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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의 세계, 금성산성_20200623

이번 담양 여행의 목적은 국내 최고의 인공 활엽수림인 관방제림과 강천산과 이어진 산자락 끝에 담양 일대를 굽이 보는 금성산성. 소쇄원, 메타세쿼이아길, 죽녹원은 워낙 유명 인싸인데다 특히나 소쇄원은 광주와 화순 사이에 끼어 있어 거리가 멀고 3년 전에 다녀온 터라 이번 여행 동선에선 고려하지 않았다. 지인과 저녁 식사 약속으로 시간이 촉박하여 금성산성 초입 보국문과 충용문까지 여행하기로 한다.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백팩 하나 짊어진 채 금성산성으로 향하면 산성 탐방 안내도가 나와 대략적인 잣대가 된다. 산길치곤 완만하고 너른 길이라 걷기 알맞다. 거기에 더해 이런 대숲과 나무 터널이 있고, 걷는 동안 숲을 쓸어 올리는 바람 소리는 곁들여진 음악과 같다. 나비 하나 나풀거리며 주위를 맴돈다. 20..

사람 흔적이 떠난 강천산 탐방로_20200623

담양에서 순창과 경계를 이루는 강천산 탐방길에 들어서자 마치 산속 깊은 오지에 온 착각에 빠진다. 아름다운 가을 모습을 두고 여름이 엄습한 강천산은 그야말로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었다. 물론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강천산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지만, 위성 지도만 챙긴 내 과오라 큰 깨달음을 챙긴 것도 여행에서 즉흥적으로 짜여진 각본이라 하겠다. 인적이 전혀 없는 용광로 같은 산중에도 내가 무심히 잊고 있던 여름 생명들이 엘도라도를 만들어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지극히 평이한 풍경이지만, 각별한 풍경이 되어 버린 서울에서 하나둘 사라져 버린 생명을 망각하며 점점 무심해져 간다. 길가에 기이한 돌탑이랄까? 담양에서 순창에 진입하여 강천산 탐방로를 향해 임도를 가던 중 이런 형상의..

영혼의 우산, 느티나무_20200616

촌의 농번기엔 잠시 쉴 틈이 없고, 휴식은 사치로 여긴단다. 양파를 수확하고 이내 모심기에 분주한 들판. 신록과 땀방울이 모여 들판은 풍성해지고, 밥상은 화려해진다. 편집이 귀찮기도 하고, 편집하지 않아도 빛은 잠자고 있던 고유 색감에 싹을 틔운 뒤 적절한 추수를 한다. 몇 년 전 공중파를 타고 유명세의 반열에 오른 느티나무는 타는 듯한 대낮에 농심의 그루터기와도 같은 존재다. 또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멀찍이 차를 세우고 걸어와 느긋하게 자리를 잡아 카메라 시뮬레이션 모드를 바꿔가며 사진에 담는다. 자리를 바꿔서 몇 장 담은 뒤 나무 그늘 아래서 쉴 때 품앗이로 일하시던 어른 한 분이 옆에서 쉬신다. 어디 사시는지 말씀을 묻자 성주에서 오셨다며, 마당에서 키운 개복숭을 건네신다. 한 입 ..

낭만의 태동, 의동마을 은행나무길_20200616

가을이면 소위 말하는 낭만을 찾아 전국은 역동한다. 은행나무 심연의 나뭇결과 함께 완연한 노란빛이 더해져 특유의 성숙함이 극에 달할 때 외면은 관심으로 거듭나고, 그 나무 아래서 낭만은 빅뱅 하게 된다. 칼을 뽑은 김에 무를 싹뚝해 버린다고, 거창을 찾은 김에 온천하고 적막 속에서 조금씩 태동 중인 낭만을 미리 맛본다. 물론 가을에 비할 바 못되지만 길을 가득 채운 인파보다 차라리 황량함이 낫다. 외면과 관심은 손바닥 뒤집기 같다. 나름 녹음 짙은 이 길도 운치 있구먼. 영글어 가는 사과. 나른한 오후의 나른한 풍경.

우뚝선 한순간, 오도산_20200615

칠성대에 이어 황매산 은하수를 기대했지만 불발의 아쉬움으로 찾아간 오도산은 처음이 아니었다. 여기 또한 앞서 들렀던 칠성대처럼 사방에 시야가 트여 천리안의 시원스런 시야를 봉인할 수 있었는데 예사롭게 부는 바람 조차 예사내기가 아닌 건 인간의 감정이 덧씌울 수 있는 최고의마법 중 하나다. 미세 먼지로 인하여, 쨍한 햇살로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도 사실은 투정일 뿐, 여행은 내가 원하는 퍼즐처럼 일기와 만족을 모두 낚을 수 없지만, 로또처럼 기대감에 감성의 환각을챙길 수 있다. 다만 로또와 차이점은 결과가 허무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과 만족에 몸서리 치며 추억이 풍성해지는 것과의 차이랄까? 앞서 들렀던 칠성대와 이곳 오도산의 공통점은 해발 고도 1,100m를 살짝 상회한다는 것과 사방이 트여..

작은 절경과 호수를 질주하다, 운일암반일암과 용담호_20200615

운장산 칠성대를 벗어나 용담호로 가는 길목에서 힘찬 물소리에 이끌려 잠시 쉬어간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길을 따라가던 중 불영계곡을 축소한 듯한 작은 계곡에 작은 팔각정을 만났고, 그 자리에 서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여울 소리에 남은 사념을 풀어헤친다. 검룡소에서 처럼 일체 소음이 배제된 흐르는 물소리에도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도덕정에 잠시 멈춰서 바위가 연이은 계곡의 비경과 물소리를 감상한다. 같은 쉼표라 할지라도 이왕이면 선이 굵은 점을 찍을 수 있었다. 팔각정은 잠시 오르막으로 소소한 높이에서 굽이치는 물살과 소리를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다.

멋진 산행과 설레는 경험, 칠성대_20200615

사방이 볼거리로 가득한 운장산 서봉인 칠성대는 자고로 혼탁해진 시야와 가슴을 틔우기 안성맞춤이다. 무진장이란 말처럼 무주, 진안, 장수 트리오가 한결 같이 빼어난 백두대간에 기대어 절경도 품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일대 젖줄이 용솟음치는 곳이기도 하다. 계획했던 대로 무주는 작년에, 진안은 올해 그 땅을 밟으며, 먼 길을 달려온 수고로움을 멋진 보람으로 승화시켜 주는 곳, 그래서 차곡히 쌓은 기대가 꽃망울처럼 만개하여 숲의 향그로움처럼 뿌듯한 내음이 온몸을 전율시킨다. 칼끝 같은 아찔한 능선길이지만 우거진 나무숲이 두려움을 마취시키고, 막연히 뻗는 후회의 유혹을 떨칠 수 있도록 숲의 틈바구니 사이 절경은 목적지까지 동행해준 버팀목이다. 이쯤의 노력으로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왜 그간 결단의 주저함에 ..

산 아래 작은 바다, 대아저수지_20200615

당초 흐릴 거란 예상과 달리 화창한 날씨는 여행자의 길에 동반자와 같다. 복잡다단한 호수길이 인도해 준 깊은 세상은 문명의 잡념을 고스란히 잊게 해 줘 중력의 위압감은 어느새 기대에 희열의 공기가 부풀어 무중력 공간 마냥 한층 발걸음이 가볍다. 이따금 만나는 거친 물소리조차 안도의 응원으로 속삭이는 칠성대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계절의 아지랑이가 설렘을 간지럽힌다. 또한 올 초 바다와 만나는 만경강 하구를 찾았던 감회의 힘찬 도약이 바로 이 언저리였다는 사실에 추억이 가진 힘을 아로새긴다. 근원은 알 수 없지만 산이 보듬어 준 덕분일지 모른다. 산은 많은 생명을 이어주는 강 또한 묵묵히 품어준다. 지나던 길에 음수교로 빠져 방류하는 광경을 감상한다. 물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한껏 떨어져 있음에도 온몸으..

초여름 녹음도 차분한 고산 휴양림_20200614

6월이 지나기 전에 다짐했던 운장산 칠성대는 대둔산의 유명세에 살짝 묻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위에서의 절경은 비교 불가다. 칠성대를 가기 위해 잠시 쉬어 가는 길목으로 선택한 숙소에서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오후 해 질 녘 적막한 숲길을 따라 걷는다. 전날 내린 빗방울이 모여 잔뜩 불어난 여울의 힘찬 속삭임, 그에 더해 무거운 구름이 걷히는 대기를 활보하는 새들의 지저귐이 문명의 사념을 잊게 만든다. 여름의 텁텁한 공기는 어디를 가나 계절의 촉수를 벗어날 수 없지만, 서울과 달리 코끝을 어루만지는 숲의 싱그러움은 수 만 가지 언어로는 통제되지 않는 번뜩이는 감각이 있다. 여행의 첫날,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만 그 길섶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그립다. 길가에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사는..

냥이_20200608

가끔 가족들이 잠이 들 때, 잠 못 이루는 한 녀석이 있었으니... 잠 자기 전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을 때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면 십중팔구 내 방에서 맥 앞 좌식의자에 앉아 나를 맞이한다. 장난 삼아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망부석처럼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하는 수 없이 녀석을 스담스담해 주며 속마음에 있던 애정의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주면 어김없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노래로 화답한다. 냐아~옹~ 방으로 들어와 앉으면 이런 꿀 떨어지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움직여도 시선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이렇게 잠시 졸다가도... 움직이면 "깐딱 졸았다옹~" 이런 눈빛으로 다시 초롱초롱해진다. 결국은 녀석을 무릎 위로 올려 함께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