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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적 소리도 떠나버린 간이역, 선평역_20220316

느림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곳이 간이역이다. 곡선과 느린 열차, 공허함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꽃다발이 되고, 강렬한 향수가 된다. 과거엔 설렘을 약속했지만 이제는 잊혀짐을 약속하는 곳, 정선으로 가는 길에 졸고 있는 간이역을 찾아 잠시 그 향취에 시간을 표류했다. 더불어 이름까지 아름다운 간이역을 되뇌어 여정에 뿌려진 향취를 선물 받았다. 별어곡-선평-정선-아우라지-나전-구절... 울진에서 정선으로 넘어가는 길에 들른 태백은 내 여정에 있어 길목과 같은 곳이었다. 커피 한 잔, 올리브영에 들러 스킨 하나를 하고, 저녁 식사와 쉼표를 제공해 준 곳으로 차를 세워둔 곳에 황지연못에서 흐르는 작은 도심 하천을 감상한 뒤 조바심을 버리고 정선으로 출발했다. 태백에서의 둘째 날, 정선아리랑과 바람의 나라_201..

동해바다에 대한 거대한 포부, 망양정_20220316

수평선 너머 또 다른 수평선에 대한 이상과 너른 바다를 품은 더 너른 바다에 대한 호기심은 지극한 욕구이자 궁극의 본능이다. 무릇 풍류를 아는 사람이 즐길 줄 알고, 풍류가 머무는 곳에서 가락은 흥이 된다. 망양정에서 읽노라면 표독한 파도는 바람의 흥에 맞춰 한사코 뒤를 따르는 바다의 어깨춤이 되며, 그토록 뒤섞이면서도 밀어내고 떨치려 하는 문명도 평온의 자장가에 나른한 단잠이 된다. 그 장단에 신이 난 봄볕은 향긋한 미소의 깃털을 띄워 뺨 위에 길 잃은 콧노래로 합주한다. 망양정(望洋亭)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해안가에 있는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이다. 고려시대에 처음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군수 채..

봄바다의 나지막한 찰랑임, 망양정 해수욕장_20220316

망양휴게소에서 한숨 고른 뒤 도착한 망양정 해변은 한가로이 쉬고 있는 갈매기 소리와 망망대해 동해 파도 소리만 가득한 그야말로 한적한 세상이었다. 망양정에 도착하여 너른 공터 같은 주차장에 차를 두고 망양정으로 오르기 전에 잠시 해변을 걷는데 생각보다 꽤 너른 해변의 규모에 비해 찾은 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시간의 구속 없이 천천히 걷는 순간순간 해변의 모래처럼 무수한 여유가 차고 넘쳤다. 망양정 해수욕장은 망망대해 동해와 인접한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 언덕과 왕피천 하구가 만나는 거대 모래톱으로 인근 엑스포공원, 성류굴과 왕피천을 넘나드는 케이블카가 있다. 200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전국해양스포츠제전의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개최되었으며, 2007년 7월에는 해양수산부 주관 아름다운 어촌마..

바다를 향한 고전적 갈망, 울진 망양휴게소_20220316

7번 국도를 지나면 의례적으로 들러 바다를 정독하게 되는 망양 휴게소는 처음에 망양인지 망향인지 대충 불러도 그 느낌은 허투루 하게 기억되지 않는 정취가 있다. 바다의 파도보다 더 강렬하고, 더 거센 세월의 파도에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처럼 연약하고 가냘픈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이제는 제법 바다와 어울리는 동태적인 변화가 깃들었다. 망양휴게소 www.mangyang.co.kr 휴게소 내 스카이워크와 비슷한 구조물에 오르면 바다 정취는 급격히 증폭되어 가슴으로 파고든다. 또렷한 기억 중 하나가 암초 무리들 위의 강태공들인데 이제는 텅 빈 채 파도만 암초를 누빈다.

짙푸른 수평선을 걷다, 삼사해상산책로_20220316

기억은 망각과 추억의 기로에서 시간의 조언에 따라 그 갈림길을 선택한다. 추억의 길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특정 기억의 형상화를 통해 채도를 올리게 되는데 바다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 형체가 없는 바다는 전체를 아울러 그 자리에 섰을 때 감회가 입혀지고 각색과 착색의 담금질과정을 거쳐 온전히 인생의 퇴적물이 된다. 이튿날 7번 국도를 질주하기 시작할 무렵 이정표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길에 이끌려 바다의 작은 음악회를 감상한다. 별 기대 없이 들렀다 심플한 내부와 바다를 향한 통유리창에 꽤 만족했던 콘도미니엄. 떠나는 길에 뒤돌아 만족을 표했다. 영화 '가을로'에 노출된 곳이기도 했다. 요즘 하나둘 생기는 바다 산책로가 여긴 진작에 들어섰는지 최근 작품은 아닌 것 같았다. 지나는 길에 들렀는데 이 바닷길을..

날 것 그대로의 해변을 따라, 축산 해파랑길_20220315

앞서 해파랑길 20코스를 여행했다면 축산에서 해맞이공원까지는 21코스란다. 군사 목적의 잔해가 꽤 많이 보이지만 이제는 철거되어 이내 잊혀지고, 그 철조망에 고립되었던 원시의 해안이 기지개를 켜며 도리어 문명의 피로감을 바다로 날려줬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봄햇살 아래 세상이 잊고 지내던 작은 마을은 부러움조차 잊었는지 무심한 자연의 날갯짓으로 쉴 새 없이 해풍 위 중력의 끈을 엮어나갔다. 작은 음악 소리를 벗 삼아 시작된 막역한 걸음은 해 질 무렵 아름다운 광시곡이 가르쳐준 길 위의 산책이 되어 파도 소리에 맞춰 사뿐한 춤사위가 되었다. 해안을 따라 굴곡진 길과 달리 언덕 언저리에 붙은 길은 함께 평행을 그릴지언정 그 모습과 느낌은 사뭇 달랐다. 이왕 동해 바다를 만날 거라면, 또한 지나치게 가공된 길..

진화하는 섬과 손 내민 육지의 접점에서, 축산 죽도산_20220315

해안 따라 오뚝 솟은 산은 원래 섬이었으나 뭍에 대한 억겁의 갈망을 바다가 성취시켜 줬다. 강강술래 대나무끼리 서로 손을 잡아 작은 언덕을 강인한 해풍으로 부터 지키고, 언덕은 한 뼘 몸을 내어 대나무를 껴안아 고립된 세상으로부터 함께 의지하며 영속의 포부를 공유하는 죽도산은 어느새 속성이 전혀 다른 육지와 바다의 오작교가 되었다. 죽도산 죽도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육지와 동떨어져 있는 섬이었습니다. 죽도산 인근에는 축산층이 흐르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산천을 따라 함께 흘러오던 모래가 만든 모래둔덕이 점점 커지면서 원래 섬이었던 죽도산이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원래 섬이었다가 육지가 된 섬은 ‘육계도’라 불립니다. 강 하구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육계사주는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지형으로..

길과 바다의 멋에 빠지다, 영덕 해파랑길_20220315

예전 기억을 표류하다 보면 동해 바다와 뭍 사이 견고한 철조망이 꽤나 동경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현실이 극복할 수 없는 철옹성 같았건만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군사 시설이 철거되면서 웅크려 머나먼 미래를 꿈꾸던 해안 쪽길은 뒤늦게 세상과 조우하며 품 안에 간직했던 슬픈 사연과 태초의 자연을 거대한 선물 보따리 마냥 풀어놓았다. 사실 ‘영덕’하면 생각나는 건 십중팔구 ‘대게’ 외에 딱히 각인될 만한 명소는 기억에 없었고, 그로 인해 여정에서 영덕은 지나는 길목의 한적한 어촌마을로만 여겨졌다. 2019년 봄 여정에서도 영덕은 한치 주저 없이 다른 동해 바다를 이어주는 마을 외에 고민도 하지 않았었는데 해파랑길 소식을 듣고 먼 길 달려 첫걸음 내디딘 결과, 이제라도 알게 된 걸 다행이라 여겼다. 바다와 가파른 뭍..

시간이 졸고 있는 영덕 해안마을_20220315

동해 해안도로 따라 여정길에 만난 한적한 어촌마을이 한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쬐며 갈매기와 함께 했다. 겨울이 떠나고 봄을 맞아 한창 분주한 시간 조각을 끼워 맞추는지 인적의 흔적은 없고, 그 공백을 빼곡히 채운 나른한 아침의 바닷바람만 졸고 있는 고요한 마을을 깨울새라 소리 없이 휘날렸다. 이튿날 나른한 봄빛이 수평선까지 닿고, 그 볕은 꿈틀거리며 바다로 열어젖힌 창을 넘어 개운하게 인사를 건넸다. 숙소와 바다 사이 작은 공간에 소소한 밭을 일구는 손길에서 갤러리에 들러 한 폭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느지막이 숙소를 출발하여 영덕 강구를 기점으로 매끈한 7번 국도를 버리고 구불한 해안도로로 핸들을 돌려 다시 도로 따라 천천히 진행하던 중 강태공들이 분주한 작은 어촌마을 방파제로 걸었다...

첫 영덕 여정에 만난 청량한 밤바다_20220314

망망대해 포부를 품은 시야는 거침없었다. 나른한 봄이 무색하게 싸늘한 꽃샘추위 일갈은 꽤나 섬뜩한 칼날을 휘두르지만 이미 여유 넘친 봄기운을 이길 수 없고, 허공을 낙서로 일갈한 미세 먼지도 봄소식 쫓은 단비에 주눅 들었다. 정갈한 수평선을 따라 수놓은 일상의 물감은 이렇게 저물고, 저렇게 피어났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한쪽이 완전 바다로 트인 창을 열고 바람에 실린 바다 내음의 청량감에 도치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청명한 밤하늘과 수평선이 미려한 빛을 피웠다. 비교적 오래된 건물과 달리 깔끔한 내부는 바다 조망 뷰를 살리기 위해 온전한 유리로 틔워놓았다. 영덕의 첫 여정에서 첫인상은 꽤 흡족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