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556

봄소리_20200308

무심코 봄이 왔음을 체감할 수 있었던 건 동네에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산수유와 망울이 영글어가는 매화, 그리고 땅에 넙쭉 달라붙어 있는 새싹 덕분이다. 초봄 기운이 완연하던 일요일이라 가벼운 차림으로 동네를 나섰고, 길 옆에 쉽게 눈에 뜨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화사한 봄소식이 망울을 뚫고 세상 구경을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향해 햇살 양분을 듬뿍 담고 있는 매화꽃망울. 산수유는 벌써 꽃을 틔우기 시작했다. 매화보다 산수유가 더 빠르구나. 겨울을 지낸 앙상한 나뭇가지에 봄꽃은 한눈에 시선을 잡아 끈다. 나무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기지개를 펴고 겨우내 간직했던 컬러를 뽐내기 시작했다. 단지 봄이 되어 그들의 본질에 충실할 뿐인데 그 모습에서 작은 행복을 만난다.

눈 내리는 산책에서 만난 냥이_20200216

그립던 눈이 사무치도록 내리던 휴일, 반석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동안 변덕스럽게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내리던 눈은 이내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지만, 발길이 쉬이 닫지 않는 곳에선 서로 모여 무던히도 조잘댄다. 겨울에만, 그것도 눈이 내릴 때만 만날 수 있는 뽀송뽀송한 눈꽃이 화사한 꽃잎을 부풀려 이따금 내비치는 햇살을 굴절시켜 망막이 시큰거리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모든 신경은 지칠 기색이 없다. 햇살을 가르며 그치질 않는 눈송이가 어느새 무르익어 추운 겨울밤도 따스하게 저민다. 눈이 내린 시간은 좀 지났지만 여전히 눈발은 날려 눈이 쌓일만한 곳엔 풍성한 솜을 뿌린 것 같다. 굶주린 길냥이 가족을 만난 곳, 세찬 눈보라와 달리 정취는 따스하다. 올라프?는 아니구나. 굵직..

아산과 진천으로_20200210

언론의 속성은 진실의 열정만 있는 게 아니라 추악한 관심끌기도 있다. 코로나19의 광풍을 피해 우한에서 우리나라로 온 교민들이 현재 아산과 진천에 격리 조치 중인데 어떤 언론에선 마치 모든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반대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제 보듬어 안아 주는 주민들도 상당히 많고, 이런 오해의 소지는 자칫 분열의 도화선이 될 수 있어 상당히 신중한 표현이 필요하다. 하긴 사명감이란 게 모든 이가 동등하게 가질 수 없는 거라 뭘 바라겠나 마는 대중 앞에서 선동에 대한 책임감 정도는 가져야 되겠다. 자극적인 것만이 단기간에 관심을 끌 수 있고, 선동은 균열의 파도에 실리면 화력이 배가 되니까. 언론에 의한 고아, 공공의 적이 될 뻔했던 한국 교민들을 받아 준 아산과 ..

동탄 노작홍사용문학관_20200207

동탄에 있는 노작 홍사용 문학관은 아름다운 시가 때론 추위나 표독한 칼끝보다 날카로운 무기와 같음을 전시해 놓았다. 허나 칼날이 한결 같이 서슬퍼렇고 위협적이라면 시구는 더욱 예리하면서도 거부감이 전혀 없고, 밤하늘에 약속된 별처럼 묵직하고 개운한 여운을 약속한다. 동탄에 들어선지 꽤나 오래된, 아담한 박물관에 수놓은 시는 아름다운 물결과도 같고, 강인한 파도처럼 글은 언제나 꿈틀댄다. 일제침략기에 우회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시인들의 넋은 영원한 유물인 시로 남아 숭고한 정신-일본을 저주하거나 비꼬는 게 아니라 오로지 독립의 신념-을 표현함으로써 어쩌면 역사적인 앙금 없이 민족의 우직함을 각인 시켜준다. 문학관을 방문하기 전, 반석산 정상과 둘레길을 먼저 거닌다. 둘레길 대부분에 눈은 녹아 흔적이 없지만..

일상_20200124

명절 연휴 첫 날. 오는 사람들마다 난리다. 덕분에 이 녀석이 가장 풍성한 명절을 보냈고, 선물도 잔뜩 받았다. 낯가림 없이 아무한테나 덥석 안기는 넉살과 한 인물하는 면상이라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녀석이 주인공으로 자연스레 캐스팅 되어 버렸다. 고관절과 왼쪽 다리 골절 흔적으로 인해 걸을 때 절룩거리지만 장난감으로 사냥놀이 즐길 때는 냥이의 본모습이 나와 무척 날렵해진다. 안충과 귀에 득실 대던 진드기, 여타 다른 질병은 이제 거의 다잡았는데 글로불린과 백혈구 수치가 특히 높게 나와서 그 추이를 지켜보잔다. 잠시 외출하려고 옷을 끄집어 내어 한눈 판 사이 옷을 점거해 버렸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외출도 이제 눈치를 봐야 한다. 노작마을을 지나 오산천 산책로를 걷는데 공원이 텅 비어 무척 을씨년스..

일상_20200101

새해 첫날, 지난 연말의 피로를 푼답시고 퍼질러 자고 늦게 일어나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동탄 산책을 나섰다. 이번 겨울이 그리 춥지 않아 경량 패딩에 바람막이를 덧대어 걸쳐 입고 초저녁 어둠이 자욱한 반석산으로 향했다. 복합문화센터를 지나 반석산 정상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전망 데크에 도착하여 한동안 텅 빈 데크 위에서 음악을 틀어 놓은 채로 야경을 마주하곤 머물러 있었다. 새해 첫날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간헐적으로 보이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그 이후 어떠한 사람들과도 마주치지 않았던 만큼 반석산은 텅 빈 새해 첫날밤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반석산 데크에 서서 마치 세상 전체의 시간이 정지했을 만큼 고요한 야경을 바라보는 순간, 새해 첫날이라는 의미가 뒤섞여 묘한 여운과 더불어 지나간 시간의..

선명한 짜집기 흔적, 영화 백두산_20191231

멍한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내고, 누나네와 함께 동탄CGV에서 영화를 보며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마땅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 이병헌, 하정우를 믿기로 해서 백두산을 선택, 커피와 팝콘을 한아름 안고 상영관으로 들어서자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울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나타낼 소재인 백두산이 폭발하여 남북 합작으로 폭발을 막아 보겠다는 설정이라 꽤나 관심이 갔고, 거기에 더해 이병헌, 하정우 투톱에 전도연과 근래 핫한 배우 마동석이 출연한다. 이병헌과 하정우 특유의 섬세한 연기는 진지함과 개그가 함께 섞여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저런 개그가 과연 나올까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영화에서 차용한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일상_20191229

하루가 지나 초저녁 무렵에 전날처럼 반석산 둘레길을 같은 경로로 걸었다. 다만 달라진 건 화창하던 날씨가 얇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로 바뀌었다는 것. 우산을 쓰고 터벅터벅 걷다 전망데크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여전히 초저녁시간이라 도시의 불빛은 화려하지만 동탄 1과 2 신도시 사이 꽤나 너른 공간은 허허벌판이라 깊은 암흑 바다 같았다. 노작공원 방향으로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내리막길 도중에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쉬었다 가고 싶지만 빗물이 흥건해 그냥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걸로 만족했고, 하루 만에 멧돼지에 대한 공포는 사라져 버렸다. 둘레길을 통틀어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 중 몇 손꼬락 안에 드는 괜춘한 곳이다.

일상_20191225

성탄절의 설렘보단 늘 맞이하는 휴일 중 하루를 대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계절이든 각각의 매력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겨울이나 여름이 되면 마음과 달리 몸은 위축되어 정적으로 바뀌고, 이내 익숙해져 버렸다. 느지막이 집을 나서 여울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가 모처럼 공원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나무를 만났다. 겨울이라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오산천 산책로를 따라 나무가 가까이 있는 북쪽 공원 입구로 들어서 나무를 한 바퀴 둘러보자 그제서야 서쪽으로 기운 석양이 눈에 띄었다. 언제 보더라도 나무의 기품은 변함이 없고, 가지를 지탱하는 기둥이 옆으로 뻗은 나무 가지를 지지하고 있었다. 나무를 잠시 둘러보고 오산천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파트 건물 사이에 걸린 석양이 보인다. 휴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