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일상_20200502

사려울 2021. 12. 31. 02:54

봄은 봄이다.

아직도 꽃을 틔우지 않은 꽃은 많지만 시기의 차이일 뿐, 자연의 약속은 그릇됨이 없다.

하루 종일 따스한 봄볕이 가장 좋은 양분이었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그 빛깔은 더욱 곱기만 하다.

이미 한 달 전에 꽃잎을 열고 함박웃음을 짓는 두 녀석들은 언제 봐도 화사한 미소로 삭막하던 베란다에 화색을 돌게 한다.

냥이가 뜯어 먹었던 이파리는 원래대로 자라 점점 단풍의 위엄(?)을 갖기 시작한다.

이제 온전히 제 의사가 되어 버린 탁자 의자에서 나른한 하루를 보내는 녀석은 어딜 가나 따라다닌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가족이 걸리면 발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앉아 있기 전까지는.

택배 박스는 녀석이 필히 검수하는 항목이자 전유물이다.

그렇다고 오래 있는 건 아닌데 어떻게든 한 번은 이렇게 들어가서 아늑한 정도 테스트를 거친다.

산책 삼아 집을 나서 냥이 마을로 향하는 길에 제철을 만난 영산홍이 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화려한 꽃을 피웠다.

공원을 가로질러 곧장 냥이 마을로 가는 길.

길옆 가지런히 뻗은 일련의 가로수 사이를 걷는다.

아직은 옅은 신록을 준비 중이지만 이내 하늘이 완전 가려질 만큼 자욱한 이파리로 물들겠지?

냥이 마을에 도착, 녀석들이 질서 정연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매일 음용수와 밥을 챙겨 주시는 분이 계셔서 가끔 한 끼 정도만 해결할 양을 가져오는데 그래서인지 녀석들과 서서히 친해져 이제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모여든다.

검정 얼룩이와 이쁘니, 태비 어미 카오스는 너무 경계가 심한 녀석이라 멀찍이 거리를 둔다.

다행히 냥이 마을에 사는 녀석들은 대부분 모였다.

치즈 뚱이 두 아이와 카오스 아이인 이쁘니.

치즈 얼룩이는 이제 아무런 경계심 없이 다가온다.

카오스처럼 경계심 많은 치즈 뚱이가 스멀스멀 다가와 아이들이 끝내고 남긴 식사를 시작한다.

삼색 태비와 이쁘니는 가까이 오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내가 멀어지길 기다린다.

그래, 녀석들아 조금만 기다리면 그릇 어느 정도 정리하고 떠날 테니 기다려.

식사를 끝내고 돌아선 치즈 얼룩이.

이쁘니는 너무 순하고 경계심이 많아서 여간해서는 다가오지 않는다.

장작 더미는 냥이들이 쉬는 휴게소와 같은 곳.

나이 든 치즈는 가끔 오는 삼색이 아빠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냥이들에 대해서도 경계가 심한데 늘 피해 다니며, 가끔 배가 고프면 구슬픈 목소리로 부른다.

그러면 녀석이 보이지 않지만 대략 가까운 곳에 밥과 물을 떠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나타나 황급히 챙겨놓은 식사를 한다.

냥이 마을을 벗어나 야외음악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로나19 여파가 심해서 야외 공원조차 인적이 드물다.

복합문화센터를 관통하여 이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꽃밭 가득 피어있는 영산홍 무리를 지난다.

아직 신록이 완연한 계절이 아닌데도 나무 터널이 꽤 울창하다.

이 길을 걷다 보면 거리와 시간을 잊을 만큼 나무 터널은 기분을 정화시킨다.

몽글몽글 익은 민들레 씨앗은 아직 여름이 되지 않았는데 벌써 세상 여행 채비를 끝내고, 어떤 자루는 모든 씨앗이 날아가 홀로 남았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이 계절을 누리고, 냥이 마을에서 생명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척이나 갑갑한 날이지만 이렇게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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