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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점에서 눈이 내린다, 태백 오투리조트_20200412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려 창 너머엔 마치 수묵담채화처럼 첩첩으로 설산의 풍경이 연출되었다. 4월은 봄의 정점 이건만 기온은 혈기왕성한 동장군의 위력 못지않게 열린 창을 파고들어 뺨을 스치는 바람은 제법 날카로운 추위의 칼을 휘둘렀다. 눈길의 위험을 피할 요량으로 사람들은 서둘러 태백을 떠났고, 봄눈의 절경을 맞이하려는 나는 아득한 함백산으로 출발했다. 2015년 11월에 텅 빈 함백의 설국을 밟았던 이후 그 당시와 절묘하게 일치되는 정취와 추억을 표류하고자 처음 의도와 다른 함백으로 발길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눈꽃들만의 세상, 함백산_20151128) 2015년에도 오투리조트에 올라 첩첩한 산을 따라 함백을 갔던 만큼 처음엔 기억에서 조차 먼지 자욱하던 추억이 기습적인 눈발로 떠올랐다. 비교적 이른 ..

늦게 도착한 태백_20200411

한 달 전 쯤, 태백 여정을 계획하고 주말에 도착했다. 허나 일기예보에 의하면 강원 남부 산간지역에 많은 눈이 예상 된다고? 4월 중순에, 여행객들이 빠져 나간 텅빈 여행지에서의 기분은 어떨까? 무게감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구름과 잔잔한 바람을 대하고 있노라니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와 비장함이 서려 있다. 골짜기 따라 길게 늘어선 태백 시가지가 봄을 만나러 땅 위로 나와 크게 꿈틀대는 용처럼 보여 이따금씩 번뜩이는 이빨을 반짝인다. 아무리 완연한 봄이라지만 해발 고도 1천미터가 넘는 자리에 서자 기분이 묘할 만큼 겨울 내음이 코 끝에 서리며 한바탕 흥겨운 꿈에 취한 사람처럼 밀려든 기대감에 여전히 꿈은 아닐까 착각이 든다. 폭풍전야란 이런 느낌일까? 요동을 치기 위해 자연이 한껏 움츠리고 있다.

냥이 마을_20200409

코코 식사를 나눠주고 잠시 앉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힌다. 앞서 식사를 주신 분이 넉넉하게 쟁여 둔 덕에 한 녀석도 빠짐없이 끼니를 채우고도 남았다. 예년처럼 외출과 여행이 신중한 만큼 횟수는 부쩍 줄어 반사적으로 야간의 조용해진 틈을 이용하거나 평일 사람들이 뜸한 기회를 이용하게 되는데, 코로나19가 누그러질 때까지 마스크와 소독제를 챙기며 나로 인한 책임감도 빼놓을 수 없어 불편을 감수해야지. 그런 의미로 냥이 마을 여행은 갑갑한 마음의 멋진 해소를 제공해준다. 불편이 익숙해지면 일상의 수준이 되지만 집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챙기고 되뇐다. 냥이 마을에 구내식당. 녀석들만의 식사 서열이 있어 그걸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 가장 경계심이 많고 겁이 많아 형제들이 다 먹은 뒤에야 귀를 쫑긋 세..

반석산에서 기분 좋은 야경 산책_20200404

정적이 무겁던 이 도시가 해가 지날수록 야간 산책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초저녁에 집을 나서 습관적으로 불빛을 따라 걷던 중 간헐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도리어 반갑다. 가장 만만한 반석산 둘레길을 선택, 익숙한 길을 따라 등불도, 봄소식도 피어나 방긋 웃어줘 피로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둘레길을 걷다 처음 한숨 돌리는 곳은 오산천 방향 전망데크로 오산천 너머 여울공원은 환한 가로등 불빛이 무한할 만큼 적막하다. 이따금 지나는 사람들의 소리가 반가울 때, 바로 이 순간이다. 벚꽃이 한창인 산책로엔 밤에도 드물긴 하지만 인적은 쉽게 눈에 뜨인다. 둘레길을 걷다 가장 지속적인 오르막길을 지나면 두 번째 나뭇잎 전망데크에서 도착하여 습관처럼 한숨 돌린다. 해가 거듭될수록 동탄 일대는 꺼지지 않는..

일상_20200404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카메라 잡은 김에 베란다에 봄소식도 짧게 찍어봤다. 종류가 꽤 많은데 다른 꽃들은 아직 깊은 잠을 떨칠 기미만 보여 보란 듯이 화사하게 만개한 가장 부지런한 녀석의 소식만 담는다. 특정 컬러만 포착했는데 나쁘지 않다. 아니, 도리어 더 감각적으로 표현될 때가 더 많다. 단풍 싹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건 냥이가 이빨로 검수했기 때문. 새 이파리를 얼마 전 틔웠지만 녀석이 하나를 뚝딱 따서 몸보신 한 덕에 조금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계절의 소식은 반가울 뿐이다. 낮 산책 때 버스정류장 부근을 지나면서 유독 벚나무 하나에 참새들이 모여 조잘거리며 한데 어울린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과 미약한 바람에 나풀거리는 꽃, 거기에 참새들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다.

냥이_20200404

카메라가 있어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주지 못해 얌전한 틈을 노리고 셔터를 연신 눌러 댔다. 생각보다 예민한 성격은 아니라 여간해서는 놀라지 않기 때문에 사진 찍기 수월한데 왜 소홀했을까? 근래 들어 워낙 활동적이고 오지랖 떤다고 집안 구석구석 간섭이 끊이질 않아 얌전한 찰나를 포착했다.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턱을 괸 채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 살짝 미소 터지는 표정 같다. 벌떡 일어난 건 방울 소리를 듣고 한바탕 허벌나게 놀 목적이다. 그렇지 않고선 앵간하면 깨지 않을 만큼 잠귀가 어두운 녀석이다. '아직 피로가 완전 풀리지 않았지만 집사를 위해서라면 내가 놀아 줄 수 있다옹~' 엥!? 그러다 딸랑이를 다시 내려놓자 뻐끔뻐끔 쳐다보더니 다시 잠을 청한다. 다시 딸랑이를 들자 벌떡! 일어나 뚫어지게 ..

봄꽃 가득한 길을 거닐며_20200402

봄이 되어서야 보이는 것들, 꽃과 새로 피어나는 녹색과 더불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흔하게 부는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에서 조차 실려 오는 싱그러움이다. 퇴근길에 미리 챙겨둔 카메라로 사람들이 흔히 외면하는 가로수를 한 올 한 올 시선으로 챙기던 사이 부쩍 길어진 낮을 무색하게 만드는 아쉬운 밤이 젖어들었다. 지금까지 감동에 너무 무심했던지 길가에 늘 오고 가는 계절에도 홀로 감동을 오롯이 챙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시간이란 녀석이 늘 무심하다 지만 만약 시간이 옭아매는 조바심이 없었다면 감동의 역치도 없었을 것을. 평소 발길이 뜸한 국제고등학교 인근 거리에 어느새 벚꽃이 만개하여 화사해졌다. 국제고등학교를 지나 사랑의 교회 옆 인도로 걷던 중 만난 들꽃의 빛결. 사랑의 교회 앞 정원에도 봄이 완연하..

비 개인 봉화의 밤하늘_20200327

떠나는 길에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내내 비가 내렸는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자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힌다. 구름이 걷히고 기습적인 추위와 청명한 별빛이 빈자리에 들어앉는다. 아쉽게도 은하수는 없구먼. 조약돌 사이로 쑥이 봄맞이 나왔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인적 없는 깊은 산골에 빛 방울이 반짝인다. 하늘엔 별이, 땅엔 이슬이 하늘하늘 빛을 품고 밤새 초롱이며, 어느새 나누던 안부에 차가운 봄이 시간을 타고 흘러가 버렸다.

냥이_20200324

베란다 한 켠에서 활짝 핀 봄. 냥이 병원 가는 날이라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고, 다행히 전혀 문제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귀와 눈 사이에 털 밀도가 낮아지며 피부가 비치는 것 같은 원형 탈모 비스므리한 낌새를 채고 병원을 데려갔는데 전혀! 이상 없단다. 가는 길에 심장사상충 예방 접종도 했는데 내가 가는 병원에 꽤 많은 수의사쌤 중 가장 앳되 보이는 쌤은 정말로 선하고 착해 보인다. 중성화 수술 당시 하루 입원 중에도 밤늦게 찾아가 따뜻한 두유 몇 개 드린 적 있는데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선한 말투와 인상은 천성 같아 댕이와 냥이한테 잘해 줄 것 같다. 베란다에 화초들이 방긋 꽃망울을 틔우는 완연한 봄이다. 올해는 얼마나 화사한 소식들을 전하려나? 병원 가기 전, 캣타워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중..

가슴 시원해지는 구만제_20200320

가는 걸음이 무거웠을까? 차량에 넉넉히 밥을 챙겨 주곤 출발하다 지리산 생태공원이란 이정표를 보곤 옆길로 샜다. 지난 만추에 방문했던 야생화 생태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지나는 길에 슬쩍 봤던 눈썰미가 남아 어차피 구례를 출발하는 이상 앞만 보고 달릴 텐데 시간 여유가 있어 옆길로 새도 그리 빠듯할 것 같지 않았다. 아주 약간의 미세 먼지가 있긴 해도 이 정도 청명함이면 땡큐 아니것소잉. 구만제는 호수를 둘러싼 주변 경관이 매혹적이다. 그래서 공원은 물론이고 리조트와 휴양림도 들어섰다. 길게 늘어선 지리산 자락이 땅에 맞닿은 곳이라 호수는 매혹적인 경관을 연출하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대부분 산수유의 마법에 홀려 호수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은 구례가 어디 산수유 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