지 못할까 봐 친한 사람들끼리 중고빵을 날려서 미련을 버리게끔 하는 일종의 장난 섞인 행위인데 냥이가 마수걸이할 줄 누가 알았을까? 가죽 클러치백 하나 선물 받아 집에 와서 풀자마자 베란다에 서성이던 녀석이 바로 마수걸이를 해 버렸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님 왠수라고 해야 하나? 저 선명한 뒷족발 자국. 말이 통하면 앉혀 놓고 따끔하게 하악질 날려주는데 이건 원, 말이 통해야 훈계를 하지!

집으로 가는 길, 속리산 휴게소_20220503

힘겹게 넘어가는 백두대간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쉰다. 휴게소 옆 멋진 산세는 굳이 이 휴게소를 들른 이유로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한 접근성이 좋아져서 그렇지 원래 오지 중의 오지였단다. 오죽했으면 6.25가 발발했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산은 천연 요새며 생명의 어머니이자 아버지다. 먼저 아부지 산소에 들러 설 차례를 지냈다. 항상 이 자리에서 인증샷 한 컷을 찍게 되는데 계절의 특징도 잘 나타나고, 인사를 드리고 난 후의 후련함이 있기 때문이다. 남쪽 지역의 봄은 비교적 덥기도 했다. 올라오는 길에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보면 속리산 휴게소가 단골 쉼터였다. 그래서 몸에 덕지덕지 끼여 있는 노곤함을 털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망의 구병산을 바라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그 자태에 감탄하게 되며,..

대구행_20220429

오랜만에 대구를 방문한 건 아주 오래전 내 기억에 각별한 분을 뵙기 위한 건데 대책 없이 막히는 고속도로를 통과하여 자정 넘어 도착했다. 그리 늦지 않았다면 숙소 옆 강변과 너른 공원을 루틴처럼 둘러봤겠지만 이튿날 빼곡한 일정이 부담스러워 바로 쓰러졌다. 다행히 흐리지만 대기가 무척 맑아 이번 대구행은 타이밍 조~~~ 타. 집에서 살림을 챙기면 녀석은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거리를 두고,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얼른 다녀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뇬석아. 대구에 오면 절반 이상은 이 호텔을 이용하게 된다. 강변과 짝짜꿍이 되어 호텔 자체보다 하나의 덩어리가 무력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갠적으로 대기가 맑고 햇살 쨍한 날보다 차라리 이렇게 흐리지만 대기가 화사한 날을 좋아한다. 이튿날 숙소를 빠져나와 서변동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