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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작은 갤러리, 컨츄리 블랙 펍_20200709

한이와 같이 감곡에서 만나 여주 행님과 감곡 형을 찾아뵙는다. 여주 행님은 어차피 은사와 같은 분이라 언제든지 찾아뵙게 되지만 감곡 형은 도대체 얼마 만인가? 그렇다고 먼 곳에 사는 것도, 연락이 끊어진 것도 아니고, 유체이탈한 것처럼 바쁘지도 않건만 거의 1년 만에 뵙는다. 늘 서글서글한 인상에 매끈한 어투, 진정한 삶은 곧 끊임없는 변화와 능동적 대처이기에 늘 발로 뛰는 형인만큼 감곡, 장호원에서는 마당발이다. 그런 형을 여주 행님과 고향 친구와 함께 찾아갔으니 지극 정성에 멋진 자리로 안내했다. 작긴 해도 산 중턱이라 사람들이 오려나 싶었지만 입소문이 그래서 무서운지 저녁 시간이 되자 알흠알흠 주차장에 차가 들어서 금세 너른 주차장에 반 이상 들어찬다. 거의 1년 만에 만나 뵙는 반가움이 무색하게 ..

일상_20200530

화창한 날씨에 맞춰 가벼운 차림으로 만보 걷기에 도전한다. 일상처럼 피부에 쏟아지는 햇살이 부쩍 다가온 여름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어느새 흥건해진 등짝을 달래며 꾸역꾸역 길을 오로지 하는 사이 꽤나 많은 걸음수를 채웠고, 집안에서 솟구치는 게으름을 떨치는 보람을 정직한 숫자에 위안 삼는다. 휴일 시곗바늘은 조급한 성격을 감추지 못하고 질주하는데 그럼에도 더위를 뚫고 가슴에 안기는 간헐적인 바람이 개운함만 남긴 채 피로를 망각시키는 휴일은 여전히 행복에 겹다. 장미의 미소? 살짝 물 빠진 듯한 이 색감이 도리어 자극적이지 않아 좋다. 정상 인근 낙엽무늬 전망데크에 서서 사정없이 흐르는 땀방울을 어르고 달랜다. 더불어 눈은 시원하다. 호수공원으로 내려와 바삐 움직이는 꿀벌의 꽁무니를 쫓아 몰입의 희열도 맛..

일상_20200522

해 질 녘 둘레길에 발을 들여놓고 쉴 새 없이 한 바퀴를 둘러보며 아카시꽃이 떠난 흔적을 되짚어 본다. 미려한 향과 형형색색 다른 표정을 지닌 봄의 결실을 이어받아 곧 찾아오는 여름은 과연 어떤 모습 일까? 겨울이 훑고 간 황량한 스케치북에 하나둘 그려진 신록의 싹과 자연의 붓이 찍어낸 고운 색결, 거기에 더해 심심한 여백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역동적인 생명들. 조만간 신록으로 그득히 채워질 약속만 남겨 두고 한 계절을 풍미하던 시절의 흔적들은 이따금 지나는 빗방울에 용해되어 시간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노인공원에서 둘레길 곡선에 발을 들인다. 얼마 전 지나간 태풍의 풍마로 쓰러진 아카시 나무지만 여전히 왕성하고 집요한 생존 본능으로 새 생명을 잉태시켰다. 큰 나무들이 또 다른 세상을 만든 것 같은 둘..

냥이_20200520

보통 현관문을 열고 귀가하게 되면 녀석은 현관까지 어떻게든 마중 나오는데 어쩐 일인지 제 쿠션에 퍼질러 누워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뒤늦게 녀석이 부시시 나와 간식 하나를 상납하자 언제나처럼 가족들 껌딱지가 된다. 베란다 정원 한 켠 영산홍이 이제서야 만개했다. 늦은 건 게으름과 기만이 아니다. 신뢰와 인내의 시선에선 화답과 확신이며, 인생과 매한가지로 꽃은 매력의 본분이 최선일 수도 있다. 하나의 꽃망울에 두 빛깔이 어우러져 단색의 편견을 뛰어넘는 경이로움처럼 한계는 언제나 내 편견의 부산물이다. 때마침 맑은 대기로 인해 석양의 물결이 흥겨움에 춤을 춘다. 테이블 파수꾼? 테이블 위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의 눈빛이라 이렇게 똘망똘망하다.

새벽 내음_20200515

가족들의 쉼터가 있는 오지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쉴 새 없이 비가 내린다. 방수 재킷을 걸치고 잠시 빗소리를 감상하다 보면 세상 시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지고, 자칫 무료할 것만 같은 문명이 차단된 곳임에도 화이트 노이즈가 있어야 될 자리에 차분한 대화가 자리 잡는다. 평소 얼마나 다양한 문명의 도구에 시간을 바쳐 왔던가. 이른 새벽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지저귀는 새소리는 건조한 소리에 익숙한 청각에 단비를 뿌려준다. 동 틀 무렵 밤새 지치지 않고 흐르는 여울로 나가 지저귀는 새소리를 곁들인다. 잠에 취한 눈에 비해 머릿속은 놀랍도록 맑아진다. 산골에 맺힌 빗방울은 도시와 달리 더 영롱하고 쨍하다. 아주 미묘하게 약초향이 가미된 영락없는 미나리와 같은 녀석은 산미나리란다. 이미 꽃이 만발하여 먹기..

일상_20200512

눈 덮인 양 이팝나무가 뽀얗게 물들고, 넘실대는 바람결에 향긋한 아카시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봄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야생마 같지만 그 계절의 옷깃에 내비치는 풍경은 향기로 가득하다. 살랑이는 아카시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소담한 길을 따라 피어나는 신록을 만나러 가는 길은 흥겨운 놀이를 쫓는 아이 같다. 산책의 행복을 저미던 시간, 손끝에서 조차 잠자고 있던 유희의 감각이 긴 잠을 깨치고 일어나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도 피부를 간지럽힌다. 노작마을 초입에서 반겨주는 이팝나무의 화사한 인사. 마치 뽀얀 눈이 덮여 눈꽃 만발한 나무 같다. 여기를 지나 곧장 노인공원을 거쳐 냥마을로 향했다. 뽀샤시한 외모와 순둥순둥 성격, 하지만 길냥이 특유의 경계심으로 가..

나무와 동물숲을 떠나며_20200507

가뜩이나 더위가 성급한 대구에서 하루 차이로 서울과 완연히 다른 계절의 파고를 실감한다. 숲 속에 은둔한 숙소를 이용한 덕에 생각지도 못한 애증의 생명들을 만나던 날, 가련함이 교차하여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거리를 활보하는 공작이 이색적이긴 하다. 오전 느지막이 봇짐을 챙겨 떠나는 길에 숙소에서 마련한 차량을 거절하고,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애니멀밸리를 관통하게 되는데, 고도가 가장 높은 숙소에서 차량이 있는 입구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반대로 지속된 내리막이라 이른 더위에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넉넉한 시간을 핑계 삼아 꼼꼼히 둘러보기로 한다. 프레리독. 사진도 충분히 귀엽지만 실제 녀석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더 귀엽다. 카피바라? 한길을 중심으로 꼬불꼬불 엮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익살맞은 귀염둥..

숲 속 호텔의 이색적인 경험_20200505

신천지 코로나 사건으로 홍역을 앓은 대구에 무수히도 많은 시민들이 속절없이 피해를 보고 어느 정도 상처가 치유될 무렵 회사 복지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궁금증을 불러내던 리조트로 여행을 떠난 건 학창 시절 스승을 직접 뵙기 위함이었다. 전날 저녁에 도착하여 리조트 입구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자 이쁜 경차가 내려와 가족을 싣고 미리 예약된 숙소로 이동하는데 산중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겉과 완연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캐리어에 갇혀 있는 보따리를 풀고 홀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 차로 이동할 때와 또 다른 조경과 불빛이 어우러져 산길을 산책함에도 지치기는커녕 쾌속으로 지나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 숙소는 산속의 고급스런 통나무집처럼 나무향이 그윽하고, 한옥 쪽문을 연상시키는 후문이 있어 가족은 마..

일상_20200504

마치 녀석은 처음부터 가족 같다. 붙임성과 넋살에 있어 냥이와의 간극은 기우였을 뿐,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무척이나 적응을 잘하고 애교도 끊임없다. 올리브영에서 구입한 딸랑이 두 개 중 하나는 거의 외면당하고, 나머지 하나는 잘 가지고 논다. 아주 미세하게 방울 소리만 나도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사냥놀이에 바로 빠져든다. 이런 녀석과 한참을 즐긴 후 창 너머 청명한 대기를 쫓아 냥이 마을로 출발한다. 어린이날 전날이라 그런지 야외공연장 잔디광장엔 아이들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냥이 마을로 바로 직진하지 않고, 반석산 둘레길로 우회하여 냥이 마을로 들어서기로 하자. 특히나 노란 꽃들이 눈에 띄어 쉰들러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데 노란색 인식이 완벽하지 않지만 이쁘게 잘 표현되었다. 하..

일상_20200502

봄은 봄이다. 아직도 꽃을 틔우지 않은 꽃은 많지만 시기의 차이일 뿐, 자연의 약속은 그릇됨이 없다. 하루 종일 따스한 봄볕이 가장 좋은 양분이었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그 빛깔은 더욱 곱기만 하다. 이미 한 달 전에 꽃잎을 열고 함박웃음을 짓는 두 녀석들은 언제 봐도 화사한 미소로 삭막하던 베란다에 화색을 돌게 한다. 냥이가 뜯어 먹었던 이파리는 원래대로 자라 점점 단풍의 위엄(?)을 갖기 시작한다. 이제 온전히 제 의사가 되어 버린 탁자 의자에서 나른한 하루를 보내는 녀석은 어딜 가나 따라다닌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가족이 걸리면 발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앉아 있기 전까지는. 택배 박스는 녀석이 필히 검수하는 항목이자 전유물이다. 그렇다고 오래 있는 건 아닌데 어떻게든 한 번은 이렇게 들어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