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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내음_20200515

가족들의 쉼터가 있는 오지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쉴 새 없이 비가 내린다. 방수 재킷을 걸치고 잠시 빗소리를 감상하다 보면 세상 시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지고, 자칫 무료할 것만 같은 문명이 차단된 곳임에도 화이트 노이즈가 있어야 될 자리에 차분한 대화가 자리 잡는다. 평소 얼마나 다양한 문명의 도구에 시간을 바쳐 왔던가. 이른 새벽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지저귀는 새소리는 건조한 소리에 익숙한 청각에 단비를 뿌려준다. 동 틀 무렵 밤새 지치지 않고 흐르는 여울로 나가 지저귀는 새소리를 곁들인다. 잠에 취한 눈에 비해 머릿속은 놀랍도록 맑아진다. 산골에 맺힌 빗방울은 도시와 달리 더 영롱하고 쨍하다. 아주 미묘하게 약초향이 가미된 영락없는 미나리와 같은 녀석은 산미나리란다. 이미 꽃이 만발하여 먹기..

상행길_20200507

집으로 가는 길에 정주행 하지 않고 곁길로 살짝 빠져 하나로마트에 들른다. 지역 농산물은 동탄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하면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야채나 과일 등이 있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이면 거의 습관적으로 방문하게 되는데 한적한 마을 정취에 비해 하나로마트 규모는 꽤 넓고, 그 옆엔 정겨운 초등학교가 붙어 있다. 세상을 태울 듯 강렬한 햇살 아래 정말 모든 생명이 타버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들만큼 인적을 찾기 어려운 마을에서 간단한 요기까지 해결한 뒤 고속도로 상행선에 올라탄다. 멋진 산세에 반해 이 도로를 이용할 때면 가급적 머무르는 휴게소에서 눈과 몸에 끼인 피로를 털어낸다.

나무와 동물숲을 떠나며_20200507

가뜩이나 더위가 성급한 대구에서 하루 차이로 서울과 완연히 다른 계절의 파고를 실감한다. 숲 속에 은둔한 숙소를 이용한 덕에 생각지도 못한 애증의 생명들을 만나던 날, 가련함이 교차하여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거리를 활보하는 공작이 이색적이긴 하다. 오전 느지막이 봇짐을 챙겨 떠나는 길에 숙소에서 마련한 차량을 거절하고,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애니멀밸리를 관통하게 되는데, 고도가 가장 높은 숙소에서 차량이 있는 입구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반대로 지속된 내리막이라 이른 더위에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넉넉한 시간을 핑계 삼아 꼼꼼히 둘러보기로 한다. 프레리독. 사진도 충분히 귀엽지만 실제 녀석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더 귀엽다. 카피바라? 한길을 중심으로 꼬불꼬불 엮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익살맞은 귀염둥..

숲 속 호텔의 이색적인 경험_20200505

신천지 코로나 사건으로 홍역을 앓은 대구에 무수히도 많은 시민들이 속절없이 피해를 보고 어느 정도 상처가 치유될 무렵 회사 복지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궁금증을 불러내던 리조트로 여행을 떠난 건 학창 시절 스승을 직접 뵙기 위함이었다. 전날 저녁에 도착하여 리조트 입구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자 이쁜 경차가 내려와 가족을 싣고 미리 예약된 숙소로 이동하는데 산중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겉과 완연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캐리어에 갇혀 있는 보따리를 풀고 홀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 차로 이동할 때와 또 다른 조경과 불빛이 어우러져 산길을 산책함에도 지치기는커녕 쾌속으로 지나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 숙소는 산속의 고급스런 통나무집처럼 나무향이 그윽하고, 한옥 쪽문을 연상시키는 후문이 있어 가족은 마..

일상_20200504

마치 녀석은 처음부터 가족 같다. 붙임성과 넋살에 있어 냥이와의 간극은 기우였을 뿐, 원래 그랬던 것처럼 무척이나 적응을 잘하고 애교도 끊임없다. 올리브영에서 구입한 딸랑이 두 개 중 하나는 거의 외면당하고, 나머지 하나는 잘 가지고 논다. 아주 미세하게 방울 소리만 나도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사냥놀이에 바로 빠져든다. 이런 녀석과 한참을 즐긴 후 창 너머 청명한 대기를 쫓아 냥이 마을로 출발한다. 어린이날 전날이라 그런지 야외공연장 잔디광장엔 아이들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냥이 마을로 바로 직진하지 않고, 반석산 둘레길로 우회하여 냥이 마을로 들어서기로 하자. 특히나 노란 꽃들이 눈에 띄어 쉰들러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데 노란색 인식이 완벽하지 않지만 이쁘게 잘 표현되었다. 하..

냥이_20200501

가족이 무척 그리웠나 보다. 접촉의 희열을 알며 어떻게든 직접 닿아서 관심도 얻고 사랑도 축척하는 영특하면서 애교 넘치는 냥이, 수컷인데 이리도 애교가 많다니, 의외다. 식사 자리에 앉는다는 걸 미리 간파하고 먼저 자리를 잡았다. 집사 나부랭이가 어떻게든 접촉할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졌다. 잠깐 무시하면 서 있는 발등에 다리나 몸을 걸쳐서 집사가 개무시하지 않게 낚는 법도 배웠다. 이러니 정이 안 들 수 있겠나! 손녀가 미리 챙겨준 할머니 꽃선물. 매년 빼놓지 않고 실용적인 화분을 꼭 챙겨 준다. 코로나 19로 학교를 가지 않아 초조할 텐데 제 할 일은 꼭 하는 애교쟁이며, 야무진 아이다. 늘 어리다고 여겼던 녀석이 벌써 고3?! 사진 찍을 때는 몰랐는데 꽃 너머에 너구리 같은 녀석이 앉아 있다. 잠들기..

냥이 마을_20200423

복합문화센터 뒤뜰에서의 휴식을 끝내고 곧장 냥이 마을로 향했다. 대기가 맑은 데다 화창한 날씨는 덤이라 반석산을 한 바퀴 돌아도 여전히 발걸음은 경쾌했다. 10kg짜리 냥이 밥을 구입한 덕에 당분간 녀석들과 울 냥이에 대한 식사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아 그만큼 녀석들을 찾아오는데 부담도 없었다. 마을에 도착해서 이제는 낯익은 녀석들은 알아서 총총걸음으로 모이며 주위를 맴도는데 처음에 3 녀석이 보여 3 그릇을 나누어 줬고, 뒤따라 두 녀석이 오자 먼저 배를 채우던 녀석 둘이 자리를 양보했다. 식사자리에 가장 먼저 입을 대는 녀석은 치즈얼룩이와 검정얼룩이로 녀석들은 전혀 망설임 없이 식사를 하는데 가끔 식사 중에도 다른 밥그릇에 옮겨 다니며 식사를 하는데 다른 녀석들도 전혀 거부반응이 없는 걸 보면 무..

일상_20200423

여전히 서늘한 봄이지만 그래도 반가운 이유는 맑은 대기로 인해 봄의 매력을 여과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청객과도 같은 황사와 미세먼지가 언제 다시 습격할지 모르지만, 그런 이유로 인행에서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고 정설처럼 흘러 왔는지 모르겠다. 흐르는 시간이 안타깝다고 여기는 것보단 한껏 팔 벌려 누리기로 한 마당에, 그래서 치열한 시간들 사이에 이런 달콤한 용기를 주는 게 아닐까? 냥이 마을도 찾을 겸 온전하게 맑은 봄도 만날 겸해서 집을 나서 우선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소홀한 반석산 북녘을 관찰하기로 했다. 곧장 반석산 정상을 지나 낙엽무늬전망데크에 다다르자 역시나 성석산을 비롯하여 서울 진입 전 장벽처럼 서 있는 청계산 방면까지 또렷하게 보였고, 급하게 올라와 턱밑까지 차오른 숨은 금세 감..

냥이_20200421

회사 동료가 선물해 준 스크래쳐에서 밍기적거리며 뒹구는 녀석은 다른 가족들이 함께 있는 동안 마음껏 이용한다. 그러다 가족들이 사라지면 뒤따라 스크래쳐에서 벗어나는데 가만히 지켜 보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는 동안 마음껏 즐긴다. 녀석의 최애 아이템인 약껍질이나 호두를 가지고 누워서 뒹굴며 만만한 듯 무척이나 괴롭힌다. 스크래쳐 위에서 잠들때도 있고, 티비를 보거나 가만히 앉아 가족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그루밍을 하는데 이건 무척이나 졸려 몸단장을 끝낸 뒤 자겠다는 신호다. 개냥이 코코의 낮잠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