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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선율 같은 석양 자락, 선유도_20200905

평이한 두 개가 모여 각별한 하나로, 단조로운 바다와 흔하디 흔한 바위산이 만나 세상 하나 뿐인 자태, 그 모습이 보는 시점과 지점에 따라 다른 옷으로 단장했다. 만약 두 바위 돌기가 서로 시기했다면 그 모습이 남달랐을까? 고립의 아픔에서 서로 의지하며 고단한 바다 한가운데 생존하는 숙원을 조화롭게 이룬 경관이, 그래서 절경일 수밖에 없다. 대장도를 떠나기 전, 뿌연 대기 사이 다음 목적지인 망주봉 방향을 바라봤다. 때론 옅은 안개도 고마울 때가 있다.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미운 오리 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날 수 있는 전경이었다. 대장도에서 차로 이동하여 선유도에 도착, 주차된 차들이 길 양 편에 늘어서 주차는 물론이거니와 통행조차 쉽지 않았다. 망주봉을 지나 선유도 해변의 끝이 보일..

바다와 섬이 그린 그림, 고군산도/대장도_20200905

섬들이 이토록 사이좋게 나고 자라는 곳을 밟으며 먹먹한 가슴을 밀어내 눈이 포근했던 섬 여행. 사소하게 물결치는 획 하나에도 저미는 가슴을 다독이며 한 발 한 발 걸어 올라가 끝내 다스렸던 기대감을 벗어던지는 쾌감은 그 어디에 비유할 바 없었다. 망망대해에 기댄 섬들은 작은 소품처럼 미약하지만 늘 같은 모습의 바다와 달리 시시각각 소박한 옷을 갈아입는 품새는 꼬깃꼬깃 접었던 종이학이 나래를 펼치며 고이 품었던 스펙트럼을 승천시키는 날갯짓이다. 화려하다고 해서 아름다울 거란 핀잔을 애써 삼키며 섬과 계절이 어우러져 감탄의 파도가 덩실거렸다. 가던 날, 안개가 뿌옇게 끼어 시야가 그리 트이지 않았지만 자연이 나에게 맞출 수 없으니 다음 기회를 설렘에 맡기자. 김제 사는 동생을 만나 군산에서 소주 한 잔 뽀개..

짧은 시간의 장벽, 장미산성_20200829

변화무쌍한 날씨답게 이내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을 떨군다. 온몸이 젖은 들 대수롭지 않다 여겼건만 갈피를 잡지 못한 천둥소리에 떠밀리듯 걸었던 길을 되밟는다. 인적이 전혀 없는 길을 따라 평원을 휘몰아치는 남한강 물줄기를 제대로 가슴에 담지 못했는데... 고즈넉한 산사의 길을 따라 그 끝이 궁금했는데... 나처럼 힘겹게 산을 이고지고 올라선 바람의 연주를 채 끝까지 듣지 못했는데... 허공 어딘가에 숨은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음에 다시 오라 한다. 다시 오는 건 아깝지 않다만 지금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회가 아쉽다. 자연과 시간은 항상 내 주위에 있건만 미묘한 감각은 제각각이지 않은가. 초행길이라 지도에 표기된 봉학사 바로 아래 주차한 뒤 길을 걸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오를수록 안개가 ..

남한강의 곁가지, 장자늪_20200829

충주로 내려오는 길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폭우가 쏟아졌고, 서충주신도시에 도착하여 커피 한 잔 내릴 무렵 천의 얼굴을 가진 하늘에서 무자비한 구름이 창궐했다. 꼭 들러야 되는데 늘 지나쳐 왔던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에 기필코 오겠다는 다짐으로 도착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휴관이라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고구려란 이름에도 흥분되는 걸 보면 한민족의 숨겨진 기백과 한이 이 나라에 서려 있고, 화려한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 시간은 영원히 이 땅과 가슴속에 남을 거다. 코로나19와 피서철로 인해 국내 여행객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관심의 뒷전에 밀린 곳은 어쩌다 들리는 발자국 소리조차 굉음으로 들렸다. 코로나19로 임시휴관이라 아쉽지만 어차피 충주는 만만한 거리에 자주 오는 여행지라 다음을 기약하..

웅크린 여름, 죽주산성_20200816

자그마한 숲을 지나 한적한 산성 안에 또 다른 녹음이 웅크린 채 잊혀진 시간을 되새긴다. 졸고 있는 시계바늘을 흔들어 깨워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이 바삐 달려가던 해가 서녘으로 기울며, 치열한 여름의 허공을 붉게 적신다. 6년 전 지나던 길에 한 차례 유혹의 눈빛을 보내던 산중 성곽을 그제서야 찾아내곤 시간을 거스르듯 회상의 길을 찾는 동안 바람살이 반가이 맞이한다. 접근이 용이한 산성이라 가벼운 차림에 이내 성문에 접근할 수 있다. 때마침 녹음 사이로 석양이 몸을 숨기기 직전이다. 비교적 아담한 산성 내부는 하나의 공원으로 단장되었다. 성곽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하늘과 만나는 선을 종종 만난다. 산성의 서쪽에 있는 성문으로 진입하여 약속한 듯 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성곽의 오르막길에 오르자 주위..

작지만 단단한 울림, 원더붐2_20200703

여행에서 꼭 챙기는 것 중 하나가 항상 음악을 들려주는 블루투스 스피커다. 허나 1kg에 육박하는 녀석 두 개를 끼고 다니는 고행이 만만찮지만 그럼에도 '소리' 하나 때문에 고행=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알고 시원하게 긁어주는 그 맛이란 게 힘든 것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라면 주저 없이 긁어 주는 맛에 우선적으로 손을 들어줬고, 그렇게 사용한 메가붐은 5년이 넘는 시점이 되어 이제는 카메라와 더해진 백팩의 무게는 기동력을 끌어당기는 질곡과 같아 무게감을 줄이고 그 힘으로 발디딤에 신경 쓰기로 한 뒤 고민 끝에 원더붐으로 갈아탔다. 같은 회사 제품이라 특유의 시원하고 짱짱한 음색 유전자는 있지만 아무래도 타격감이 확연히 줄어드는 고로 무게와 타협하며 귀가 익숙해지길 기대하는 수밖에. 6년 ..

적막의 비가 내리는 금성산성_20200624

아침에 간헐적으로 내리던 빗줄기가 정오를 지날 무렵부터 굵어져 금성산성으로 가는 길 위에 작은 실개울을 만들었다. 전날과 같은 길을 답습한 이유는 내리는 비로 인해 텅 빈 금성산성에서 바라본 풍경이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충용문에서 만난 굶주린 어미 고양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교적 화창한 담양은 가지런히 정렬된 새침한 느낌이라면 비 오는 날엔 슬픈 곡조를 목 놓아 부르는 망부석 같은 느낌이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빗소리는 상당히 정제되어 풍경과 달리 고요했고, 아무도 찾지 않은 산성은 희로애락을 극도로 배제하며 차분한 모습은 잃지 않는다. 어디론가 서서히 흘러가는 물안개는 지상에서 남은 슬픔을 모두 껴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도, 안개도 ..

성숙한 강변길, 관방제림_20200623

해가 지고 인공으로 조성된 불빛이 억제된 야망을 뚫듯 기어 나올 무렵 어느새 관방제림에 섞여 있다. 인공으로 조성된 활엽수림이지만 마을에 한 그루 정도 있을 법한 멋진 나무가 관방제림에선 구성원 중 하나 정도. 무심히 밤 산책을 즐기는 담양 사람들과 달리 강변을 따라 늘어선 숲길 나무는 손끝에 묘한 쾌감을 두드렸다. 평범하게 자라는 나무가 인고의 역사를 거쳐 범상한 모습으로 바뀌며, 수동적인 생명의 거부할 수 없는 상처는 훗날 활자를 새기듯 시련을 거친 인내의 상징이 되고, 얕은 의지를 한탄하는 생명의 스승이 되어 버렸다. 메타세쿼이아길이 자로 잰 듯 오차 없이 정갈한 가공으로 걷는 동안 절도의 세련미를 배웠다면 관방제림 길은 아무렇게나 뿌리를 내려 도저히 가공이 불가능하였음에도 전체적인 그들만의 규율 ..

시간의 자취, 담양 메타세쿼이아길_20200623

걷다 걷다 다리가 지친 들 멈출 수 있을까? 잠시 멈춘 사이 길 위에 서린 아름다운 시간들이 흩어질까 두려워 사뿐한 발걸음을 늦추더라도 멈출 순 없다. 가을만큼은 아니지만 여름에 걷는 이 길도 막연히 걷다 가끔 뒤돌아 보게 된다. 가슴에서 미어터지는 아름다운 추억에 저미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이 끝나는 아쉬움에 비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길이 참 부럽다. 많은 이야기들을 벅찬 내색 없이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 공장, 서플라이_20200623

어떤 이에겐 추억의 향수가, 또 다른 어떤 이에겐 이색적인 체험일 수 있는 공장 카페는 근래 들어 꽤나 많이 탄생했고, 건물 특성상 너른 규모에 높은 천장을 무기로 기존 카페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어필한다. 테이블과 체어도 과거 공장의 분위기에 일조할 수 있도록 낡고 조악한 것들을 활용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잠재된 엔틱을 극대화시켰다. 커피맛은 그저 그렇더라도 감성에 대한 투자라면 후회하지 않는다. 지인과 저녁 식사 후 한눈에 들어온 공장형 카페로 간판도 엔틱하다. 모든 소품들은 하나 같이 재탄생하며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의자는 어디서 구했을까? 이런 형태의 카페에 발길이 붙잡히면 기어이 꼭 앉아봐야 된다. 출입문은 아니지만 카페 외관에서 4번 타자 격이다. 내부는 공장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