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오도산 정상에서 천리안의 시선으로_20191126

사려울 2019. 12. 18. 04:04

독수리의 천리안이 되어 넓은 세상을 한아름 품어 시선의 경계점에 대한 동경의 나래를 펼친 날이다.

시선이 닿는 곳은 금수강산이 새겨 놓은 장관이, 햇살이 닿는 곳은 구름이 새겨 놓은 뜻깊은 상형 문자의 아름다운 싯구가 넘치는 세상이었다.

계절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충실하고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간과하지 않게 훈계해 주는 자연의 가르침을 이고지며 하늘과 가까운 꼭지점에 서서 아무런 말 없이 겸허해 졌다.


평소 기나긴 동선을 따른 것과 달리 이번 여정은 잦은 이동을 배제한 만큼 합천에 있는 동안 오도산 정상만 목적지로 삼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오르막을 따라 결국 산봉우리에 다다랐다.

도착과 동시에 뒤따른 오토바이 한 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평일의 한적함을 그대로 즐길 수 있었는데 산 정상엔 사방을 둘러 데크길이 있어 단순히 눈으로 한 번 둘러보고 넘기기 아까울 만큼 평소에 보기 힘든 광활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대기에 미세한 연무가 있긴 하지만 대도시가 구현하기 힘든 맑은 대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라 그와 더불어 발치에 펼쳐진 세상은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도 선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고, 비록 그림자에 숨어 있다고 할지라도 세세한 모습과 색감을 구분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오도산 정상에 오르면 전망대와 같은 데크가 있어 그 자리를 밟는 순간 서편에서 부터 북동쪽 방면으로 여과 없이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거창의 가조가 있는 너른 분지와 그 분지를 관통하는 광주대구 고속도로가 길게 뻗어 있다.

가조에서 부터 시계 방향을 따라 아주 천천히 둘러 보며 사진으로 담아 두자.




시계 방향으로 살짝 틀어서 살펴 보면 오도산과 해발 고도가 흡사한 비계산이 있다.

비계산이 1,131m, 오도산이 1,134m 인걸 보면 거의 차이가 없다는 건데 막상 오도산을 밟고 있는 상태에서 비계산은 마치 오도산은 작은 아우뻘 되는 낮은 산 같다.

허나 비계산 정상은 마치 닭벼슬 마냥 바위가 가지런히 돌출 되어 있어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땅에 웅크리고 있는 닭이 비상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거대한 날개짓을 하는 형상이랄까?





비계산을 벗어나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멀리 구름에 가려진 가야산이 보인다.

그저 눈썹 정도 높이의 착각이 들 정도로 구름은 편평한 고도를 맞춰 일목요연하게 동쪽으로 흘러 가는데 그 물결 같은 흐름이 장관이었지만 아쉽게도 도드라지게 높은 가야산 정상에 걸터 앉는 바람에 그 모습은 볼 수 없었고, 곧 다가올 겨울 북풍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오도산에서 가야산까지 짧은 거리가 아님에도 맑은 대기로 인해 거리감이 희박해 졌고, 더 나아가 손을 한껏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가야산을 지나 시선을 좀 더 틀어 보면 아델스코트CC가 기대어 있는 1,034m 고도의 두무산이 오도산 지척에 자리 잡고 있다.

오도산 주위에 1천m 이상 봉우리가 즐비함에도 그 규모는 실감나지 않았던 걸 보면 대체적으로 지형자체가 높기 때문 인 것 같고, 분지 지형에 넓게 자리를 틀고 있는 가조 또한 300m 전후로 전반적인 고도가 높다는 걸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조와 오도산 사이에 나지막한(?) 봉우리조차 930m의 미녀산으로 합천에 있는 3일 동안 숙소로 선택한 오도산 휴양림의 골짜기가 바로 미녀산과 오도산 사이로 사진 좌측에 휴양림 숙소가 살짝 찍혔다.

물론 당시엔 방향 감각이 없어 디테일한 부분은 간과 했었다.



파노라마 고해상도 사진이 업로딩 되지 않아 꽤 오랜 시간 동안 이걸로 씨름 했는데 결국 포기하고 저해상도 사진을 올릴 수 밖에.

화창한 날씨가 보여준 오도산 일대 전경은 주변 산에 뚜렷한 골 하나하나를 여과 없이 보여 줬고, 어느 산 하나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을 만큼 미려한 선과 색으로 한 데 어우러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 지나는 구름의 발자취 마냥 그림자를 각인 시켰고, 세찬 바람이 구름의 형체와 움직임을 상당히 역동적으로 그려낸 덕분에 선명한 대기와 만나 온 몸에 힘과 온기를 불어 넣어 줬다.



오도산 정상의 전망대로 이어주는 길은 이렇게 수많은 굽이와 되돌아 오는 과정을 반복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그 모습은 힘든 고난 뒤의 보상처럼 또하나의 장관 이었다.

전망대를 벗어나 길을 따라 데크길이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전망대 반대편 남쪽으로 내려오면 오도산으로 이어주는 꼬불꼬불한 길과 함께 빼곡한 산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황강과 거대한 합천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때마침 거대한 구름의 행렬 사이로 언뜻 내비치는 햇살과 함께 거대한 빛내림 장관이 연출 되며 광활한 대기에 빛이 만든 커튼이 들이쳤다.

햇살을 받은 호수는 거울처럼 쨍한 대기의 빛을 반사 했지만 세찬 바람이 호수 표면을 흔들며 일정한 빛이 굴절되어 반짝였다.

합천 호수의 끝자락 너머에 우뚝 솟은 산은 황매산인 듯 한데 대기가 무척이나 맑은 날이면 황매산 너머 지리산까지도 관찰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과 달리 육안은 좀 더 선명하여 실제 강렬하게 퍼붓는 햇살이 구름에 가려지는 동안 거뭇한 지리산자락의 형체를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오도산 정상을 40여 분 정도 배회하며 오도산 일대의 광경을 둘러 본 뒤 오르던 길을 거슬러 천천히 내려갔다.



오르던 길에 지나쳤던 주춤바위 전망대에 들러 바위 절경을 바라 봤지만 주춤바위는 무성한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 않고, 하늘을 찌르는 듯 날카롭게 치솟은 오도산 봉우리만 보였다.



일찌감치 정상에서 내려와 합천에 들러 시간을 보내던 중 서녘으로 해가 질 무렵 선명한 구름의 무리가 인상적이었다.

하루 중 모든 명암이 잘게 부셔진 구름의 행렬에 모두 보이며 바람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이 장면은 굳이 높은 자리에 힘들게 오르지 않아도 시선을 조금 올려 바라본다면 충분히 장관을 볼 수 있다는 암시 같기도 했다.

늘 빼곡한 여정에 잠시 숨 돌릴 겨를 없이 숨가쁘게 움직이던 것과 비추어 마치 느린 걸음의 따분함에 갑갑하지 않을까 하던 우려는 기우인 양 속도에 묻힌 주변의 감동을 면밀히 느끼며 그와 함께 여유의 달콤함이 달디단 칡뿌리처럼 음미할 수록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리던 하루, 바로 이 날의 여정은 느림이 희생과 나태가 아니라 포옹과 고찰임을 깨닫는 기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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