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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_20240318

때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녀석의 모습에서 평소 잊을 뻔한 정겨움을 찾을 때가 있다.우린 어른이 되면서 밖에선 가면을 쓰고, 안에선 다정함을 잊다 점점 건조해져 간다.그래서 한사코 집사들을 뒤쫓으며 장난 걸고, 칭얼대고, 몸을 부비는 녀석으로 말미암아 건조한 일상에 윤기가 흐르고, 관계를 재정립시킬 때가 많다.생명을 통해 나를 부각시키고,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서로 위로하며 아낄 때 비로소 일상이 훈훈하고 향그롭다.온종일 냥냥거리며 뒤쫓던 녀석이 택배 박스를 만나 의외로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저 진지한 눈빛이라니.냉큼 자리를 잡고 편안한 뒤통수를 보이는데 집사는 갑자기 장난이 발동하여 박스에 각종 쓰레기를 투척했고, 그러면 녀석은 "냥!" 거리며 박스에서 뛰쳐나왔다.

일상_20240317

봄소식하면 머니머니해도 봄의 전령사들인 꽃 아니겠나.그 봄소식을 주워 담으러 동네 산책을 나섰다.어느새 산수유도 서둘러 봄소식을 알렸다.반석산에 흐드러지게 핀 생강나무꽃은 사실 다른 전령사들에 비해 부지런하고 지구력이 좋다.반석산 낙엽무늬 전망데크에 도착.대기가 비교적 깨끗한 날이라 성석산과 부아산이 조망되었다.조만간 이 황량한 들판이 봄에 물들겠지?겨우살이는 부쩍 자랐다.도심에 겨울살이가 있으리라 생각 못했지만 몇 년 전 가족들과 산책하며 알려줘서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째려봤다.또 다른 봄의 전령사, 매화도 이제 막 개화 중이었다.복합문화센터 뒷뜰에 매화와 산수유가 모여 봄잔치를 준비 중이었다.

냥이_20240316

결국 이번에 업어온 집도 쿠션만 사용하게 된다.걍 비싼 쿠션 하나 산 셈인데 다행이라면 쿠션 만족도는 높은지 낮잠으로 금세 적응했다.집사의 소심한 복수, 녀석의 망가지는 표정만 담아서 걍 유포해 버린다. 일광이 좋은 자리에 낮잠용 쿠션을 두는데 내부 리뉴얼로 가구나 오디오를 재배치하며 봄기분도 내고, 동시에 녀석의 쿠션도 교체했다.족발을 맛보는 중.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집사한테 돌아갈 분량이 없다옹'녀석과 한참을 대치했다.그러곤 한참을 그루밍하는 녀석을 찍었는데 혓바닥을 내밀고 천연덕스럽게 '메롱'하는 사진만 모아봤다.그러다 갑자기 늘어지게 하품하는 녀석.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의례히 하는 그루밍이었다.쇼파로 옮겨와 활동을 시작했다.활동?그러면 놀아줘야 되는데!체력이 좋은 녀석이라 한참을 격하게..

냥이_20240315

녀석의 붙임성은 초강력 울트라 네오디뮴 자석에 버금간다.자다가 일어나 뜬금포로 발등에 철퍼덕하면 걸을 수 없어 말을 붙이며 스담하게 되고, 스담하다 보면 집사의 자세는 녀석과 비슷한 높이로 쭈그러든다.내 성장판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집에만 오면 내 시선은 점점 낮아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새벽에 거실에서 두 왠수가 만나 이렇게 매듭이 꼬였다.

일상_20240310

안팎으로 핀 봄소식에 사념의 빙하도 스르륵 녹았다.늘 그렇듯 그립던 계절이 지나고, 다음 계절이 오면 금세 잊어버리다 그 계절이 지날 무렵 또다시 그리움을 반복하겠지?황량하던 세상에 자연은 겨우내 아껴두었던 고운 빛결을 뽐내며 바야흐로 오감이 향기에 도치될 때였다. 베란다에 핀 봄.가장 먼저 소식을 들려준 반가운 녀석들이었다.베란다까지 봄구경 나온 길동무.난에 꽃이 피고, 캣그라스로 뿌려놓은 보리도 풍성하게 싹을 틔웠다.더불어 녀석도 베란다에 나와 하루 일광을 즐기는 시간이 늘었다.

오지 협곡에 흐르는 풍류, 낙동강 세평하늘길 1구간_20240309

협곡에 살짝 걸쳐진 길을 걷다 앉으면 길가 벤치가 되고,조밀한 나무 어깨를 지나면 터널이 되고,깊이 들숨을 마시면 향기가 되는 곳.낙동강이 허락해 준 낙동강 세평하늘길(이하 '세평하늘길')은 극도로 한갓진 두려움도, 깊디깊은 적막의 어둠도 없었다.그럼에도 자연의 숨결이 명징하게 피부를 스치며, 새의 지저귀는 노래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구르는 물의 소리가 이토록 흥겨운지, 또한 바람 소리에서 이토록 향그로운 향이 나는지, 문명이 차단된 계곡이 투영한 햇살이 콧잔등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교감했다.길은 강변 수풀을 헤치고, 모래자갈밭을 지나며,바위를 밟고, 철길과 나란히 걷거나 아래를 지나며,데크길로 가파른 비탈길을 날고, 절벽을 스친다.그래서 길은 삶이 지나는 혈관이며, 이야기가 오고 가는 전신주였다.겨..

세 평 협곡 간이역, 봉화 승부역_20240309

문명은 시간도 거칠고 세차게 현혹시켰다.하루가 다르게 변화에 길들여진 세상과 달리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찾은 승부역은 시간도 더디게 흘렀는지 고순도의 옛 모습을 유지했다.하늘 아래 세 평 간이역, 승부역에서 요동쳐 철길 따라 소소히 구전되다 길의 유래가 되어 버린 협곡 품 아래 작은 간이역에서 작은 도전과 소박한 출발을 고했다.더불어 변하지 않아 반가운 것들, 붉은 벽돌 역사와 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서있는 플랫폼, 그리고 산중 에이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대기실을 정독했다.승부역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이다.역 인근에 작은 마을이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역 이용객은 사실상 전무했으나, 1999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

흐르는 강물처럼, 낙동강 세평하늘길 3구간_20240309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유일무이한 길이자 강변과 함께 나란히 늘어선 세평하늘길을 걸으며 그 길이 안내하는 대로 쉼 없이 걸었다.가끔 마주치는 인가와 어쩌다 지나는 차량의 엔진소리가 반가울 만큼 문명의 밀도가 낮은 공간을 파고들어 언제부턴가 소음에 길들여진 어색함을 털기 위해 나지막이 음악을 곁들였다.세평하늘길은 총 3 구간으로 1구간은 승부역~양원역, 2구간은 양원역~비동 임시승강장, 3구간은 나머지 비동~분천역까지로 나뉘는데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걷는 구간은 3구간으로 낙동강이 첩첩산중을 비집고 들어가 억겁 동안 트여놓았고, 인간은 거기에 좁은 도로와 철길을 얹어 놓았다.그래서 강에 자생하는 생명들과 자연들이 서로 교합하여 만들어낸 소리가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풀어놓은 실처럼 이정표가 되어준 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