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340

일상_20200629

설렘을 가지고 마중을 나오는 냥이들. 건강한 모습을 안심하고 돌아가는 길에 부쩍 여름 냄새가 짙다. 특히나 산모기가 많은 자리라 적어도 한 번 헌혈을 하지만 헌혈증을 받은 적 없고, 알흠알흠 밥을 가지고 산책 삼아 녀석들을 만나지만 고맙단 말을 들은 적 없다. 그럼에도 녀석들의 눈빛으로, 가슴 속 뿌듯함으로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해 노력했다. 근래와 달리 많은 녀석들이 냥마을을 지키고 있고, 공동 육아를 짊어진 치즈뚱이도 이제는 가까이 허락해준다. 물론 더 가까이 가면 겁나 도망 가지만. 치즈 얼룩이는 젖살이 빠지고 성묘 티가 난다. 검정 얼룩이와 함께 마을 터줏대감이자 애교쟁이다. 늘 사이좋게 줍줍~ 검정 얼룩이는 늘 다리 사이와 몸을 비비며 적극적으로 반겨준다. 치즈 얼룩이가 원래 가장 먼저 입을 대는..

냥이_20200629

무사히 여행을 다녀온 가족에게 껌딱지가 되기. 댕이는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면 냥이는 소리 소문 없이 다가서 표현한다. 무얼 바라는 것도, 달라질 것도 크게 없지만 편하고 정겨운 가족은 잠시 떨어질 때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냥이식의 솔직한 표현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과도할 때 야기되는 피로감이 없다. 냥이를 알고 나서 어쩌면 그 매력을 뒤늦게 알아챈다. 모든 가족들을 확인한 뒤에야 녀석은 더 이상 두리번거리지 않고 원래대로 벌러덩 있는다.

큰 조직에서 독립한 친구의 작은 공간, 인비또_20200628

유명 호텔, 리조트 체인에서 근무한 친구 녀석이 혼자 독립하여 구의동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 식당을 포함, 오프라인 매장은 거의 초토화된 마당에 조금 무모하다 여겼지만 자신의 미래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을 터, 그래도 초를 뿌릴 순 없고 다른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내가 넘무넘무 좋아하는 파스타에 버섯이 송골송골 올려져 있는 피자,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스원해서 골 때리는 맥주까지. 파스타로 배를 불린 게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로 코로나19를 피해 식당에서 갓 조리한 요리가 얼마나 맛난 지 전부 억눌러 왔던 식욕을 숨기지 않았고, 그 많던 음식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게다가 친구들 얼굴도 무척 오랜만에 보기도 했다. 밤이 늦으면 대중교통 배차 문제로 불편해 좀 일..

냥이_20200628

스크래쳐가 꽤 너덜너덜해졌는데 그래도 녀석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잠도 청하고 스크래칭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위치가 거실이라 공간 대부분을 관찰할 수 있어 집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수월한 곳이다. 벌써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갑자기 몸을 발라당 뒤집어 익살스럽게 보인다. 밤이 되어 다른 가족들은 여행을 떠나고 홀로 지낸 휴일, 비몽사몽간에 잠자리가 묘해서 눈을 뜨자 다리 사이에 녀석이 곯아떨어져 미동도 않는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지 녀석은 눈을 가리고 잔다.

싼티 나고 조악한 키작 선풍기_20200625

오랜 직장 생활을 접고 구의동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마련한 친구의 선물로 쥐콩만한 선풍기를 사서 룰루랄라 가는 날. 다른 친구들도 제시간에 찾아와 허기진 배를 달랜다. 작은 크기에 비해 소음은 강한 고주파음처럼 무시할 수준이 아닌데 생긴 모양새로 봐선 책상 아래 발치에 두고 사용하면 좋을 거 같다. 친구 녀석도 주방에서 발치나 허리 높이 정도에 두고 사용하면 알맞긴 하나 막상 선풍기를 꺼내서 틀자 생각보다 바람도 약해서 다음부턴 이런 중국산 싼티 나는 제품은 선물 용도에 적합하지 않겠다. 저렴한 맛에, 서브용으로 발치에 두면 딱 맞을 녀석이다.

적막의 비가 내리는 금성산성_20200624

아침에 간헐적으로 내리던 빗줄기가 정오를 지날 무렵부터 굵어져 금성산성으로 가는 길 위에 작은 실개울을 만들었다. 전날과 같은 길을 답습한 이유는 내리는 비로 인해 텅 빈 금성산성에서 바라본 풍경이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충용문에서 만난 굶주린 어미 고양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교적 화창한 담양은 가지런히 정렬된 새침한 느낌이라면 비 오는 날엔 슬픈 곡조를 목 놓아 부르는 망부석 같은 느낌이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빗소리는 상당히 정제되어 풍경과 달리 고요했고, 아무도 찾지 않은 산성은 희로애락을 극도로 배제하며 차분한 모습은 잃지 않는다. 어디론가 서서히 흘러가는 물안개는 지상에서 남은 슬픔을 모두 껴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도, 안개도 ..

깔끔한 멸치육수, 진우네집 국수_20200624

흡사 타운하우스를 닮은 모습, 비교적 들어선지 오래된 축에 비하면 관리는 잘 되어 있지만, 어떻게 해서도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는 있다. 그래도 메타세쿼이아길과 인척이라는 점. 근래 여행 중 어떤 곳과 비교해도 가벼운 부담에 비해 공간이 너른 점. 일대가 펜션 단지라 이질적인 감정 이입에 소모하지 않아도 외형적인 특별함이 부여된다는 점.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밀집하는 공공장소, 특히 맛집 탐방은 주변을 서성이며 이용객이 적은 지 눈치 아닌 눈치를 봤던 걸 감안했을 경우 여기는 마치 내집처럼 조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가 가정적이다. 초여름이라 담양에 있던 시간 동안 여행객이 적어 심적 부담이 없던 것도 한몫했다. 타운하우스 정원 같다. 다만 앞에 저 까칠한 표정의 동상 덕분으로 밤에 ..

성숙한 강변길, 관방제림_20200623

해가 지고 인공으로 조성된 불빛이 억제된 야망을 뚫듯 기어 나올 무렵 어느새 관방제림에 섞여 있다. 인공으로 조성된 활엽수림이지만 마을에 한 그루 정도 있을 법한 멋진 나무가 관방제림에선 구성원 중 하나 정도. 무심히 밤 산책을 즐기는 담양 사람들과 달리 강변을 따라 늘어선 숲길 나무는 손끝에 묘한 쾌감을 두드렸다. 평범하게 자라는 나무가 인고의 역사를 거쳐 범상한 모습으로 바뀌며, 수동적인 생명의 거부할 수 없는 상처는 훗날 활자를 새기듯 시련을 거친 인내의 상징이 되고, 얕은 의지를 한탄하는 생명의 스승이 되어 버렸다. 메타세쿼이아길이 자로 잰 듯 오차 없이 정갈한 가공으로 걷는 동안 절도의 세련미를 배웠다면 관방제림 길은 아무렇게나 뿌리를 내려 도저히 가공이 불가능하였음에도 전체적인 그들만의 규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