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오도산 휴양림에서 마지막 시간_20191126

사려울 2019. 12. 22. 06:07

전 날 비슷한 시각에 오도산 휴양림으로 첫 발을 디딘게 아쉬울 만큼 하루 시간은 금새 지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첫날은 휴양림을 통틀어 우리 뿐이었고, 이틀째 접어든 날은 비록 집 한 채 불이 켜져 있었지만 조금 떨어진 곳이라 첫째 날과 진배 없었다.

산에서 맞이하는 초겨울 추위라 기온도, 분위기도 싸늘 했는데 그나마 마당 한 가운데 덩그러니 불빛을 밝히던 녀석이 유일한 세상의 빛과 같았다.

늘 그렇듯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다 밤하늘 총총한 별을 카메라로 담았지만 기대했던 은하수는 보이질 않고, 시간이 지날 수록 구름이 삽시간에 몰려와 하늘을 덮어 버렸다.



별은 밝지만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별이 빼곡 하게 박혀 있지 않았고, 점차 구름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물론 도시나 수도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밤하늘에 비해 별이 선명했다.



이번에 교체한 카메라 바디 T30은 수동 초점이 좀 더 정교하여 기존 티워니의 두리뭉실한 초점 모드에 비해 정확하게 밤하늘 별의 초점을 잘 잡았고, 초점 잡기도 수월했다.

몇 번 초점링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얼추 감각이 손에 익어 실제 사진을 촬영하고 맥북으로 옮겨 확대해 보면 예전 사진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몰려온 구름이 순식간에 하늘을 대부분 집어 삼켜 더이상 빛나는 별의 감동을 찾지 못할 즈음해서 마당 가로등 불빛 아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뭔가 생명체가 느껴 졌고, 예감이 정확하게 들어 맞았는지 길냥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전날 어린 삼색 길냥이와 달리 이 녀석은 치즈 였는데 경계심이 좀 더 강해 주머니 속 쿠키를 손에 들고 다가가자 이내 다른 암흑으로 사라져 몸을 숨겨 버렸다.

그래도 멀리 가지 않고 주위를 멤도는 예감이 들어 전날 삼색 길냥이가 뺏어간 츄르의 내용물을 행여나 돌아와 먹지 않을까 싶어 맨홀 뚜껑에 짤아 놓았는데 삼색 길냥이가 입도 대지 않은 걸 말끔히 해치운 장본인인 듯 싶어 같은 자리에 쿠키 몇 개를 두자 금새 해치워 버렸다.

다시 쿠키를 넉넉하게 줄려고 다가가자 이내 몇 걸음 떨어진 계단 밑으로 몸을 숨겼고, 그래도 시야가 벗어난 곳으로 사라지지 않았던 건 본능적인 경계심일 뿐 내가 먹이를 준다는 걸 알고 이내 다시 나타나 멀찌감치 떨어진 나를 쳐다 보면서 급하게 먹었다.

삼색 길냥이는 이내 경계심을 풀고 내가 주는 츄르와 쿠키를 맛나게 먹었는데 치즈 길냥이는 경계심을 조금 늦추긴 해도 완전히 풀어 헤치지 않았다.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되어 이제 이틀 동안 신세를 진 숙소를 출발하기 위해 짐을 꾸리던 중 거실 통유리 너머 첫 날 봤던 삼색 길냥이가 마당을 가로 질러 다가 오는 게 보였다.

불쌍한 마음에 전날 묘산에서 구입한 쿠키 하나를 따서-첫 날 이 녀석한테 츄르 3개 모두를 줘서 더이상 남은 게 없었다- 통유리 너머 야외 탁자로 다가가자 냉큼 내가 있는 자리로 올라와 쿠키를 기다렸다.

하나를 주자 이 녀석한테 너무 큰 지 먹기 버거워 하길래 잘게 부셔서 입 앞에 주자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 헤치고 주는 대로 넙쭉 잘 받아 먹어줬다.

제법 많이 먹었는지 먹는 속도가 느려 졌을 무렵 있던 쿠키를 다 먹은 녀석이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한 곳을 응시 했고, 전날 밤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쿠키를 받아 먹던 치즈 길냥이가 멀찌감치 떨어져 이 녀석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 녀석도 주고 싶었는데 경계심이 여전해서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 가길래 전날처럼 맨홀 뚜껑 위에 몇 개를 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한참을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삼색 길냥이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당 정면 가로등이 있던 방향으로 걸어가 사라지고, 한참 지나 모든 짐을 꾸려 차량 시동을 걸 무렵 발치 아래 숲속에서 치즈 길냥이가 나와 눈이 마주친 뒤 다른 통나무집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예기치 않게 길냥이와 인연이 닿았던 합천 오도산에서 야생 동물의 혹독한 계절인 겨울로 인해 굶주림의 현실을 마주했다.

그들도 따스한 심장을 가진 생명인데 좋지 못한 편견에 더욱 어둡고 위험한 곳으로 내몰리는 고양이를 보면 측은하고 불쌍하다.

주인을 버리고 집을 나가는 게 아니라 쉽게 길을 잃어 버리고, 경계심과 두려움에 이성을 잃어 은둔하고 숨는 건데 그걸 제대로 알지 못했던 때는 흔한 편견에 고양이를 싫어 했던 건 사실이었다.

허나 고양이와 개는 인간에게 있어 친화적인 동물이며, 모성애 또한 인간 못지 않은 동물 중 하나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 천장 위에 득실 대던 쥐들도 아무리 약을 놓고, 무슨 수를 써서도 잡지 못했건만 고양이 한 마리 키움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쥐의 자취가 사라져 버렸던 걸 비추어 보면 모든 길냥이로 인해 그 많던 쥐들도 찾아 보기 힘들만큼 인간에게 있어 유익한 동물 이자 해롭지 않은 동물이다.

어떤 누군가는 길냥이들이 이렇게 있어 과거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패스트가 없는 거라고 했는데 실제 고양이를 대량으로 사육하는 것 또한 인간인 만큼 왜곡된 가치관으로 유기되어 길고양이로 전락하는 건 오롯이 인간들의 이기적인 만행일 뿐이다.

이들도 본능에 충실한 동물인지라 잔뜩 인간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허기에 못이겨 조금만 선행을 베풀면 마음의 문을 열어 주는 녀석들이다.

이전에 어느 누군가 선행을 베풀었기에 인간을 적대시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다가와 허기를 호소하는 게 아닐까?

그런 선행을 묵묵히 베푸는 따스한 사람들이 있기에 이 녀석도 내게 다가와 마음을 열어 줬다는 걸 생각해 보면 선뜻 선행을 베푸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허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작은 쿠키 몇 조각이지만 고맙게 내밀 수 있었다.

다음에 나타날 선행들을 생각하며 어렵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도산 휴양림의 짧은 시간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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