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89

재미있는 반영 사진_20201111

집으로 가는 길에 언제나처럼 하나로마트에 들러 농축산물을 한아름 담아 다시 길을 가던 중 거울 같은 강변에 길을 멈췄다. 강이 만들어 낸 반영을 보면 여러 모습이 보인다. 수염을 양갈래 늘어뜨린 사람 얼굴 같기도 하고, 강아지나 고양이 모습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악마나 해골 모습 같기도 하다. 강 건너 언덕배기에 집이 보여 마을 어른께 여쭤보니 황씨 집성촌이라 사당처럼 사용하는데 연세 드신 분들이 힘들어하셔서 마을 가까이 몇 개를 세워 놓으셨단다. 내 눈엔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어지는 곳이다. 올라가는 길에 아부지 산소에 들러 자식 도리를 조금이나마 한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 발걸음 소리도 꽤 울릴 정도. 항상 사진 찍는 자리에 서서 같은 구도의 사진을 찍곤 성묘 치레를 마무리했다. 올라오는 길에 ..

단아한 주왕산 계곡, 절골_20201111

이미 가을은 떠나고 머물다 간 흔적만 공허하게 남아 무심히 불어오는 바람에 희미해져 가는 내음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을 버리고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계곡은 간헐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의 모였다 이내 흩어지는 메아리만 수직 절벽 사이로 금세 사라진다. 자연이 아닌 인위적으로 이런 기이하고 미려한 솜씨를 발휘할 수 있을까? 낙엽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젖지 않고 수면 위를 유영하는 형형색색 이파리를 보노라면 일그러진 수면이 다시 평온한 모습을 찾듯 안타까움은 시간의 동정을 기대하긴 어렵다. 태고적부터 무던히 인내한 자연의 현재 모습은 지금까지 조급 했던 내게 한시도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는 위대한 스승과 진배없다. 단 하루의 짧은 밤이 못내 아쉽지만 그렇게 몸 기댄 안락함에 감사를 드리며, ..

찰랑이는 은하수 물결, 청송자연휴양림_20211110

얼마 만에 만나는 은하수인가! 온통 암흑 천지 속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는 동안 바람도 잦아들어 함께 별을 헤아린다. 출렁이는 별빛 파도를 따라 총총히 흐르는 은하수는 어디로 바삐 가는 걸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한 움큼 쥐어 보면 향긋한 가을 내음이 손가락 사이로 뻗어 나와 천사처럼 날갯짓을 하며 암흑 속에 잠자고 있던 자연을 흔들어 깨운다. 홀로 밤하늘을 즐기는 밤이다. 휴양림 통나무집을 홀로 빠져 나와 작은 능선 따라 밤하늘을 향해 올라 수없이 반짝이는 별빛 하모니에 넋 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미세 먼지 수준이 보통임에도 은하수를 볼 수 있는데 청명한 날엔 얼마나 휘영청 밝을까? 은하수를 만나 각별한 순간이었다. 능선의 작은 산마루에 인적이 거의 닿지 않는지 무성한 풀숲 헤쳐 덩그러..

갯마을 석양 아래 강구_20201110

동해 바다에 있는 영덕은 바로 앞이 바다가 아닌 내륙 도시와 진배없었다. 후포와 저울질하다 호기심에 찾아간 영덕 강구는 대게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다가온 대게철을 실감할 수 있었지만 제 바닥이라고 해서 저렴한 건 아니었다. 다만 바다를 바라보며 대게를 뜯는 기분은 아무런 양념이 없음에도 풍미를 배가 시켜주는 플라시보 이펙트랄까? 모처럼 대게를 질리도록 먹고 나오자 하늘엔 땅거미가 깔려 이내 하루가 저물 기세라 바로 앞에 있는 광장을 한 번 둘러봤다. 꽤나 너른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자 비로소 딱 트인 동해가 눈에 들어오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에 시선을 맞췄다. 공원 한 켠 방파제 언저리엔 건조에 한창인 생선이 있고, 그 아래엔 굶주린 길냥이들이 행여나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촘촘하게 짜여진..

가을 편지 속 책갈피, 불영사_20201110

쓸 수 있다면 가을 색동옷 차려 입은 이파리에 편지 하나 새겨 띄우고 싶다.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하고, 결고운 빛 파도의 출렁이는 눈부심에 행복의 단물에 현혹되는 기분이 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지나친 시간이라도 가을옷을 입은 추억은 더욱 각별해지고, 유희 넘치는 햇살 아래 시선을 시기하는 시간 조차 내겐 너무 특별하다. 이따금 지나는 여울의 조잘거림도 경쾌한 곡조 마냥 어깨가 들썩이고, 삶의 힘든 순간도 이토록 현란한 자연의 춤사위 앞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망각의 어깨 너머로 사라질 때 지금까지의고난도 미쳐 깨닫지 못했던 뼈저린 통찰이었음을, 지금 살아 있고, 이 넘치는 자극에 감탄할 수 있는 것 또한 난 행복하다. 그래서 지나친 가을이라도 투정도, 안타까움도 없는 건 다음 해에 다가올 가을이 있기..

소중한 시간의 창고, 태백을 떠나며_20201110

예기치 못한 경험을 마주하며 기억을 조각하는 게 여행이라면 태백은 창작을 하는 작업실이라면 솔직한 표현일까? 전날 홀로 집을 지키던 냥이가 후다닥 놀다 방에 갇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꺼내곤 곧장 다시 태백으로 건너와 늦은 시각-태백의 시계는 20시만 넘어도 식사 가능한 곳이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았다-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을 찾다 신전 떡볶이 집에서 모처럼 분식으로 배를 불린 경험도 여행에선 꽤나 값진 기억이었다. 밤새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뒹굴다 이튿날 늦게 부시시 일어나 태백을 떠나 다음 여정지로 출발하는데 늘 그렇듯 아쉬움 금할 방법은 딱히 없었다. 숙소를 떠나기 전, 베란다에 나와 정취를 담았는데 여전히 옅은 미세먼지가 대기를 덮은 날이었다. 청명하면 좋겠지만 이 또한 예..

여명이 지고 은하수가 핀다, 태백에서_20201109

겨울 같은 만추, 여명이 나리는가 싶더니 찰나의 인연처럼 해는 순식간에 동녘마루를 박차고 뛰어올라 단숨에 어둠을 깨친다. 가을은 그리 짧은 게 아니지만 떠나려 할 때 뒤늦은 아쉬움처럼 아침의 고요 또한 분주한 세상이 펼쳐지고 나서야 애닮음을 아쉬워한다. 치열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맞이하는 휴식에 비로소 평온에 눈이 트이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가 기지개를 켠다. 눈이 제대로 뜨이지 않는 깊은 졸음을 애써 누르고 베란다로 나와 새벽 여명을 맞이하며, 태백의 평화로운 대기에 추위를 잊는다. 마치 모든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든 것만 같다. 찰나... 잠시 사색에 빠졌을 뿐인데 성급히 동트며 이글거리는 햇살의 촉수를 뻗어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사용하지 않는 구형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집에 설치하여 CCTV로 ..

뿌연 몽환 같은 태백_20201108

태백에서의 첫날밤은 추위가 다가오기 전 매서운 바람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작은 소리조차 바람이 집어삼켰다. 1천 미터 넘는 고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졸음처럼 거리를 따라 걷는 가로등 불빛은 요동도 않고 자리를 지키며 부쩍 다가온 겨울을 맞아 미리 움츠린 채 평온의 옷을 껴입은 것만 같았다. 한밤에 홀로 빠져나와 주차장 끝에서 장벽처럼 서 있는 산이 둘러싼 태백 도심을 응시했다. 미세먼지가 살짝 끼어 있어 광해는 안개처럼 첩첩이 쌓여 있었고, 불빛은 작은 심호흡도 멈췄다. 이런 날 은하수 보는 걸 기대하지 않았지만 한참 뒤에야 사진에서 아주 미세하게 볼 수 있었다. 왠 횡재! 태백에 오면 늘 이 전망을 한참 주시하는데 그저 평온의 강렬한 에네르기파로 인해 잡념이 산화되어 버..

입맛의 추억_20191129

집으로 가는 길이 살짝 낯설게 느껴질 만큼 이번 여정이 근래 들어 길고 여유롭긴 했다. 이쯤 되면 여독이 조금 쌓여 음식을 해 먹는 게 조금 귀찮아지면서도 먼 길을 가야 뎅께로 에너지는 보충해야 되고, 때마침 가는 길목을 전주가 든든히 지키고 있어 참새가 방앗간을 걍 지나칠 수 없는 벱! 10월 중에 방문했던 매콤 달싹 등갈비 집으로 향했다. (음식으로 마법을 부리는 전주 사람들_20191009) 순천완주 고속도로 동전주 IC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찾아가기도 수월했다. 보고만 있어도 군침이 도는 비주얼에 전부 말을 잃었다. 전골냄비 아래 불꽃이 춤을 추자 매콤한 향이 코 끝을 간지럽히고, 뒤이어 대파의 톡 쏘는 듯한 특유의 향이 동반되면서 먹기 전의 상상력도 덩달아 춤을 췄다. 전체적으로 열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