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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산책_20200418

얼마 남지 않은 봄의 작별을 기약하며 잠시 스치는 한 순간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람도, 자연도 올 때는 반갑고, 갈 때는 서운하지만 마냥 생각을 그 자리에 머물러 두기보단 다음에 올 변화에도 관대하자. 매번 아쉽고 서운함이 반복되는 가운데 자연도, 나 자신도 성숙의 레드 카펫을 밟으며 무르익는 성찰이 되니까. 벚꽃이 줄지어 서 있던 자리가 어느새 신록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흔히 피는 꽃들도 하나 같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아름다움을 전도한다. 아직은 남은 개나리. 봄 내내 묵묵히도 화사한 약속을 지켰다.

봄꽃 따라 번지는 핑크 퍼레이드_20200417

봄의 정점에서 전령사들이 잠자고 있던 봄을 일깨워 길게 기지개를 켠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의 진면목이 그토록 오랫동안 깊은 잠을 깨며 화사한 소식들을 알차게 준비해 왔다는 이치가 오묘한 싹을 틔울 줄이야. 들판에 피는 허투루한 야생화 조차 제각기 다른 모습의 개성을 드러내며 흐르는 시간을 잊게 만든다. 양분 가득한 봄의 기운을 먹고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세상 나기를 하는 존재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왜 숭고하고 거룩한지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냥이 마을에 들렀다 녀석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야외음악당으로 방향을 정하고 걷는데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는 봄이지만 벌써 화려한 예고 한다. 복합문화센터 방향으로 내려오면 영산홍도 하나둘 꽃망울을 틔우고 있는데 이 또한 진한 핑크빛을 탄생시킨다. 매혹적인..

나른한 봄의 평화, 화진포_20200414

파도와 바람은 지치지도 않는다. 허나 그 선율은 치유의 유전자가 있어 더 이상 북으로 갈 수 없음에 대한 위로를 해주며 동시에 왔던 길을 고스란히 바라고 떠날 응원도 빼놓지 않는다. 세상에서 발자취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무수히 많아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시간의 감회를 자근히 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정의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의 스승인지 통감한다. 내가 떠나더라도 자연은 무심하게도 안색 조차 변하지 않지만 또한 다시 만나더라도 태연한 모습으로 대답하며, 언제나 변치 않는 신뢰로 회답한다. 요란한 믿음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한낯 휘영청한 거품일 뿐. 숙소에서 출발 준비를 모두 끝내고 베란다에 나와 전날 거대한 암흑과도 같던 바다가 전날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밀었다. ..

길 위의 고단함_20200410

잠시 나간 산책길에서 길 위 생명의 고단함을 헤아린다. 초보 애묘인이지만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인간과 함께 한 생명이라면 분명 공존공생하는 숙명과 더불어 이로운 부분이 훨씬 많을 터. 그럼에도 길로 내몰린 가련한 생명들에 동정 이상의 박애 정신은 발휘하지 못했다. 산책 삼아 밥 한주먹 담아서 반석산으로 향했고, 냥이 마을에 도착할 즈음 석양이 서편 마루에 걸렸다. 도착 했을 때는 냥이 마을이 텅비어 발걸음을 돌릴까 하다 녀석들을 부르자 몇 번 봤다고 어디선가 몇 녀석이 달려왔다. 위계 질서가 엄격함에도 늘 먼저 먹는 녀석이 배부른 만큼 가장 순둥이한테도 밥을 봉투째 내밀자 눈치를 보다가 어느새 맛나게 먹는다. 너무 약하고 소심하고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라 돌아서는 길에 늘 마음에 걸린다. 냥이들과 헤어진 뒤..

반석산에서 기분 좋은 야경 산책_20200404

정적이 무겁던 이 도시가 해가 지날수록 야간 산책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초저녁에 집을 나서 습관적으로 불빛을 따라 걷던 중 간헐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도리어 반갑다. 가장 만만한 반석산 둘레길을 선택, 익숙한 길을 따라 등불도, 봄소식도 피어나 방긋 웃어줘 피로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둘레길을 걷다 처음 한숨 돌리는 곳은 오산천 방향 전망데크로 오산천 너머 여울공원은 환한 가로등 불빛이 무한할 만큼 적막하다. 이따금 지나는 사람들의 소리가 반가울 때, 바로 이 순간이다. 벚꽃이 한창인 산책로엔 밤에도 드물긴 하지만 인적은 쉽게 눈에 뜨인다. 둘레길을 걷다 가장 지속적인 오르막길을 지나면 두 번째 나뭇잎 전망데크에서 도착하여 습관처럼 한숨 돌린다. 해가 거듭될수록 동탄 일대는 꺼지지 않는..

일상_20200404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카메라 잡은 김에 베란다에 봄소식도 짧게 찍어봤다. 종류가 꽤 많은데 다른 꽃들은 아직 깊은 잠을 떨칠 기미만 보여 보란 듯이 화사하게 만개한 가장 부지런한 녀석의 소식만 담는다. 특정 컬러만 포착했는데 나쁘지 않다. 아니, 도리어 더 감각적으로 표현될 때가 더 많다. 단풍 싹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건 냥이가 이빨로 검수했기 때문. 새 이파리를 얼마 전 틔웠지만 녀석이 하나를 뚝딱 따서 몸보신 한 덕에 조금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계절의 소식은 반가울 뿐이다. 낮 산책 때 버스정류장 부근을 지나면서 유독 벚나무 하나에 참새들이 모여 조잘거리며 한데 어울린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과 미약한 바람에 나풀거리는 꽃, 거기에 참새들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다.

봄꽃 가득한 길을 거닐며_20200402

봄이 되어서야 보이는 것들, 꽃과 새로 피어나는 녹색과 더불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흔하게 부는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에서 조차 실려 오는 싱그러움이다. 퇴근길에 미리 챙겨둔 카메라로 사람들이 흔히 외면하는 가로수를 한 올 한 올 시선으로 챙기던 사이 부쩍 길어진 낮을 무색하게 만드는 아쉬운 밤이 젖어들었다. 지금까지 감동에 너무 무심했던지 길가에 늘 오고 가는 계절에도 홀로 감동을 오롯이 챙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시간이란 녀석이 늘 무심하다 지만 만약 시간이 옭아매는 조바심이 없었다면 감동의 역치도 없었을 것을. 평소 발길이 뜸한 국제고등학교 인근 거리에 어느새 벚꽃이 만개하여 화사해졌다. 국제고등학교를 지나 사랑의 교회 옆 인도로 걷던 중 만난 들꽃의 빛결. 사랑의 교회 앞 정원에도 봄이 완연하..

예천에서 봄을 채취하다_20200328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날씨는 흐렸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예천으로 출발하기 전, 여울에 잠시 손을 담궈 작별 인사 치례를 했는데 수풀이 무성한 여울이 겨울을 지나 아직은 여울을 감싸는 나뭇가지가 앙상해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허전해 보였다. 그래도 계절과 건기, 우기 구분 없이 수량은 풍부해서 밤새 물 흐르는 소리가 선명했고, 서브리미널 효과 인지 숙면을 취했다. 의외로 맑은 물에 비해 물이끼는 눈에 띄지만 봄을 지나 여름이 오면 수풀이 우거지며 다슬기가 말끔히 청소하겠지? 예천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풍기를 지나 꼬불꼬불 산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시간이 걸려 이왕 갈 거면 일찌감치 출발해야겠다. 예천으로 넘어와 머위와 진달래를 따다 봄 향기에 취한다. 예천 사유지는 머위 군락지..

봄이 내려앉은 흔적_20200326

싱그러운 봄의 조화로움으로 모든 생명이 무사히 지나간 고난에 대한 안도와 함께 움츠린 기지개를 켠다. 비록 황량한 들판이 자욱할지라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동감은 그래서 더 돋보이고 반갑다. 내가 사는 고장도, 머나먼 지역도 봄은 늘 같은 행보를 걷지만 천차만별의 각양각색을 일깨운다. 늘상 부는 바람도 각별하게 만드는 봄, 모든 계절이 사이좋게 오고 가는 대한민국은 이래서 숭고하고 아름답다. 작은 병아리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것 같은 개나리는 흔하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면 보이지 않던 애정이 넘친다. 산수유꽃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열매가 약이 되는 건가? 복합문화센터의 정취에서 봄의 싱그러움과 나른함이 느껴진다. 착한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으로 어느 누군가의 선행이 끊이질 않고, 이 가련..

냥이_20200324

베란다 한 켠에서 활짝 핀 봄. 냥이 병원 가는 날이라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고, 다행히 전혀 문제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귀와 눈 사이에 털 밀도가 낮아지며 피부가 비치는 것 같은 원형 탈모 비스므리한 낌새를 채고 병원을 데려갔는데 전혀! 이상 없단다. 가는 길에 심장사상충 예방 접종도 했는데 내가 가는 병원에 꽤 많은 수의사쌤 중 가장 앳되 보이는 쌤은 정말로 선하고 착해 보인다. 중성화 수술 당시 하루 입원 중에도 밤늦게 찾아가 따뜻한 두유 몇 개 드린 적 있는데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선한 말투와 인상은 천성 같아 댕이와 냥이한테 잘해 줄 것 같다. 베란다에 화초들이 방긋 꽃망울을 틔우는 완연한 봄이다. 올해는 얼마나 화사한 소식들을 전하려나? 병원 가기 전, 캣타워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