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103

합천호에 떠다니는 나무_20191127

오도산 휴양림과 작별을 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합천을 떠나 거창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호수 위를 떠다니는 나무에 반하던 순간이었다.사막 마냥 황량한 거대 호수에 오아시스처럼 작은 재미를 주는 나무는 사실 떠다니는 게 아니라 작은 섬에 의지해 수면 위로 불쑥 솟아 가만히 서 있고 호수를 스치는 바람에 이끌려 호수의 작은 물결이 흐르자 마치 나무가 호수를 표류하는 것만 같은 착시 효과 였다. 다음 여정의 목적지인 남원으로 출발하여 거창 대야를 지나던 중 호수 위로 솟은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편평한 수면 위에 가을 옷을 껴입은 나무라 그 모습이 도드라졌기 때문인데 적당히 차를 세워 그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길가에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서행 하며 가던 중 깔끔하게 정돈된 대야 마을에 닿자 너른 갓길이 ..

오도산 휴양림에서 마지막 시간_20191126

전 날 비슷한 시각에 오도산 휴양림으로 첫 발을 디딘게 아쉬울 만큼 하루 시간은 금새 지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첫날은 휴양림을 통틀어 우리 뿐이었고, 이틀째 접어든 날은 비록 집 한 채 불이 켜져 있었지만 조금 떨어진 곳이라 첫째 날과 진배 없었다.산에서 맞이하는 초겨울 추위라 기온도, 분위기도 싸늘 했는데 그나마 마당 한 가운데 덩그러니 불빛을 밝히던 녀석이 유일한 세상의 빛과 같았다.늘 그렇듯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다 밤하늘 총총한 별을 카메라로 담았지만 기대했던 은하수는 보이질 않고, 시간이 지날 수록 구름이 삽시간에 몰려와 하늘을 덮어 버렸다. 별은 밝지만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별이 빼곡 하게 박혀 있지 않았고, 점차 구름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물론 도시나 수도권 어디..

오도산 정상에서 천리안의 시선으로_20191126

독수리의 천리안이 되어 넓은 세상을 한아름 품어 시선의 경계점에 대한 동경의 나래를 펼친 날이다.시선이 닿는 곳은 금수강산이 새겨 놓은 장관이, 햇살이 닿는 곳은 구름이 새겨 놓은 뜻깊은 상형 문자의 아름다운 싯구가 넘치는 세상이었다.계절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충실하고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간과하지 않게 훈계해 주는 자연의 가르침을 이고지며 하늘과 가까운 꼭지점에 서서 아무런 말 없이 겸허해 졌다. 평소 기나긴 동선을 따른 것과 달리 이번 여정은 잦은 이동을 배제한 만큼 합천에 있는 동안 오도산 정상만 목적지로 삼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오르막을 따라 결국 산봉우리에 다다랐다.도착과 동시에 뒤따른 오토바이 한 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평일의 한적함을 그대로 즐길 수 있었는데 산 정상엔..

적막한 오도산자락_20191125

초저녁 무렵 거창에 도착하여 푸짐한 저녁 끼니를 해결하고 거창 읍내를 둘러 보다 마땅한 눈요기 거리가 없어 최종 목적지인 오도산 휴양림에 도착했다.처음 체크인을 하러 관리실에 도착하자 방이 하나만 예약이 되어 있어 우리가 아닌 줄 알았단다. 미리 예약한 숙소는 관리실과 가까우면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너른 공터를 중심으로 다섯 세대가 동그랗게 모여 있고, 그 중심엔 나무 한 그루, 가로등 하나 덩그러니 놓여 스산한 겨울 길목에서 그나마 조금은 작은 불씨처럼 따스한 분위기를 발산했다.날카로운 초겨울 칼바람 속에 텅빈 공간을 홀로 유유자적하고 있는 사이 굶주린 어린 길냥이 한 마리가 야생의 경계심을 놓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곤 가만히 앉아 있어 때마침 가방에 챙긴 츄르 3개를 끄집어 내어 하나를 주자 신중..

순천 다녀 오는 길_20191108

작년 함께 캠퍼스를 밟았던 학우들 만나러 순천을 갔다 걸판지게 마시고 완전히 새 됐다.워낙 뚝배기 같은 학우가 순천과 곡성-이 형은 10월에 전주에서 만났지만-에 살아 한 달 전부터 약속을 잡았는데 창원에 사는 학우도 꼭 참석하겠다고 해서 서울, 곡성, 순천, 창원에서 가장 모이기 쉬운 장소를 순천으로 결정 했고, 주말에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저녁에 도착하자 마자 들이 마셨다.순천, 창원 학우는 꾸준하게 연락하며 지냈지만 1년 만에 처음 본 거나 마찬가지.일 요일에 순천을 좀 돌아다니며 사진은 전혀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텅빈 순천역 광장에 서서 빠듯하지만 남는 미련을 삭히지 못하고 뒤돌아서 둘러 봤다.얕은 비를 뿌린 전날의 여운이 남아 세찬 바람과 함께 잔뜩 흐리다. 덜컹이..

일상_20191115

이른 귀가에 맞춰 아마도 이번 가을의 마지막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은 이 구도에 서서 우산을 쓴 채 한 참을 서 있었다.어느새 사라진 멋진 컷의 아쉬움과 함께 시간이 훌쩍 지나 벌써 올해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허전함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절정의 가을과 달리 이미 낙엽이 되어 앙상한 가지만 남아 구슬픈 빗줄기가 달래 준다. 가을을 향기롭게 만들던 단풍도 이제 이 비가 그치고 찬바람이 불면 낙엽이 될 운명이다.꽃은 후각이 향그롭지만 단풍이 시각이 향그롭고, 그에 더해 기억 속에 추억을 향그롭게 만든다.그래서 가을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