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담양을 왔다.
기억의 빛바랜 모습에 다시 채색이 필요하여 따스한 겨울 품이 움튼 담양을 왔다.
매끈한 아스팔트와 고색창연한 도시의 불빛이 역겨워 잠시 피하면 감은 눈에 아른거리고, 밟은 땅에 돌이 채여 이미 익숙해진 딱딱한 질감의 문명에 멀리 떠나지 못한 채 습성의 담장을 넘지 못한다.
차라리 잊으라 치면 발길 돌릴 수 없는 매력에 눈이 멀고, 상납하던 영혼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그래서 담양에 왔다.
햇살 나부낄새라 새벽 여명과 세상 빛이 안개로 승화된다.
해가 뜨기 전 새벽녘, 메타세콰이아 낙엽 자욱한 이 길을 밟는 질감이 쾌감으로 느껴지고, 먼지 내음을 도치시킨 낙엽 내음에 안도하게 된다.
더불어 얇게 펄럭이는 안개는 해가 뜨기 전까지 길에 머무르며 다음 올 존재들에 대해 자리를 내어줄 채비다.
아침 햇살에 걷히는 안개를 뒤로하고 막연히 다가왔다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차량의 뒷모습에서조차 여유가 흩날린다.
하루를 밝히는 빛과 그에 쫓기듯 바삐 돌아가는 여명은 희망의 바턴을 꼬옥 건네며 험난한 갈망의 걸음을 토닥이고, 빼곡한 가지에 걸린 계절의 과실을 하나 따다 내민다.
놓치기 싫고 떠나고 싶지 않은 아침 시간에 어디론가 향하는 걸음 또한 기대의 가벼운 걸음을 주체할 수 없다.
하나로마트에 들러 오픈 시각을 잠시 기다리며 동트는 동녘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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