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산 153

독립의 의지가 담긴 노작 문학관_20240616

노작 홍사용 문학관에 들러 소위 멍 때리며 덤덤히 파란만장했던 한 족적을 응시했다.글 속에 용해된 영혼들의 무거움을 작은 그릇으로 담을 수 없었지만 스미고 스쳤다.눈에 보이지 않고, 규정할 수 없어도 영혼에 물든 그 공간에서 그렇게 여름의 흥건한 땀 대신 글의 숭고함에 잠시 젖었다. 홍사용은 1900년 음력 5월 17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 151번지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육군헌병 부위를 지낸 홍철유(洪哲裕)와 어머니 능성(綾城) 구씨(具氏)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무관학교 1기생으로 합격한 부친을 따라 백일 즈음에 서울 재동으로 이주했다. 8세 무렵 군대가 해산되자 다시 아버지를 따라 생가 인근 마을인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모루] 492번지로 내려온다.9세가 되었을 때, 후..

일상_20240607

짙푸른 녹음도 익고, 봄에 틔운 결실도 익어 봄에 못다한 이야기가 영글었다.일상이란 건 약속하지 않아도, 정의 내리지 않아도 불변하는 생명의 역동이라 녹색 속에 숨겨진 것들을 일일이 찾으며 심장의 파동을 확신하고, 수풀속에서 잔망스레 휘감는 거미줄을 느끼며 찰나의 역동을 공감했다.얼마 전 담근 매실은 설탕의 열정을 깨워 춤을 추게 하듯 내딛는 발끝 걸음 하나에 건조했던 감성에 땀방울 송골송골 맺혀 잊었던 미소도 되찾았다.야외공연장 너른 잔디밭은 가장 만만한 산책 코스가 되어 버렸다.적당한 걸음으로 볼거리, 향기, 소리를 가득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은 원래 동탄면 오산리에 있었다. 언뜻 무덤 앞에 세워지는 석인상처럼 보이지만, 석인상의 관모와 달리 머리카락이 물결무늬처럼 희미하게 새..

일상_20240606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세상, 그 안에 작은 것들은 끊임없이 변했다.병점과 동탄 도심 한가운데 구봉산-센트럴파크-반석산-여울공원으로 이어지는 공원은 가장 규모가 거대하여 변화에 둔감할 법하지만, 언제부턴가 산책로를 임시 폐쇄하여 오산천을 넘나드는 육교가 들어선다는 암시를 했었고, 임시 폐쇄 되었던 산책로의 개방과 동시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육교는 단순히 두 곳을 연결하는 가교에서 벗어나 유명 관광지에서 보던 전망대와 육교를 아우르는 거대 구조물이 들어서는 중이었다.그럼에도 여름은 틈틈이 파고들어 활기가 가득했고, 땀으로 흥건할지언정 기나긴 낮으로 되돌려줬다. 임시 폐쇄되었던 구간이 다시 개방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산책로에 접어 들었다.오산천을 넘는 육교가 들어설 자리에 단순 가교가 아닌 거대 구조물이 들..

일상_20240605

여름으로 가는 계단에서 필연은 바로 산을 가득 메운 밤꽃으로 때론 매케한 향이 숨막힐 듯 대기를 가득 채웠다.이 꽃과 향이 지나면 어느새 여름은 이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좋든 싫든 우린 활력이 넘치는 여름에 맞닥뜨렸다.그렇게 후덥지근하고 짜증나는 여름이라도 우린 넉넉한 낮을 즐기며, 때론 계곡이나 바다로 도피하게 되는데 그건 도피가 아닌 고난을 이기고자 하는 인간의 각성 본능이었다.밤이 찾아오는 저녁에 단출한 차림으로 산책을 하며 더위를 만나는 동안 여름은 힘든 둔턱이 아니라 과정의 일부임을 몸소 느끼며 극복했다.어스름 밤이 찾아올 무렵,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 동안 꽤 많이 걸었다.야외공연장에 남은 장미는 마지막 혼신을 붉게 태우고 있었다.심장을 가진 생명이 아닌 숙원이 모인 생명인 석상은 늘 같은..

아까시향 바람, 동탄_20240501

모처럼 동네 산책으로 10km 이상 걷기 도전.여느 해와 비교해 봐도 아까시향이 풍년이라 20km를 걸어도 입에 개거품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역시 행복한 오감의 위력을 절감했다.아카시향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거기에 이팝을 비롯하여 각종 봄꽃들과 들판을 뚫고 나오는 신록이 더해져 국토종주를 해도 될 만큼 발자욱마다 희열도 넘치던 날이었다.아까시나무는 미국 원산의 콩목에 속하는 낙엽활엽수로 한국에서 흔히 부르는 아카시아는 사실 미국 원산의 이 아까시나무로,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와는 다른 식물이다. 실제로 아까시나무에서는 하얀 꽃이 피고, 아카시아에서는 노란 꽃이 핀다.과거에 미국 원산의 이 나무(pseudoacacia)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아카시아'로 잘못 불리게 되었는데, 일본의 영향을 받았던 과거 한..

일상_20240317

봄소식하면 머니머니해도 봄의 전령사들인 꽃 아니겠나.그 봄소식을 주워 담으러 동네 산책을 나섰다.어느새 산수유도 서둘러 봄소식을 알렸다.반석산에 흐드러지게 핀 생강나무꽃은 사실 다른 전령사들에 비해 부지런하고 지구력이 좋다.반석산 낙엽무늬 전망데크에 도착.대기가 비교적 깨끗한 날이라 성석산과 부아산이 조망되었다.조만간 이 황량한 들판이 봄에 물들겠지?겨우살이는 부쩍 자랐다.도심에 겨울살이가 있으리라 생각 못했지만 몇 년 전 가족들과 산책하며 알려줘서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째려봤다.또 다른 봄의 전령사, 매화도 이제 막 개화 중이었다.복합문화센터 뒷뜰에 매화와 산수유가 모여 봄잔치를 준비 중이었다.

일상_20240211

왕형님이자 어르신 만나러 가는 길에 어설프지만 엷은 바람 옷가지 입고 찾아온 봄의 향기를 만났다.땅밑 동토는 깊이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봄이 데리고 온 대낮은 부쩍 길어진 자취를 남겼는데 거기에 맞춰 어딘가 숨어버렸던 길 위 작은 생명은 한둘 모습 드러내며 극적으로 봄을 마중 나왔다.아직은 황량한 겨울 잔해 속에서 조심스레 봄을 맞이할 또 다른 생명은 그 누굴까?휴일에 정갈한 공원의 정취는 그 어느 곳보다 친숙해져 버렸다.걸음 수를 채우려 한참을 걷다 여울공원까지 넘어왔는데 점점 익숙해짐과 동시에 거리감도 무뎌졌다.여울공원의 정중앙이자 화목원 한가운데 그리스식 조형물과 더불어 비정형적이면서도 나름 원칙이 있는 계단의 기하학적 배치가 정형적인 길을 연장시켰다.여울공원에 온 김에 꼭 찾아봬야 할 왕형..

일상_20230723

장마에도 꽃은 피고, 물방울 열매는 맺는다. 그 계절의 작은 탄생들은 길 따라 해류처럼 흐르고, 어딘가에 고여 길의 형체도 덧씌워 생명을 이끈다. 아무리 견고하게 다진 길도 생명의 분절은 길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처럼 길을 만드는 건 실체를 짓누르는 중력이 아니라 유수처럼 흥겨운 흐름이 궁극이다. 비구름이 유유자적하는 길을 밟으며 어느새 길의 호흡에 자연의 혈관은 심장처럼 멈출 줄 모르고 약속처럼 의지를 추동하던 날이다. 우산 하나에 의지해 물에 젖을 각오로 길을 나서 습관처럼 오산천변 산책로의 나무 터널 아래로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자연 발원하는 여울도 많은 비를 방증하듯 갈래갈래 폭포가 되어 이별과 재회를 반복했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는지 꽃은 세찬 장마에도 꼿꼿이 살아갈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