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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정취에 취한 들판, 여주_20200607

여주 벌판을 뒤덮은 계절의 정취를 보면 봄과 확연히 다른 여름이 보인다. 묘하게도 난감할 것만 같은 계절은 추억을 남기며, 붙잡고 싶은 미련은 떨칠 수 없는데 앞선 편견으로 나래도 제대로 펼치지 않은 계절에 대해 가혹한 질곡을 씌워 버린다. 후회에 길들여지기 싫어 무심한 일상도 감사하려는 습관은 절실하다. 길들여진 습관을 탈피하기 힘들어 그 위에 호연한 습관을 덧씌울 수밖에. 단조롭지 않고 세월의 굴곡 마냥 들쑥날쑥한 벌판에 한발 앞서 여름이 자리 잡았다. 석양을 등진 흔한 마을길에, 흔한 마을을 지키는 각별한 나무. 석양이 뉘엿뉘엿 서녘으로 힘겹게 넘어간다. 여름의 햇살이라 하늘과 세상 모두를 태울 기세다. 고추 모종이 결실의 꿈을 품고 무럭무럭 자란다. 감자꽃이 뾰로통 피어 올 한 해 거듭 나기가 쉽..

냥이_20200529

똥꼬발랄함과 밝은 모습에 애교까지 섞인 녀석을 보면 아이 같은데 가끔 사춘기를 지난 청년 같을 때가 있다. 한참 가족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껴 녀석을 보면 어김없이 눈인사를 건네며 늠름한 모습을 보인다. 냥이는 하루 16시간 이상 잔다고? 그래서 화사한 대낮의 봄햇살 아래 이렇게 잠든 모습을 보면 나 또한 나른해진다. 베란다엔 봄의 축제가, 들판엔 계절의 여왕이 납신다. 걷는 동안 쉼 없이 봄의 행복과 고마움을 읽을 수 있지만 이제 여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날 채비를 끝냈다. 20년의 봄에게 감사와 더불어 작별을 고한다.

냥이_20200522

여주에서 돌아온 시각은 이미 자정은 넘었다. 한동안 무릎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다가와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새근새근 잠든 냥이. 단잠을 방해하기 싫어하고 있던 모든 걸 놓고 덩달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컴 앞에 앉아 정신줄을 팽개친 나도 건강을 위해 쉼표가 필요했고, 덕분에 침침 하던 눈과 머리를 식힌다. 꽤나 오래 동안 앉아 있던 내게 이 녀석이 휴식을 취하란다. 근데 네가 더 편해 보이는 건 뭐지? 이렇게 보면 눈을 떠 있을 거 같지만. 옆모습을 보면 한잠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지나 아예 벌러덩 드러 누었다. 이튿날, 난 일어나고 녀석은 다시 제 쿠션에서 한잠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렇게 배시시 눈을 뜨는가 싶었는데 자세를 바꿔 다시 잠든다. 어느 정도 잠을 잔 건지 일어나 몸단장 중. 기지..

적막과 평온의 공존, 여주와 흥원창_20200521

오랜만에 찾은 여주, 한강은 언제나처럼 유유하고, 고즈넉한 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차분했다. 어디선가 태웠던 낙엽이 대기 중에 향취로 남아 밟은 길 위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 기분을 이어가느라 차분히 걷는다. 남한강 두물머리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시간이 잠시 멈춰 선 시간으로 뺨을 적시던 날, 행님께선 모처럼 찾은 나를 위해 서툴지만 토닥토닥 저녁을 준비하시고, 뒤이어 들판에서 자라던 온갖 싱그러운 야채를 한가득 식탁 위에 쌓아 올렸다. 풍성한 인심은 그 어떤 양념보다 맛깔스러워 가끔 잡초가 끼어 있더라도 그건 저녁 입맛을 응원해 주는 봄내음이다. 온전한 하늘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둘러 매고 빛이 없는 들판으로 나갔으나 막상 찍고 보니 구름 일변도다. 오순도순 정성이 빚어낸 행님의 보금자리. ..

새벽 여명_20200314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 초까지 얼마만인지 모를 만큼 대기가 맑아 아침 여명의 빛결이 무척이나 곱디고웠다. 심연의 바다가 놀랄세라 오렌지 물감을 살포시 풀어 잔잔히 어우러지는 어울림인 양 빛깔의 경계를 규정 지을 수 없었다. 무보정 자체로도 가슴 벅찬 하루의 시작을 실감케 한다. 청명한 하늘을 보는 게 얼마만일까? 파랑새는 곁에 있었던 걸 뒤늦게 알아차린 것처럼 일상이었던 청명한 하늘이 이제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