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340

시간의 자취, 담양 메타세쿼이아길_20200623

걷다 걷다 다리가 지친 들 멈출 수 있을까? 잠시 멈춘 사이 길 위에 서린 아름다운 시간들이 흩어질까 두려워 사뿐한 발걸음을 늦추더라도 멈출 순 없다. 가을만큼은 아니지만 여름에 걷는 이 길도 막연히 걷다 가끔 뒤돌아 보게 된다. 가슴에서 미어터지는 아름다운 추억에 저미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이 끝나는 아쉬움에 비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길이 참 부럽다. 많은 이야기들을 벅찬 내색 없이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 공장, 서플라이_20200623

어떤 이에겐 추억의 향수가, 또 다른 어떤 이에겐 이색적인 체험일 수 있는 공장 카페는 근래 들어 꽤나 많이 탄생했고, 건물 특성상 너른 규모에 높은 천장을 무기로 기존 카페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어필한다. 테이블과 체어도 과거 공장의 분위기에 일조할 수 있도록 낡고 조악한 것들을 활용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잠재된 엔틱을 극대화시켰다. 커피맛은 그저 그렇더라도 감성에 대한 투자라면 후회하지 않는다. 지인과 저녁 식사 후 한눈에 들어온 공장형 카페로 간판도 엔틱하다. 모든 소품들은 하나 같이 재탄생하며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의자는 어디서 구했을까? 이런 형태의 카페에 발길이 붙잡히면 기어이 꼭 앉아봐야 된다. 출입문은 아니지만 카페 외관에서 4번 타자 격이다. 내부는 공장 분..

여유의 세계, 금성산성_20200623

이번 담양 여행의 목적은 국내 최고의 인공 활엽수림인 관방제림과 강천산과 이어진 산자락 끝에 담양 일대를 굽이 보는 금성산성. 소쇄원, 메타세쿼이아길, 죽녹원은 워낙 유명 인싸인데다 특히나 소쇄원은 광주와 화순 사이에 끼어 있어 거리가 멀고 3년 전에 다녀온 터라 이번 여행 동선에선 고려하지 않았다. 지인과 저녁 식사 약속으로 시간이 촉박하여 금성산성 초입 보국문과 충용문까지 여행하기로 한다.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백팩 하나 짊어진 채 금성산성으로 향하면 산성 탐방 안내도가 나와 대략적인 잣대가 된다. 산길치곤 완만하고 너른 길이라 걷기 알맞다. 거기에 더해 이런 대숲과 나무 터널이 있고, 걷는 동안 숲을 쓸어 올리는 바람 소리는 곁들여진 음악과 같다. 나비 하나 나풀거리며 주위를 맴돈다. 20..

사람 흔적이 떠난 강천산 탐방로_20200623

담양에서 순창과 경계를 이루는 강천산 탐방길에 들어서자 마치 산속 깊은 오지에 온 착각에 빠진다. 아름다운 가을 모습을 두고 여름이 엄습한 강천산은 그야말로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었다. 물론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강천산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지만, 위성 지도만 챙긴 내 과오라 큰 깨달음을 챙긴 것도 여행에서 즉흥적으로 짜여진 각본이라 하겠다. 인적이 전혀 없는 용광로 같은 산중에도 내가 무심히 잊고 있던 여름 생명들이 엘도라도를 만들어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지극히 평이한 풍경이지만, 각별한 풍경이 되어 버린 서울에서 하나둘 사라져 버린 생명을 망각하며 점점 무심해져 간다. 길가에 기이한 돌탑이랄까? 담양에서 순창에 진입하여 강천산 탐방로를 향해 임도를 가던 중 이런 형상의..

냥이_20200620

다른 가족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낯가림 없이 천연덕스럽게 거실 한가운데서 방바닥 헤엄을 친다. 놀아 주고 스담해 주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꼬리 살랑일 테니 날 방치해 두지 말아 다옹~ 덕분에 한아름 선물을 받고, 만족하는 눈치다. 그래도 같이 사는 가족을 알아보고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댕이 같은 냥이라 부러운 눈길은 뽀나스~ 소파에서 늘어지게 자던 녀석이 인기척을 느끼고 부시시 일어난다. 눈치 한 번 보지 않고 거실에서 텃세를 부린다. 스크래쳐로 자리를 옮겨 티비를 봤다 가족들을 봤다 혼자 바쁘다. 티비보다 사람 구경이 재미있는지 한 사람씩 찬찬히 훑어보며 눈을 맞힌다. 이거 왠지 기분 좋은 미소 같다. 늘어지게 하품. 다시 스크래쳐에서 잠에 녹아든다. 내 껌딱지가 되어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결국 발치에 자..

일상_20200620

주말 이른 아침부터 푹푹 찐다. 8시도 되지 않은 아침임에도 대낮 못지않게 환하고 햇살은 따갑다. 냥마을이 궁금해 밥을 좀 챙겨 찾았지만 대부분 녀석들은 자리에 없고, 그나마 발길을 돌릴 무렵 나타난 두 녀석이 모처럼 본 궁금증에 갈증 났는지 의외로 반가움을 표한다. 늘 조금 남을 정도로 밥을 주지만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날도 있다. 얼룩 냥이는 밥이 담긴 위생팩을 푸는 사이에도 정신없이 앞뒤를 오가며, 자기 몸을 비벼 대는데 손을 뻗어 머리를 스담 하면 자기 뺨도 설거지하듯 비벼 댄다. 이래서 미세하게나마 정을 쌓는다. 이 녀석은 부쩍 몸으로 반가움을 표한다. 쉴 새 없이 앞뒤를 오가며 몸을 부벼대는데 나지막이 소리를 지른다. 경계심 많은 아이지만 내가 오면 달려온다. 근데 안 보는 며칠 사이 많이 ..

냥이_20200617

여행을 다녀오느라 며칠 자리를 비운 사이 반가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냥이가 결국 내 껌딱지가 되었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에 대한 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었고, 특히 긴 시간 지나 집으로 돌아오면 계속해서 꽁무니를 쫓아다닌다. 그러다 취침 시간이 가까워지면 찰싹 달라붙어 그 어느 접착제보다 견고하게 붙어 버린다. 눈앞에서 집사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아 새근 졸고 있다. 발치에 달라붙어 걷기를 멈추면 그 자리에 망부석이 될 기세다. 움직이지 않아 졸고 있나 싶어 몸을 숙이면 초롱초롱 눈망울과 마주친다. 거나하게 하품 한 번 때리고, 입을 다무는 찰나 야수의 이빨! 옆에 붙어 앉아 있어 가족이 손을 내밀면 고민한다. 줘야 되냥, 말아야 되냥? 잠시 망설이다 응한다. 잠시만 줄 고양~ 반가..

영혼의 우산, 느티나무_20200616

촌의 농번기엔 잠시 쉴 틈이 없고, 휴식은 사치로 여긴단다. 양파를 수확하고 이내 모심기에 분주한 들판. 신록과 땀방울이 모여 들판은 풍성해지고, 밥상은 화려해진다. 편집이 귀찮기도 하고, 편집하지 않아도 빛은 잠자고 있던 고유 색감에 싹을 틔운 뒤 적절한 추수를 한다. 몇 년 전 공중파를 타고 유명세의 반열에 오른 느티나무는 타는 듯한 대낮에 농심의 그루터기와도 같은 존재다. 또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멀찍이 차를 세우고 걸어와 느긋하게 자리를 잡아 카메라 시뮬레이션 모드를 바꿔가며 사진에 담는다. 자리를 바꿔서 몇 장 담은 뒤 나무 그늘 아래서 쉴 때 품앗이로 일하시던 어른 한 분이 옆에서 쉬신다. 어디 사시는지 말씀을 묻자 성주에서 오셨다며, 마당에서 키운 개복숭을 건네신다. 한 입 ..

낭만의 태동, 의동마을 은행나무길_20200616

가을이면 소위 말하는 낭만을 찾아 전국은 역동한다. 은행나무 심연의 나뭇결과 함께 완연한 노란빛이 더해져 특유의 성숙함이 극에 달할 때 외면은 관심으로 거듭나고, 그 나무 아래서 낭만은 빅뱅 하게 된다. 칼을 뽑은 김에 무를 싹뚝해 버린다고, 거창을 찾은 김에 온천하고 적막 속에서 조금씩 태동 중인 낭만을 미리 맛본다. 물론 가을에 비할 바 못되지만 길을 가득 채운 인파보다 차라리 황량함이 낫다. 외면과 관심은 손바닥 뒤집기 같다. 나름 녹음 짙은 이 길도 운치 있구먼. 영글어 가는 사과. 나른한 오후의 나른한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