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107

냥이_20241110

녀석을 두고 잠시 평택 소사벌에 다녀왔는데 그러는 사이 녀석은 쿠션 위에서 무기력하게 졸며 이따금 몸만 뒤척일 뿐, 식사도 하지 않았다.그게 불쌍해 보여 저녁 외식 대신 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식사를 했는데 현관을 여는 순간부터 녀석은 무척 정겹고 명랑했다.바닥에 앉아 있으면 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마주보고 정겨움을 표현하는 녀석.하긴 불쌍한 게 아닌데 냥이들 외모 자체가 불쌍하게 보여서 그런 생각이 든 게 아닌가 싶다.식사가 끝나자 저녁 루틴처럼 여기저기 집사들 무릎 위에 올라와 잠든 척 했다.나이로 따지면 5년이 훌쩍 지난 성묘인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어린 티를 벗지 못하는 녀석으로 인해 더 정겹고 더 훈훈한 게 아닌가 모르겠다.

일상_20241108

무덥던 여름 한가운데 진천에 내려왔고, 그 폭염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을을 지나 푸르던 이파리가 떨어지며 완연히 다른 계절을 맞이해야만 했다.사람들이 거의 없는 거리엔 낙엽이 자욱하게 쌓였고, 바람 속에선 가을을 지나 찬 내음이 풍기기 시작했다.귀가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숙소에 들러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자 청명한 저녁 가을 하늘에 달이 덩그러니 떠있었다.집으로 가는 설렘처럼 망망대해와 같은 하늘에 한 줄기 빛이 눈부셨다.

노란 가을의 종착역, 원주 간현역_20241105

소금산 잔도를 한 바퀴 돌아 주차장에 돌아왔을 땐 많던 차량들이 부쩍 떠나 빈 구역이 꽤 많을 즈음이었다.행님과 헤어지기 전에 식사라도 대접해 드려야 될 거 같아 주변을 둘러봤는데 문득 주차장 너머 노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대략 위치가 간현역 부근이라 우선 거기로 모셨다.간현역에 도착하자 직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아 간현역 앞에 비교적 오래된 수령의 나무가 노란 가을 열매를 가득 맺어 오후 햇살을 탐스럽게 굴절시켰다.간현역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로 163 소재한 중앙선의 폐역이다.중앙선 청량리~만종 간 복선화 공사가 완료된 2011년 12월 21일을 기해 폐역되었다. 이후 이 역이 맡았던 여객 업무는 2021년 1월 4일까지는 동화역에서, 2021년 1월 5일 이후에는 서원주역으로..

출렁이는 가을 물결,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_20241105

부리나케 달려 도착한 소금산 그랜드밸리는 막바지 가을맞이에 나선 사람들로 주차장을 가득 매울 정도였다.그나마 여주에서 달려온 행님은 워낙 부처 같은 분이라-정말 주변 사람들조차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가는 분이긴 했다- 카페에서 너그러이 기다려주셨고, 부랴부랴 소금산으로 향했다.작년 12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 부론에서 칼국수를 먹은 게 마지막으로 뵌 기억이라 11개월 정도 지난 만큼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거다.[이전 관련글] 간현 출렁다리_20180226무한 도전의 여파인가?간현 출렁다리가 매스컴을 한 번 타고나서 거의 신드롬에 가까울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단숨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몇 년 전 청량리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meta-roid.tistory.com 거대한 스..

촉촉한 11월의 비처럼 찰진 오송 김가네 한정식_20241101

오송 출장길에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짧은 일정을 끝내고 점심까지 준비된 자리라 네비를 찍고 찾아간 곳은 작은 언덕 넘어 한적한 가을 전경이 짙게 서린 철길 옆이었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정갈해서 대부분 빈 그릇으로 만들었고, 식사가 끝난 후 간단한 취지를 발표한 뒤 빗길을 헤쳐 회사로 도착했다.최근에 갔던 집 부근 한정식당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뛰어난 가성비에 가짓수보다 대체적으로 음식이 푸짐한 데다 단맛이 조금 강하긴 해도 컨디션이 괜춘했다.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회사 짬밥이 꽤 괜춘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갓 지은 밥과 같아 쌀알이 혓바닥에 그대로 굴러 다녔고, 특유의 탱글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회사 짬밥이 아무리 좋아도 단체 급식의 태생적 한계가 밥이 쪄서 떡밥 아니더냐.

아쉬운 불발, 영월관광센터와 청령포_20231120

단종의 슬픔으로 점철된 청령포는 무거운 초겨울 공기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육지 속의 섬이 아닌 땅의 기운이 근육처럼 불거진 그 배후의 지세가 특이한 명승지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청령포를 오가는 배는 분주하게 강을 횡단하며 뜀박질하는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이 작은 세상엔 눈을 뗄 수 없는 것들이 곳곳에 은폐 중이다.모노톤의 딱딱한 벽엔 인간에게 친숙한 생명들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크게 굽이치는 서강의 온화한 물결엔 바다로 향한 서슬 퍼런 집념이 웅크리고 있었다.조선 초기엔 한이 서린 유형지로, 현재는 한강이 되기 전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지리적 부표, 청령포에서 작은 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다음 만날 곳으로 떠났다.청령포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

위대한 믿음의 각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_20231107

믿음은 단편적이거나 열정적이지도, 달콤하거나 아름답지도 않다.오래 거듭된 귀로에서 식상함의 유혹을 물리치고 내 사념 마냥 친근한 타자, 그게 어느 순간 믿음이 되고 부지불식간에 교감의 견고한 가교가 연결되며 의심의 슬러지가 생기지 않는다.때가 되면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세상에 서리란 믿음, 그 믿음의 결실 중 하나가 바로 반계리에 깊디깊은 뿌리를 내려 하늘 향해 모세혈관으로 뻗었다.가을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도 믿음의 편견은 실망이 파고들 여지조차 주지 않은 채 낙엽 자욱한 이곳에서 또 한 번 위대한 믿음의 희열을 느꼈다.미세 먼지도 물러난 청명한 가을 하늘에 홀린 듯 이 자리에서 서서 여지없이 감탄사를 공양하고, 감동을 주섬주섬 챙겼다.앙상한 가지만 남았음에도 간헐적으로 찾는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하리..

상행_20201120

곧장 창녕을 떠나 대구에서 지인을 만나 모처럼 막창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회포를 풀었다. 다음날 점심은 대구에 오면 한 번 정도는 꼭 들르는 뼈해장국집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상행 고속도로를 탔다. 근데 여긴 찾는 시간대에 따라 맛이 들쑥날쑥인데 잘만 걸리면 구수한 진국이 나온다. 속리산 휴게소에 들러 멋진 구병산 산세는 꼭 감상해야지. 휴게소 바로 옆 시루봉도 특이하지만 멋진 몸매를 갖고 있다. 휴게소 뒤뜰에 어린 냥이들이 굶주림에 힘겨워했다. 집사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늘 가져 다니는 햇반 그릇에 녀석들 한 끼 밥을 채워주자 허겁지겁 해치웠다. 뻔히 알면서 지나친 찝찝함보다 녀석들의 삶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