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산 136

일상_20200512

눈 덮인 양 이팝나무가 뽀얗게 물들고, 넘실대는 바람결에 향긋한 아카시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봄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야생마 같지만 그 계절의 옷깃에 내비치는 풍경은 향기로 가득하다. 살랑이는 아카시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소담한 길을 따라 피어나는 신록을 만나러 가는 길은 흥겨운 놀이를 쫓는 아이 같다. 산책의 행복을 저미던 시간, 손끝에서 조차 잠자고 있던 유희의 감각이 긴 잠을 깨치고 일어나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도 피부를 간지럽힌다. 노작마을 초입에서 반겨주는 이팝나무의 화사한 인사. 마치 뽀얀 눈이 덮여 눈꽃 만발한 나무 같다. 여기를 지나 곧장 노인공원을 거쳐 냥마을로 향했다. 뽀샤시한 외모와 순둥순둥 성격, 하지만 길냥이 특유의 경계심으로 가..

일상_20200504

마치 녀석은 처음부터 가족 같다. 붙임성과 넋살에 있어 냥이와의 간극은 기우였을 뿐,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무척이나 적응을 잘하고 애교도 끊임없다. 올리브영에서 구입한 딸랑이 두 개 중 하나는 거의 외면당하고, 나머지 하나는 잘 가지고 논다. 아주 미세하게 방울 소리만 나도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사냥놀이에 바로 빠져든다. 이런 녀석과 한참을 즐긴 후 창 너머 청명한 대기를 쫓아 냥이 마을로 출발한다. 어린이날 전날이라 그런지 야외공연장 잔디광장엔 아이들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냥이 마을로 바로 직진하지 않고, 반석산 둘레길로 우회하여 냥이 마을로 들어서기로 하자. 특히나 노란 꽃들이 눈에 띄어 쉰들러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데 노란색 인식이 완벽하지 않지만 이쁘게 잘 표현되었다. 하..

일상_20200502

봄은 봄이다. 아직도 꽃을 틔우지 않은 꽃은 많지만 시기의 차이일 뿐, 자연의 약속은 그릇됨이 없다. 하루 종일 따스한 봄볕이 가장 좋은 양분이었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그 빛깔은 더욱 곱기만 하다. 이미 한 달 전에 꽃잎을 열고 함박웃음을 짓는 두 녀석들은 언제 봐도 화사한 미소로 삭막하던 베란다에 화색을 돌게 한다. 냥이가 뜯어 먹었던 이파리는 원래대로 자라 점점 단풍의 위엄(?)을 갖기 시작한다. 이제 온전히 제 의사가 되어 버린 탁자 의자에서 나른한 하루를 보내는 녀석은 어딜 가나 따라다닌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가족이 걸리면 발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앉아 있기 전까지는. 택배 박스는 녀석이 필히 검수하는 항목이자 전유물이다. 그렇다고 오래 있는 건 아닌데 어떻게든 한 번은 이렇게 들어가서..

냥이 마을을 돌아 석양이 지다_20200425

냥이들 만나러 가는 길이면 옆길로 새지 않고 정주행이다. 누군가 관심으로 꾸준히 챙겨 주시만 나 또한 이게 내 표현 방법인 셈이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녀석들의 철옹성 같던 경계가 무너지는 재미, 나만의 몰취향이 되어 버렸다. 순둥순둥한 치즈뚱이는 늘 마지막 차례라 밥은 좀 남겨 뒀다 뒤에 식사하는 녀석들을 챙겨 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치즈뚱이다. 가장 경계가 심한 카오스는 치즈뚱이처럼 몇 아이의 어미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겁을 먹고 줄행랑이라 조심해야 된다. 치즈뚱이는 지나는 행인들에게 촉각이 곤두섰다. 까칠하지만 인물 좋은 삼색이도 볼 수 있었다. 녀석들이 식사를 거의 끝낼 즈음해서 냥이 마을을 벗어나 복합문화센터 뒤뜰을 경유하여 반석산 전망데크로 올라갔다. 며칠 전과 달리 어느 순간부터 전형적..

냥이 마을_20200423

복합문화센터 뒤뜰에서의 휴식을 끝내고 곧장 냥이 마을로 향했다. 대기가 맑은 데다 화창한 날씨는 덤이라 반석산을 한 바퀴 돌아도 여전히 발걸음은 경쾌했다. 10kg짜리 냥이 밥을 구입한 덕에 당분간 녀석들과 울 냥이에 대한 식사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아 그만큼 녀석들을 찾아오는데 부담도 없었다. 마을에 도착해서 이제는 낯익은 녀석들은 알아서 총총걸음으로 모이며 주위를 맴도는데 처음에 3 녀석이 보여 3 그릇을 나누어 줬고, 뒤따라 두 녀석이 오자 먼저 배를 채우던 녀석 둘이 자리를 양보했다. 식사자리에 가장 먼저 입을 대는 녀석은 치즈얼룩이와 검정얼룩이로 녀석들은 전혀 망설임 없이 식사를 하는데 가끔 식사 중에도 다른 밥그릇에 옮겨 다니며 식사를 하는데 다른 녀석들도 전혀 거부반응이 없는 걸 보면 무..

일상_20200423

여전히 서늘한 봄이지만 그래도 반가운 이유는 맑은 대기로 인해 봄의 매력을 여과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청객과도 같은 황사와 미세먼지가 언제 다시 습격할지 모르지만, 그런 이유로 인행에서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고 정설처럼 흘러 왔는지 모르겠다. 흐르는 시간이 안타깝다고 여기는 것보단 한껏 팔 벌려 누리기로 한 마당에, 그래서 치열한 시간들 사이에 이런 달콤한 용기를 주는 게 아닐까? 냥이 마을도 찾을 겸 온전하게 맑은 봄도 만날 겸해서 집을 나서 우선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소홀한 반석산 북녘을 관찰하기로 했다. 곧장 반석산 정상을 지나 낙엽무늬전망데크에 다다르자 역시나 성석산을 비롯하여 서울 진입 전 장벽처럼 서 있는 청계산 방면까지 또렷하게 보였고, 급하게 올라와 턱밑까지 차오른 숨은 금세 감..

냥이 마을_20200421

얼마 남지 않은 하루 낮시간대에 산책 삼아 집을 나서 곧장 냥이 마을로 향했다. 봄바람이 적당한 청량감을 싣고 코끝을 부딪히는 날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냥이 마을에 도착, 때마침 치즈 뚱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카오스 가족은 보이지 않고, 아이 둘은 냥이 마을에 있는데 어미가 없어서 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가장 격한 반가움을 보여주는 치즈 얼룩이가 식사를 끝내고 어딘가를 응시하여 그 방향을 바라보자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렸다. 아이들이 식사를 끝내길 기다렸다 치즈뚱이가 식사를 시작했고, 뒤이어 얼룩 태비가 슬며시 다가와 조심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얼룩 태비는 늘 어미는 어디 두고 냥이 마을에 부비적 찾아와 다른 녀석들과 친해지려 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많던 날, 녀석들의 화목한 모..

봄길 산책_20200418

얼마 남지 않은 봄의 작별을 기약하며 잠시 스치는 한 순간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람도, 자연도 올 때는 반갑고, 갈 때는 서운하지만 마냥 생각을 그 자리에 머물러 두기보단 다음에 올 변화에도 관대하자. 매번 아쉽고 서운함이 반복되는 가운데 자연도, 나 자신도 성숙의 레드 카펫을 밟으며 무르익는 성찰이 되니까. 벚꽃이 줄지어 서 있던 자리가 어느새 신록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흔히 피는 꽃들도 하나 같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아름다움을 전도한다. 아직은 남은 개나리. 봄 내내 묵묵히도 화사한 약속을 지켰다.

냥이 마을_20200417

이번엔 평소에 비해 많은 양을 챙겨 갔는데 늘 보이던 냥이들이 보이질 않았다. 뭔 일이 있는 걸까? 주변을 둘러봐도 그리 큰 변화는 없는데. 어디선가 냥이들이 한 둘 모이기 시작해서 가까이 있던 녀석들이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온다. 밥이 오면 두 녀석이 가장 먼저 입을 댄다. 치즈 얼룩과 얼룩 두 녀석은 이내 친해져 이제는 녀석들이 제법 반갑다는 표현으로 몸을 문지른다. 처음에 비해 경계는 많이 풀렸지만 요 쪼꼬미 녀석은 아직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데 비해 밥은 용케 알고 달려와 두리번거린다. 행여 다른 녀석들이 올까 싶어 여기에 따로 밥을 넣었는데 얼룩이가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싶어 다가와 몇 입 먹는다. 배부른 자의 여유. 나무 가지에 얼굴을 비비는 표정이 익살 맞으면서도 귀엽다. 여기 모여사는 녀석들..

봄꽃 따라 번지는 핑크 퍼레이드_20200417

봄의 정점에서 전령사들이 잠자고 있던 봄을 일깨워 길게 기지개를 켠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의 진면목이 그토록 오랫동안 깊은 잠을 깨며 화사한 소식들을 알차게 준비해 왔다는 이치가 오묘한 싹을 틔울 줄이야. 들판에 피는 허투루한 야생화 조차 제각기 다른 모습의 개성을 드러내며 흐르는 시간을 잊게 만든다. 양분 가득한 봄의 기운을 먹고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세상 나기를 하는 존재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왜 숭고하고 거룩한지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냥이 마을에 들렀다 녀석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야외음악당으로 방향을 정하고 걷는데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는 봄이지만 벌써 화려한 예고 한다. 복합문화센터 방향으로 내려오면 영산홍도 하나둘 꽃망울을 틔우고 있는데 이 또한 진한 핑크빛을 탄생시킨다. 매혹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