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여유의 세계, 금성산성_20200623

사려울 2022. 9. 28. 00:22

이번 담양 여행의 목적은 국내 최고의 인공 활엽수림인 관방제림과 강천산과 이어진 산자락 끝에 담양 일대를 굽이 보는 금성산성.
소쇄원, 메타세쿼이아길, 죽녹원은 워낙 유명 인싸인데다 특히나 소쇄원은 광주와 화순 사이에 끼어 있어 거리가 멀고 3년 전에 다녀온 터라 이번 여행 동선에선 고려하지 않았다.
지인과 저녁 식사 약속으로 시간이 촉박하여 금성산성 초입 보국문과 충용문까지 여행하기로 한다.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백팩 하나 짊어진 채 금성산성으로 향하면 산성 탐방 안내도가 나와 대략적인 잣대가 된다.

산길치곤 완만하고 너른 길이라 걷기 알맞다.

거기에 더해 이런 대숲과 나무 터널이 있고, 걷는 동안 숲을 쓸어 올리는 바람 소리는 곁들여진 음악과 같다.

나비 하나 나풀거리며 주위를 맴돈다.

20분이 조금 넘었을까?

작은 모퉁이길을 돌면서 갑자기 바위 위에 걸터앉은 보국문이 반갑게 첫인사를 건넨다.

보국문 앞에 매혹적인 노란 꽃잎이 바람 따라 손짓한다.

보국문을 지나면 너른 내부의 공간과 그 너머 충용문, 이어진 성곽이 있다.

보국문 누각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우뚝 솟은 무등산?이 보이고, 겹겹이 나지막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찬다.

미세먼지로 인해 대기가 조금은 뿌옇다.

성벽의 끝에 서서... 아찔함과 성취감이 교차한다.

몸을 서쪽 방향으로 틀면 산세가 만든 담양호 끝자락이 살짝 보인다.

하늘에 자욱한 구름이 밀려오는 걸 보면 조만간 내릴 비를 예고한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충용문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충용문으로 걷다 보면 멋진 나무와 함께 그 나무 그늘 아래 여행자들의 휴식을 책임져 줄 벤치가 있다.

바람결에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허공을 유영하는 벌레가 성충으로 변태 하기 위해 번데기라는 필연의 과정에서 묵언수행 중이다.

충용문에 다다를 무렵, 성벽을 타고 올라온 다람쥐와 땋! 눈이 마주치자 둘 다 얼어 버렸다.

반가움? 경계? 어찌 되었건 그 모습이 앙증맞다.

충용문에서 바라본 보국문.

과연 너른 고을을 굽이 볼 천혜의 요새답게 주변을 아우르기 충분하다.

충용문을 지나면 보국문과 마찬가지로 잘 관리된 공터다.

돌탑이 있고 나풀거리는 바람 또한 공간에 짜임새 있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충용문에 들어서 정면 나무숲으로 작은 길이 나 있는데 자세히 보니 냥이 한 녀석이 나른한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 무심코 불렀더니 즉각 내게로 온다.

뭐지?

이틀 연속 금성산성에 올라온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요 녀석 덕분이다.

다가온 냥이는 무턱대고 내게 파고들어 몸을 부비길래 굶주린 걸로 치부했다.

사실 몸을 스담할 때 골반 쪽이 무척 앙상해서 굶주렸구나 싶었다.

물론 마지막 대반전이 있지만.

오는 동안 조금의 의심이나 주저함 없이 곧장 직진하여 내게 온다.

때마침 숙소에 냥이 밥을 챙겨 왔었는데 아뿔싸! 그걸 두고 왔다.

하는 수 없이 물 한 모금 나눠 먹곤 주위를 둘러본다.

다시 냥이를 만났던 자리로 돌아와 녀석을 찾다 충용문 망루? 툇마루? 아래 뭔가 꼬물거려 다가가자 녀석이 새끼들과 나른한 휴식 중이다.

경계심 많은 새끼들이라 바짝 다가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찡했다.

그런 화목한 모습을 뒤로하고 산성을 다시 내려가는데 여전히 마음에 앙금처럼 남은 측은함을 애써 털어내지 않고 하산을 시작했다.

충용문을 지나 보국문을 통과하기 전, 내일 다시 올 결심에 뒤돌아 무언의 약속을 한다.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한적한 길을 따라 멋진 전경에 포위될 수 있는 금성산성의 첫걸음이자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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