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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곡선의 편안함, 말티재 휴양림_20220614

크게 휘어진 길이 불편하여 직선에 몸을 맡기는데 어느새 그리워 다시 구부정길을 찾는다. 잠시 돌아가면 늦춰진 속도로 길 가 방긋 핀 꽃내음에 웃을 수 있고, 몸에 닿을 새라 화들짝 피하던 빗방울도 낭만의 강변을 유영하는 반딧불이가 된다. 그 굽이길을 뒤로하고 둥지 흙을 밟자 어느새 작은 굽이길이 뒤따라 함께 뛰어놀자 조른다. 그게 정겨운 길이고, 그게 굽이길이다. 말티재 또는 말티고개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고개로 보은군 장안면 장재리 산 4번지와 38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하단부는 해발 약 270m, 정상부는 해발 약 430m로서 차이가 160m 가량이나 되는 험한 고개다. 속리산에는 오랫동안 존재한 박석 길이 유명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구경 오..

봄의 비바람도 반갑던 하늘자락공원_20220331

산 위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는 전망대는 세찬 비바람도, 집어삼킬 듯 기세 당당한 구름도 천적은 되지 못했다. 옷깃 여미는 추위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늦잠 자는 봄나물을 깨울 수 없는 노릇이라 한 줌 봄소식을 코끝에 챙겨 돌아가며 산 위 우뚝 선 전망대는 작은 위안에 콧노래가 되어준다. 봄소식 가득 품은 빗줄기는 굳이 피하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마치 때가 되면 만나 소주잔 함께 나누는 친구 같아 옷 젖는 걱정보다 그 정겨움은 비할 바 없다. 짧은 시간이라도 좋고, 여유 충만한 시간이라도 좋은, 그래서 산중에 알싸한 봄과 비의 화음에 설레게 떠난다. 산 정상 가까운 곳에 양수발전소가 있고, 그 일대를 공원화 시켜 이렇게 멋진 전망대를 세워 숨겨진 절경을 찾으란다. 싸늘한 봄비에 맞게 기온도 서늘한..

구름도 연모한 수로부인 헌화공원_20210630

수로부인 헌화공원 임원항 뒤편 남화산 정상에 위치한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헌화가'와 '해가' 속 수로부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의 부인이다.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수로부인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돌산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하자 마침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꺾어다가 바치고, 가사를 지어 바친 것이 4구체 향가인 '헌화가'다.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끌고 갔는데,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자 다시 수로부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노래가 신라가요인 '해가'다. 공원에는 이 수로부인 전설을 토대로 한 다양한 조각과 그림 등이 조성돼 있다. 이와 함께 산책로, 데크로드,..

자연의 작품, 도화공원_20210630

도화동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포리에 있는 동산. [건립경위] 2000년 4월 12일 강원도에서 발생하여 26,794㏊의 피해를 입힌 사상 최대의 동해안 산불이 삼척시에서 울진군으로 번져 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민·관·군은 합심하여 22시간에 걸쳐 다음날인 4월 13일 산불을 진화하였다. 이에 군민이 사력을 다해 산불을 진화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울진군에서 피해 지역인 북면 고포리 지역에 도화(道花)인 백일홍을 심어 도화동산을 조성하였다. [변천] 울진군은 국도 7호선 확장·개통으로 새로운 경상북도 관문 지역의 경관을 정비하여 울진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2006년 10월부터 12월 말까지 북면 고포리에 도계지역 정비 사업을 실시하였다. 또한, 강원도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경상북도 이..

반짝이며 슬며시 머문 빗방울_20210615

밤새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둠도 잠든다. 함께 저녁을 먹는 동안 빗소리가 마음껏 들어올 수 있도록 큰 창을 열어 젖혀 고기가 굽히는 소리와 뒤섞인다. 늦은 밤에는 비를 맞으며 스피커에서 기어 나오는 음악을 뒤섞는데 마치 깊은 산중 음악회가 열린 착각이 든다. 심지어 비는 소리만 깨우는 게 아니라 허공에 흩날리는 빛도 깨운다. 아슬하게 비를 피하는 녀석을 잡아서 든든한 자리로 옮기고 녀석 또한 빗소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 흔하던 것들이 그리 귀하게 된 세상을 살며 함께 이 땅, 이 시간에 살아야 될 소중한 생명이다. 빗방울이 맺혀 보석이 되었다. 그저 비일 뿐인데 존귀한 보석에 길들여진 인간이 왜곡하는 장면이겠다. 이튿날 비는 그쳤지만 밤새 내린 비가 여전히 세상에 남아 꿈과 알을 ..

따스한 봄비 내리던 예천_20210327

봄나물 중 하나인 머위를 뜯으러 왔으나 아침부터 기세 좋게 내리는 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접고 돌아오게 되었다. 산중 비를 피할 생각 없이 고스란히 몸을 두드리는 빗방울은 마치 함께 음악을 연주하듯 재즈선율로 피어나 봄이 움트는 골짜기에 진동하며 강인한 잡초처럼 새 생명의 씨앗을 곁 뿌린다. 때마침 지나는 낮은 구름도, 텅 빈 도로를 질주하는 시골 버스도 평온의 품 안에서 흥겨워하는 작은 정취의 조각으로 모여 거대한 평화의 속삭임에 빗방울은 신명 난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민들레는 겨울에도 종종 볼 수 있을 만큼 봄꽃이라 한정 짓기에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어 왔다. 오는 길에 괴산에서 비상식량을 미리 마련, 교촌과 콜라보로 나온 크로켓이라 간장 치킨이 속에 들어있고, 겉은 쌀로 바싹바싹하다. 머..

낡고 썩어버린 낭만, 고한 메이힐즈_20210301

겨울이 봄에게, 추위가 따스함에, 응축된 대지가 푸른 새싹에게 애증과 더불어 그간의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시기. 때마침 내리는 비소리와 기차 경적이 그리운 태백선이 교차하는 풍경과 더불어 묘하게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태백에서 고한으로 넘어오는 길에 해발 1,000m가 넘는 거대한 두문동재를 만난다. 꼬불꼬불 고갯길을 일직선 도로로 닦고, 금대봉 아래 긴 터널을 뚫었다지만 여전히 거대한 고갯길은 일기가 좋은 날에도 숨을 허덕이게 만들 만큼 차량 엔진소리는 꽤 오래 둔탁하다. 그런데 오후 들어 폭설 수준의 눈발이 날리자 가뜩이나 힘겨운 고갯길에 꼬리를 잡아끄는 심술이 동반되었고, 운 좋게 제설차량을 만나 몇 번의 슬립이 있은 후 그나마 수월하게 고갯길을 넘어 무사히 숙소에 다다랐다. 밤새 자욱한 눈발은 ..

정갈한 카페, 태백 투썸_20210301

아침부터 일기예보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비가 내려 서둘러 태백으로 넘어왔건만 고도가 높은 도시라 점차적으로 내리던 비는 동글동글한 얼음 알갱이로 바뀌기 시작했다. 원두, 드립퍼까지 모두 챙겨 왔음에도 아뿔싸! 그라인더를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와서 하는 수 없이 태백에 얼마 전 오픈한 투썸플레이스를 찾아 얼마나 단비 같은지. 투썸 일대에서 황지공원까지가 태백의 핫플레이스라 주차할 곳이 마땅찮은데 때마침 가까운 노상 공영주차장에 차량 한 대가 빠지는 타이밍에 맞춰 주차를 하고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진한 커피향과 함께 아주 깔끔하고 화사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이완되며 텀블러에 커피 한 잔을 담았다. 더불어 오아시스 같은 카페에서 만난 직원들의 친절이 왜캐 고맙던지. 네이버 지도엔 있고, 카카오맵..

문명에 대한 결초보은, 말티재_20210121

어느덧 가을 명소로 자리 잡은 말티재는 문명의 해일에 용케 버틴 공로처럼 불편하게 꼬불꼬불한 고갯길에 묘한 경이로움과 곡선의 안락함이 교차한다. 코로나로 인해 전망대는 굳게 자물쇠가 걸려 있지만 그 모습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가을 명소 답게 이 친숙한 고갯길에 단풍이 어울려 한바탕 춤사위가 벌어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비가 내려 텅빈 고갯길에 서서 힘겹게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구름조차 쉬어갈 만한 멋진 풍경, 결초보은 말티재의 마력이다. 속리산에서 말티재 진입 전 공영 주차장에 차를 두고 하나씩 훑어보는데 입소문에 맞춰 보은에서 공을 들인 흔적이 많다. 지루하게 내리는 빗방울로 카메라는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간소한 차림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간다. 말티재 전망대 카페는 텅 빈 고갯길과 다르게 내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