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

밤에 휴게소에서 만난 고양이_20220314

주유할 겸 잠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얼핏 본 냥이가 재활용 분리수거통 부근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 처음엔 인형인 줄 알고 긴가민가 싶어 다가가자 몇 발 도망간다. 때마침 비가 내린 뒤라 여기 있나 보다 싶어 "밥 하나 줄 테니 여기 있어" 돌아와도 그 자리에 가만있었다. 햇반 그릇이 석판 바닥에서 잘 미끄러져 멀찍이 습식 파우치를 줬음에도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녀석이었다. 울 냥이는 습식 하나로 3~5끼를 먹는데 녀석은 앉은자리에서 해치운 걸 보면 배가 고프긴 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멀어지는 사이 녀석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래서 한 편으론 다행이다 싶었고, 한 편으론 마음 짠했다. 습식 하나 풀어주자 금새 다가와 먹는 걸 보면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녀석은 식사..

맥미니와의 작별_20220312

반년 조금 넘게 연을 맺은 맥미니를 떠나보낸 날. 집에서, 스터디카페에서 태블릿에 물려 불편한 생활을 청산하는 신호탄이다. 그래도 이 가격에 이 정도의 성능이라니, 외계인이 만든 물건인 게 틀림없다. 처음 올 때의 모습으로 다시 변신. 단촐한 구성에 깔맞춤한 박스와 외관. 찍힌 흔적은 뭐지? 티비와 연결해서 셋톱박스 겸 간단한 컴 용무로 사용할 때. 허나 요즘 웬만한 티비는 넷플이나 디플, 티빙 어플이 포함되어 나오기 때문에 셋톱박스 용도는 현저히 줄었다. 티비 자체로 지원되면서 직관적이고 간편하게 기능 전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어디를 두더라도 꽤 잘 어울린다. 내 기준에 전체적 평을 하자면 작년 여름부터 태블릿 조합으로 노트북의 빈자리를 꿋꿋이 대체했었는데 아무렴 외부에서는 불편한 부분이 한두..

냥이_20220306

어찌 이리 사람한테 붙으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냥이 껍질을 입은 사람인가? 태블릿에 찍힌 범인의 행적. 방바닥에 방치한 태블릿을 밟아 카메라 모드 전환되고, 한술 더 떠 셔터까지 젤리로 마구 눌렀다. 어떻게 보면 너구리 같고, 어떻게 보면 산모기 같은 넌 누규? 100장 정도 찍힌 걸 보면 셔터에 젤리를 걸쳐 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스스로 추억의 징표를 찍는 녀석이라니... 이래서 웃는다.

메마른 길 지나 흐르는 낙동강_20220126

이리로 흘러 저리로 간다. 말 없는 강은 미처 소리 낼 틈 없이 바다를 오로지하며 이내 깊은 푸르름에 잠기고, 말 잃은 산은 지나는 강을 시샘할 틈 없이 하늘을 오로지 하며 이내 깊은 푸르름에 잠긴다. 하늘에서 달려온 강이 다시 하늘로 사라질 무렵 각처를 방황하던 강에게 한자리 내어준다. 강을 건너 너른 공원을 지나 홀로 걷는다. 산의 간극이 좁아질 무렵 여러 갈래 나누어 흐르던 길은 하나의 길로 고갯길로 향하고, 이미 말라 버린 인적 물결은 극도의 갈증을 느낄 겨를 없다. 멀리서 달려온 강은 이 자리를 묵묵히 지난다. 그러곤 더 먼 곳을 향해 쉴 틈 없이 느린 걸음을 옮긴다. 짧은 시간만큼 찰나의 머무름. 인적은 증발해 버렸지만 강물은 변함없다.

자연과 문명의 접점에서, 용담호 자연생태습지공원_20210514

꽃동산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긴 하나 묘하게 시간이 맞지 않아 발걸음을 돌리고 위안 삼아 찾아간 습지공원은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규모가 제법 큰 만큼 많은 손길을 거쳤음에도 그 지독한 고독을 벗기 위한 집착인지 꼭꼭 숨겨둔 빛결을 꺼내 만개한 공작의 날개처럼 공원의 봄빛은 사방으로 활짝 폈다. 진안읍에서 가까운 꽃동산은 코로나19로 출입이 안되어 하는 수 없이 방향을 틀어 용담호 생태 습지 공원으로 향했다. 너른 주차장은 차량이 두 대, 하나 나머지 한 대는 공원 작업 차량이었다. 용담호 자연생태습지공원은 2009년 완공된 공원으로 인공습지와 자연습지를 비롯하여 관찰데크, 탐방로, 출렁다리, 18홀의 파크골프장이 조성되어 있고 진안읍과 자전거 도로가 연결된 대규모 습지 공원이었다. 원래는 언건마을..

고원에 부는 세상 향기, 황매산_20210513

인간이 품어온 동경이 쉬어가는 곳, 철쭉이 질 무렵 뒤따라온 신록의 물결이 바람결에 출렁이며 자욱한 봄내음이 가슴까지 술렁인다. 봄이면 철쭉이, 가을이면 억새가 터줏대감이 되어 무던히도 여행자들을 설렌 이끌림에 마주치는 고원은 그 일몰 또한 아름답다. 갈망하던 은하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실망의 매듭이 풀릴세라 가슴을 현혹시켜 돌아갈 의지를 잊게 된다. 언덕으로 봉긋 솟아올라 다시 그 위에 닭벼슬처럼 첨예하게 자리 잡은 황매산 능선은 공존하는 두 세상이 다른 책임을 부여받은 마냥 시선으로 판별되는 질감이 대조적이다. 철쭉과 억새 군락지가 너른 고원에 사지를 펼쳐 드러누워 있다면 한 줄기 산자락은 그와 다른 생명들이 울타리를 치고 그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지내는 형상으로 철쭉만 만났던 지금까지와 달리 ..

합천호반 녹색 터널_20210513

황매산으로 향하는 합천호반은 이런 한적한 길이 지치지 않고 스쳐갔다. 남도 지방의 봄은 확연히 포근해 햇살은 일찌감치 더위의 기운이 강했고, 따라서 짙어가는 신록의 그늘은 심미적인 부분을 넘어 청량감을 가져다줬다. 열어젖힌 차창 넘어 불어오는 봄바람의 계절 향기에 차를 멈추고 호수변에 서서 잔잔한 호수의 표면에 시선으로 물을 퉁기자 은은한 계절의 쨍한 색채가 여과 없이 밀려왔다. 가야할 길, 황매산마루에 남은 봄의 기대를 증폭시켜 다시 가던 길 재촉했다.

한적한 길과 옥계서원_20210513

한적한 정취에 더 나아가 연이은 봄빛 그득한 나무터널을 맞이하며 이다지도 걷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기란 쉽지 않다. 막연히 마주치는 나무의 이야기들, 길 위에 시간을 들으며 터널 속으로 걷다 보면 계절의 향취가 더해진 발걸음은 어느새 사뿐히 리듬을 타며 걷게 된다. 지난 만추에 지나던 구례 섬진강변길처럼 마냥 차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불과 보름 전 쯤 황매산의 분홍 나래를 보고 무슨 미련에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었을까? 여전히 마주치는 차량과 인가가 거의 없는 길 따라 엑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을 빼서 물 흐르듯 천천히 달린다. 불과 보름 전 사진을 찍었던 곳은 예상대로 신록은 짙어지고 터널은 더욱 견고해졌다. 시간이 뒤섞여 있지만 나름 공통분모를 찾으라면 봄의 화두가 일치한다. 싱그러운 초..

봄과 무봉산 아래 만의사_20210511

봄비치곤 꽤 많은 비가 내리는데 이렇게 오래, 많이 내릴 줄 몰랐지만 하여튼 며칠 일찍 사찰에 들르길 잘했다. 사찰은 봄이 되면 무척 화려해져 마치 석가탄신일을 맞아 지상에서 마련할 수 있는 온갖 색채를 정성껏 구비하여 이쁘게 단장한 채 기념일을 치르기 위함 같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화려한 불빛에 도배된 교회의 모습과 분명 차별점은 있지만 눈이 즐거운 건 매한가지다. 매해 지날수록 뭔가 바뀌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사찰에 목탁 소리와 함께 굴착기 소리는 언제나 끊이질 않는다. 오색연등에서 이제는 무늬만큼 가짓수가 늘어났다. 소위 돈바람이 분다. 옛날 옛적에 선남선녀들이 기나긴 머리를 빨았을 때 개기름 흐르는 효과를 위해 사용한 창포~

황매산의 분홍 나래_20210428

하루 주어진 시간이 졸음에 힘겨워할 무렵 한참을 달려 황매산에 도착했다. 이미 차량 행렬은 수문을 빠져나가는 물길처럼 줄지어 하산하는 길이지만 다행히 낮은 머물러 떠날 채비는 늑장이었다. 가는 길에 특히나 시간이 걸렸던 건 헤아릴 수 없는 곡선의 휘어진 도로와 그 도로 양편 가로수 터널의 멋진 자태 덕분에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었던 데다 가는 중간중간 차를 세워 굳이 하차 하지 않더라도 나무터널을 사진과 가슴에 담고 싶었던 욕심이 과했기 때문이다. 이제 갓 피어난 신록으로 이런 무성한 점을 찍어 터널을 만들 정도면 녹음이 우거졌을 때는 어떻게 멋짐을 감당할까? 해는 이미 서산마루를 넘어 집으로 돌아가며 땅거미만 희뿌옇게 남겨 두고, 볼그레 얼굴 붉힌 무리들은 사라진 햇살이 그리워 지나는 바람의 옷깃을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