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화단에서 늑장을 부리던 영산홍이 고된 준비를 마치고 꽃잎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 녀석이 특이한 건 처음 하얗던 꽃잎이 해가 거듭될수록 어디선가 핑크빛과 조금씩 어울리더니 이제는 아예 숙명처럼 함께 공생한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신비롭다. 한바탕 비가 내린 뒤에 미처 하늘로 흩어지지 못한 빗방울의 늑장 덕분에 가느다란 빛이 미려해지던 순간까지... 아직은 망울진 꽃이 많아 이 망울이 터질 무렵이면 얼마나 화사할까 기대된다. 잠시 들른 냥마을은 전날부터 내린 많은 봄비로 텅 비어 있어 식사만 남겨 두고 바로 자리를 뜬다. 들판의 흔하디 흔한 잡초라고 할지라도 이런 어울림을 통해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