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섬진강과 수많은 능선 사이, 용궐산 잔도길_20211221

사려울 2023. 2. 9. 02:03

채계산과 더불어 섬진강 따라 가공된 길을 찾아 순창에 도착, 극심한 미세먼지와 포근한 겨울의 공존은 따로 뗄 수 없는 명제가 되어 버렸다.
이왕 겨울을 누릴라 치면 살을 에는 추위와 함께 청명한 대기를 선택하겠지만 내 의지와 도전을 대입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에 차라리 퍼즐 조각 맞추듯 기억을 채색시키는 편이 낫다.
잠깐의 가쁜 숨을 달래면 위대로운 바위벽에서의 아찔한 육감도, 산을 뚫고 바다로 달리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의지도 가슴을 열어 장엄하게 누릴 수 있다.
이왕 순창에 왔다면 칼바위 능선도 감상했다면 좋으련만 걷잡을 수 없는 욕심으로 고개를 쳐드는 결정 장애를 어쩌나!

용궐산
순창군 동계면 강동로에 위치한 용궐산(645m)은 원통산에서 남진하는 산릉이 마치 용이 자라와는 같이 어울릴 수 없다는 듯 서쪽 섬진강변으로 가지를 치며 솟구친 산이다.
용(龍)같이 우뚝 솟아 석별로 이루어져 움틀거리는 준엄한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앞에는 만수탄(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이 용골산은 굴이 천연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당지굴이 있어 돌사이에서 물(석수)이 계속 나오고 있어 세인들은 약수라 모여 들어 이용하고 있다. 경사암벽을 따라 지그재그로 용궐산 하늘길이 조성되어 있다.
북,서,남, 삼면이 섬진강으로 에워싸여 있기에 등산 코스도 섬진강변에서 오르내린다. 용궐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북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덕치면 가곡리의 협곡너머로 청웅의 백련산, 덕치의 원통산이 다가오고, 동으로는 남원 보절에 있는 천황봉(909m) 너머로 지리산의 제2봉인 반야봉이 아스라하게 다가온다. 반야봉에서 오른쪽으로는 무량산이고, 무량산 오른쪽 아래의 가까이는 햇빛을 받아 섬진강의 은빛물결이 출렁거린다. 서로는 수직절벽이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서 땅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강 한가운데 물결무늬를 이룬 거대한 너럭바위와 함께 있는 요강바위는 어른 3명이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처럼 움푹 패인 구멍이 있는 바위다. 상단부에는 연꽃 모양을 한 돌출부 3개가 있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귀를 쫑끗 세우고 있는 토끼 같기도 하고 또는 여성 성기를 빼닮은 모습이기도 한 기암이다. 요강바위, 자라바위 등 기암괴석들을 품에 감싸 안고 있는 섬진강이 장구목마을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내려다 보인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용궐산 정상에는 바둑판이 새겨진 너럭바위가 있다. 주민들이 신선 바둑판으로 부르는 이 바위는 옛날 용궐산에서 수도 중이신 스님이 바둑이나 한 판 둡시다라는 내용이 담긴 서신을 호랑이 입에 물려 무량산에 기거하는 스님에게 보내 이곳으로 모셔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출처] 전라북도 문화관광

전라북도 문화관광

tour.jb.go.kr

올여름부터 차일피일 미루다 드디어 찾은 용궐산 잔도길은 평이한 산길을 따라 걷다 어느 순간 바위와 그 길이 이어졌다.

머리 위에 이렇게 잔도길이 그어져 있는데 초반엔 뿌듯한 오르막길을 따라 걷기 때문에 조금은 힘겨웠다.

일반적인 산과 비슷한 산길을 걷다 어느 시점부터 바위산으로 바뀌고 잔도길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광각으로 찍은 거라 바위 규모가 생각보다 거대했다.

지그재그로 길을 오르면 서서히 잔도길이 형체를 드러냈다.

드디어 용궐산을 찾은 목적, 잔도길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됐다.

바위 따라 크게 굽이치는 잔도길은 수직 절벽이 아닌 가파른 바위에 세워진 길이었다.

섬진강은 연이은 산을 가르며 발치에 멋진 전경을 만들어 낸 일등 주역이었다.
멀리 장군목유원지와 섬진강을 건너는 현수교가 어렴풋이 보였고, 짐작컨데 그 부근에 섬진강의 작품인 요강바위가 있겠다.

완전 절벽이 아닐지라도 가파른 바위산에 이런 잔도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새삼 인간이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미세먼지가 짙게 있던 날이라 시계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이미 계획된 일정상 대기 청명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즐기는 수밖에 없었다.

용궐산에서 섬진강 건너 벌동산과 두류봉이 마주했다.
크게 바위 위를 휘몰아치는 잔도길은 시선의 장애물이 없어 섬진강 따라 일대 전망을 과감 없이 담을 수 있었다.

여기에 잔도길을 설치할 이유는 명백했다.
유연하게 첩첩 산을 가르는 섬진강과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군락처럼 모여 있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에서 미세먼지가 자욱하던 날이 아쉽긴 했지만 일대 전경을 아우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걷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출발지가 보이고 꽤 많이 오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출발할 때 까마득해 보이던 잔도길을 힘들게 앞만 보고 오르는 사이 어느덧 밟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일찍 일어난 후유증 때문인지 체력은 부딪겼다.

이렇게 보면 잔도길도 대단하다.

잔도길이 끝나고 길 따라 조금 더 오르면 주차장에서 보이던 능선상의 전망대가 있었는데 문득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였던 오봉산이 떠올랐다.

방울새?
양지바른 전망대 인근에서 작은 그늘을 찾아 쉬고 있는데 환영하는 추임새인지 녀석이 주변을 깡총거리며 맴돌았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세상은 체력이 바닥나 힘들게 오른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오후 접어들어 제법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무렵에 서둘러 내려와 바닥난 체력을 돌보며 다시 담양으로 돌아왔다.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한 뒤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금성산성으로 향했는데 평일의 여유가 곁들여진 담양은 시간마저 낙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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