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일상_20200512

사려울 2022. 8. 4. 20:36

눈 덮인 양 이팝나무가 뽀얗게 물들고, 넘실대는 바람결에 향긋한 아카시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봄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야생마 같지만 그 계절의 옷깃에 내비치는 풍경은 향기로 가득하다.
살랑이는 아카시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소담한 길을 따라 피어나는 신록을 만나러 가는 길은 흥겨운 놀이를 쫓는 아이 같다.
산책의 행복을 저미던 시간, 손끝에서 조차 잠자고 있던 유희의 감각이 긴 잠을 깨치고 일어나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도 피부를 간지럽힌다. 

노작마을 초입에서 반겨주는 이팝나무의 화사한 인사.

마치 뽀얀 눈이 덮여 눈꽃 만발한 나무 같다.

여기를 지나 곧장 노인공원을 거쳐 냥마을로 향했다.

뽀샤시한 외모와 순둥순둥 성격, 하지만 길냥이 특유의 경계심으로 가끔 만날 수 있는 이쁘니.
이 녀석이 식사 할라 치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기다려 주는데 때마침 그 녀석을 만나던 날에 굶주린 허기를 채우기까지 기다려 줬다.
배를 채우고 돌아서던 녀석들이 뒤돌아 쳐다 보던 눈빛은 지난한 길에서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었다. 

치즈뚱이와 모성애의 극치를 쥐어짜내는 녀석은 항상 껌딱지처럼 붙어 지낸다.

다른 녀석들은 적절한 사회화 시기를 지나 독립을 준비하며 점점 어미의 영역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지만 요 녀석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을 셈인지 어미 곁에 한사코 머무른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처음의 극심한 경계가 어느 정도 가라앉아 부근 어딘가에 있을 경우 발자국 소리를 듣고 용케 찾아온다.

아직은 접촉할 만한 여지는 두지 않지만 이 정도 발전 속도라면 얼마 되지 않아 부비부비할 녀석들이다.

냥마을 냥이들 보면 이쁘니 외모가 압도적으로 이쁘고, 성격은 냥순하다.

아마 일 년이 지나도 녀석은 나와 접촉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가장 경계심이 많고, 다른 녀석들에 비해 서열이 낮아 동정심이 생겨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게 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닌 데다 올 때마다 녀석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행히 이번 만남으로 안도하며 길이 안내하는 대로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봄 답지 않은 맑은 대기와 구름, 햇살이 함께 연출한 마법에 잠시 홀린다.

복합문화센터 야외음악당에서 연결된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아카시향에 취한다.

어디,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을 향그로운 바람 내음에 실린 아카시향을 따라 얼굴엔 미소로, 발끝은 가볍게, 마음은 행복의 설렘으로 성큼성큼 길을 밟으며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신록의 색감에도 취한다.

언제 오더라도 누구 하나 마주칠 반석산 육각정에서 잠시 끓는 숨을 재운다.

코로나19로 인해 거리 인적은 급격히 줄어 어디를 가든 분위기는 차분하다.

반석산 정상에서 곧장 오산천으로 내려와 집으로 방향을 잡는다.

팬데믹이 무색하게도 지천은 어느새 봄기운이 무럭 자라나 여름을 기린다.

누구의 공로라고 밟힌 들 그 의미가 무색하게도 아카시향은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다.

가을이 되면 아름답게 단장하는 이 길은 봄부터 차곡차곡 가을을 위해 준비한다.

조용한 저류지공원은 대신 싱그럽고 가벼운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하루의 등불이 꺼져가는 서녘의 햇살은 맑은 하늘의 응원에 선명한 자신감과 함께 열정의 약속을 다짐하며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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