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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따라 만의사에서_20200421

예년에 비해 이른 석가탄신일로 인하여 앞서 절에 방문한 가족들과 떨어져 텅 빈 사찰 풍경을 찾았다. 개발로 인한 훼손이 많기는 하나 산중에 자리 잡아 오롯이 자연의 품에 기대고 있어 봄의 정취 또한 갓 잡은 신선한 생선의 번뜩이는 비늘 같았다. 무신론자인 나는 봄의 색깔에 경건해지고, 불신론자인 가족들은 진중한 소망에 경건해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본당으로 향하기 위해 첫 계단을 오르면 수많은 연등이 걸려 바람에 지화자 춤을 추고 있다. 만의사에 와 보면 확실히 봄의 정취가 물씬하다. 흙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봄꽃이 자리를 잡고 어여쁜 얼굴로 봄볕을 쬐고 있어 덩달아 봄의 설렘에 도치된다. 꽃복숭아의 가지 하나에 두 가지 색깔이 동시에 피었다. 신기한 고로~ 지속된 오르막길을 따라 법당 몇 개를 지나..

냥이 마을_20200417

이번엔 평소에 비해 많은 양을 챙겨 갔는데 늘 보이던 냥이들이 보이질 않았다. 뭔 일이 있는 걸까? 주변을 둘러봐도 그리 큰 변화는 없는데. 어디선가 냥이들이 한 둘 모이기 시작해서 가까이 있던 녀석들이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온다. 밥이 오면 두 녀석이 가장 먼저 입을 댄다. 치즈 얼룩과 얼룩 두 녀석은 이내 친해져 이제는 녀석들이 제법 반갑다는 표현으로 몸을 문지른다. 처음에 비해 경계는 많이 풀렸지만 요 쪼꼬미 녀석은 아직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데 비해 밥은 용케 알고 달려와 두리번거린다. 행여 다른 녀석들이 올까 싶어 여기에 따로 밥을 넣었는데 얼룩이가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싶어 다가와 몇 입 먹는다. 배부른 자의 여유. 나무 가지에 얼굴을 비비는 표정이 익살 맞으면서도 귀엽다. 여기 모여사는 녀석들..

봄꽃 따라 번지는 핑크 퍼레이드_20200417

봄의 정점에서 전령사들이 잠자고 있던 봄을 일깨워 길게 기지개를 켠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의 진면목이 그토록 오랫동안 깊은 잠을 깨며 화사한 소식들을 알차게 준비해 왔다는 이치가 오묘한 싹을 틔울 줄이야. 들판에 피는 허투루한 야생화 조차 제각기 다른 모습의 개성을 드러내며 흐르는 시간을 잊게 만든다. 양분 가득한 봄의 기운을 먹고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세상 나기를 하는 존재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왜 숭고하고 거룩한지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냥이 마을에 들렀다 녀석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야외음악당으로 방향을 정하고 걷는데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는 봄이지만 벌써 화려한 예고 한다. 복합문화센터 방향으로 내려오면 영산홍도 하나둘 꽃망울을 틔우고 있는데 이 또한 진한 핑크빛을 탄생시킨다. 매혹적인..

냥이_20200417

가족이 된 지 3개월째, 3.2kg 하던 녀석이 이제 알아서 저울 위에 쉬고 있어 수치를 쳐다보면 4.6kg이 나간다. 게으름뱅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폭식도 하지 않는다. 뒷모습이 항아리가 되어 버린 녀석을 보면 건강을 위해 적정 몸무게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한 번 사냥놀이를 시작하면 2시간이 지나도 지치지 않는다. 노동을 시키고, 피트니스센터를 끊어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켜야 되나? 녀석 때문에 바꾼 카펫 아래로 장난감을 집어 넣어 이렇게 놀면 집요하게 추적하며 가끔 북극여우처럼 껑충 뛰어 장난감을 낚아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 몇 번 그렇게 놀았다고 자기 전 이불을 덮고 발이나 손이 움직이면 노는 걸로 착각하고 손이나 발을 낚는데 이건 아무래도 습관을 잘못 들인 것 같다. 쇼파에서 뒹굴고 있어..

나른한 진풍경, 송지호_20200414

화진포에서 다시 남쪽 방면을 향해 7번 국도의 매끈한 직선을 따라 출발, 송지호의 평온에 이끌려 옆길로 샜다. 텅 빈 해변에 발을 들여 걷기 힘든 고충도 잊고 바다 가까이 다가서서 바다내음 짙은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시야가 뻥 뚫리는 기분, 동해의 매력엔 가희 반할만하다. 파도가 해변을 집어삼킬 듯 돌격해 오다 해변의 평온에 중화되어 급격히 잠잠해진다. 큰 파도에 아슬아슬한데도 갈매기들은 아랑곳 않고 태연하다. 가끔 녀석들끼리 침묵을 깨는 장난과 울음소리가 들리다가도 이내 다시 찾아온 평온. 한 마리 갈매기의 비상, 미친 듯 부딪히는 파도와 미동도 하지 않는 죽도,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고깃배... 몽환적이다. 바다에 죽도란 섬이 있는데 이 섬을 돌아온 파도가 죽도와 해변 사이에서 서로 맞부딪히는 게 ..

나른한 봄의 평화, 화진포_20200414

파도와 바람은 지치지도 않는다. 허나 그 선율은 치유의 유전자가 있어 더 이상 북으로 갈 수 없음에 대한 위로를 해주며 동시에 왔던 길을 고스란히 바라고 떠날 응원도 빼놓지 않는다. 세상에서 발자취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무수히 많아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시간의 감회를 자근히 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정의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의 스승인지 통감한다. 내가 떠나더라도 자연은 무심하게도 안색 조차 변하지 않지만 또한 다시 만나더라도 태연한 모습으로 대답하며, 언제나 변치 않는 신뢰로 회답한다. 요란한 믿음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한낯 휘영청한 거품일 뿐. 숙소에서 출발 준비를 모두 끝내고 베란다에 나와 전날 거대한 암흑과도 같던 바다가 전날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밀었다. ..

둔중한 밤바다, 고성 대진해변_20200413

모두가 잠든 가운데 홀로 깨어 밤새 분주한 파도는 적막을 집어삼킨 채 지칠 줄 모른다. 그럼에도 소음이 아닌 자장가로 거듭나 긴 여정의 끝에 경직된 신체를 이완시켜 준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행복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밤이다. 밤에 도착하여 처음 맞는 적막에 밤 산책은 접고 숙소 베란다에 나와 쉴 새 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이따금 창 너머에 반짝이는 등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휴전선과 접경 지역이라 늦은 밤이면 출입이 통제되는 해변은 환한 불빛만이 자리를 지키고, 이따금 비치는 등대 불빛이 불현듯 외로움을 알려줬다. 이러한데 해변 앞 작은 섬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독한 고독에 시달렸을까? 오래된 시설이라 내부에 오래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특히나 주방기구들은 낡은 데다 관..

겹겹이 춤추는 파도, 옥계휴게소_20200413

태백에서 38번 국도를 이용, 도계를 거쳐 삼척에 도착하여 앞만 보고 달려온 긴장을 풀기 위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담은 뒤 바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던 중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 간판에 현혹되어 옥계휴게소에 들렀다. 정말로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먹먹하던 가슴이 일시에 트여 잠시 수평선에 심취했다. 동서남해가 각기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이 있겠지만 동해라고 하면 심연의 바다색과 더불어 군더더기 없이 트인 시계라 하겠다.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해변으로 총총히 따라붙는 장관이 펼쳐졌다. 바다와 육지에 기댄 소나무가 단조로울 법한 수평선에 운치를 더했다. 바다에 등대가 빠질 수 없는 벱이지. 진정한 휴게소의 의미를 누린 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다 강릉에 들러 출출한 속을..

태백에서 삼척으로, 겨울에서 봄으로_20200413

행복에 대한 감사를 새삼 깨닫게 해 준 태백에 작별을 고할 때, 전날 잔뜩 웅크린 하늘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화사한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 커튼을 열어젖히자 어제 무겁고 표독한 설원과 다르게 포근한 설원이 펼쳐져 있다. 이틀 동안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준 태백과 숙소에 마지막 인사 꾸벅~ 출발하기 전, 매봉산에서 부터 태백산 방면까지 또렷한 선들이 모여 언제나처럼 세상을 노래하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그리 무겁던 하늘은 눈에 띄게 가벼워져 점차 청명한 하늘이 구름을 열어젖히고 투명한 민낯을 내민다. 전날 그토록 짙은 구름을 덮어 꽁꽁 숨어 얼굴을 감췄던 함백산은 하루 만에 완연히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잠깐 사이 구름은 어디론가 총총히 자리를 뜨고 그 뒤를 이어 하늘 본연의 빛깔에 물들기..

평온의 눈이 내리는 검룡소_20200412

5년이란 시간이 흘러 같은 장소가 어떻게 변했을까? 급작스런 눈발이 복병이 아닌 환대의 징표라 자화자찬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아닐 만큼 쏟아지는 눈이 연출한 세상은 묘한 추억의 반추를 표류하게끔 포근한 포용을 발휘했다. 함백산에서 내려와 주저 없이 검룡소로 향하는 길은 간헐적 눈발이 날리긴 했지만 쌓일 만한 양도, 기온도 아니라 이동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검룡소 입구에 도착하자 앞서 방문했던 시기와 달리 입구는 꽤 너른 테마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던 반면 세찬 바람이나 텅 빈 입구는 변함없었다. (한강의 세상 만나기, 검룡소_20151128)차에서 내리기 전, 우산을 챙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괜한 갈등을 때리다 행여 함백산처럼 폭설이 내리지 않을까 싶어 우산도 챙겨 천천히 걸어갔다. 검룡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