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원시 호수의 형태, 우포_20201119

우포는 크게 우포, 사지포, 목포, 쪽지벌이 있는데 우선 우포 먼저. 사는 인근에도 큰 저수지가 몇 개 있긴 하나 우포는 4개의 호수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늪지대이자 자연 생태지역이나 진배없었다. 산과 달리 주변을 돌며 산책하기 좋은 평탄한 길인데다 수도권과 달리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인가도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전체를 본다면 마치 테마별 분류한 것처럼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다. 4개의 호수 중 가장 큰 우포늪을 먼저 밟으며 걷기 좋은 대대제방으로 향했다. 이미 떠난 가을의 흔적만 남아 퍼붓는 비와 세찬 바람이 더해 을씨년스러웠다. 이따금 우두커니 서 있는 버드나무의 노랑이 바람결에 펄럭이며 바람을 뒤따르려 하지만 매몰찬 바람은 멀찍이 남겨 두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 버렸고, 호수 한 켠에 빼곡히 ..

멋진 숙박 시설, 우포생태촌_20201118

겨울 낮이 짧긴 해서 가뜩이나 밤이 일찍 젖어드는 시골은 더더욱 암흑 천지가 되어 이른 저녁임에도 한밤 같다. 특히나 우포생태촌을 이용하는 건 우리 뿐이라 일찌감치 진공 상태 마냥 바람에 실려 이따금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렸다. 시골초가를 표본으로 만든 우포생태촌은 창녕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숙박시설로 흔히 애용하는 휴양림 내 휴양관이나 통나무집 개념과 흡사하다. 차이라면 한길과 멀찍이 떨어진 휴양림과 달리 여긴 우포늪 일대와 더불어 인접한 인공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생태촌 바로 뒤편이 마을과 연결된 유일한 도로라 지나가는 차소리는 매우 가깝게 들렸고, 우회적으로 표현하자면 접근성은 킹왕짱이다. 잠자리나라와 생태체험장과 함께 조성된 만큼 얼른 짐을 풀고 우의만 걸친 채 암흑 같은 생태체험장에 접어들었는데 ..

베이스캠프는 담양_20201117

담양을 가면 꼭 들리는 국숫집은 집에서 만사가 귀찮을 때 육수에 사리만 넣어 먹는 초간편 방식이면서 가격은 저렴하다. 영산강변에 많은 국숫집이 즐비하지만 습관처럼 찾는 집, 시골 저녁은 일찍 찾아와 18시 정도에 찾았음에도 손님은 거의 없었고, 코로나 이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거리를 두는 덕분에 몇 안 되는 손님들도 널찍이 거리를 두고 앉아 거기에 동참했다. 오후 들어 지루한 비가 내려 야외 테이블은 앉을 수 없었으나 때마침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다. 이 국숫집에 들리면 요리는 국수와 삶은 계란 뿐, 허나 계란은 꼭 먹어야 된다. 다 같은 계란이겠거니 하지만 여기 계란은 정말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다. 마지막에 서로 웃으면서 대하자는 건 정말 공감. 늦은 밤이 아닌데도 담양은 벌써 한밤 중, 창 너머 ..

짧은 시간의 장벽, 장미산성_20200829

변화무쌍한 날씨답게 이내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을 떨군다. 온몸이 젖은 들 대수롭지 않다 여겼건만 갈피를 잡지 못한 천둥소리에 떠밀리듯 걸었던 길을 되밟는다. 인적이 전혀 없는 길을 따라 평원을 휘몰아치는 남한강 물줄기를 제대로 가슴에 담지 못했는데... 고즈넉한 산사의 길을 따라 그 끝이 궁금했는데... 나처럼 힘겹게 산을 이고지고 올라선 바람의 연주를 채 끝까지 듣지 못했는데... 허공 어딘가에 숨은 번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음에 다시 오라 한다. 다시 오는 건 아깝지 않다만 지금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회가 아쉽다. 자연과 시간은 항상 내 주위에 있건만 미묘한 감각은 제각각이지 않은가. 초행길이라 지도에 표기된 봉학사 바로 아래 주차한 뒤 길을 걸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오를수록 안개가 ..

미호천의 시작, 망이산성_20200822

왜 그리 산성을 찾아다니세요? 근래 들어 종종 받는 질문인데 별 다른 의미 없어요 라고 하면 당연히 안 믿는다. 그렇다고 많은 산성을 오른 건 아닌데 최근 몇몇 사례가 있다 보니 그런 질문을 받는 건 당연지사. 여주 파사산성, 담양 금성산성, 오산 독산성, 안성 죽주산성, 이번에 찾은 음성 망이산성 정도 뿐인데?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산은 힘든데 산성은 상대적으로 큰 힘 들이지 않고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파수가 되려면 높거나 사방이 트인 곳이 제격이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낮으면서도 사방이 트인 곳에 산성을 쌓아 주변 동태를 살피며 때에 따라 침략에 대한 방어를 해야 하는지라 지형이 바뀌지 않는 한 산성에 오르면 주변을 두루 둘러볼 수 있을 뿐..

시간의 침묵, 동탄호수_20200808

줄곧 내릴 것만 같던 비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인 사이 호수 산책로를 걷는다. 호수에 비친 세상 그림자가 휘영청 늘어서 무거운 하늘을 잠시 가리며 근심을 잊으라 한다. 그 울림에 무심히 걷다 어느새 다시 굵어지는 빗줄기가 금새 인적을 증발시키고, 덩달아 초조한 아이처럼 잰걸음으로 비를 피한다. 이렇게 사진이라도 남기길 잘했다. 찰나는 그저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내 인생을 하나씩 엮어 나가는 조각들이라 무심하게 지나는 것들이 내게 간절했던 기회일 수 있다. 올해도 이미 반 이상 뒤로 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바, 그래서 다행이고, 그로 인해 용기를 내고, 그래서 도전한다.

새벽 내음_20200515

가족들의 쉼터가 있는 오지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쉴 새 없이 비가 내린다. 방수 재킷을 걸치고 잠시 빗소리를 감상하다 보면 세상 시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지고, 자칫 무료할 것만 같은 문명이 차단된 곳임에도 화이트 노이즈가 있어야 될 자리에 차분한 대화가 자리 잡는다. 평소 얼마나 다양한 문명의 도구에 시간을 바쳐 왔던가. 이른 새벽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지저귀는 새소리는 건조한 소리에 익숙한 청각에 단비를 뿌려준다. 동 틀 무렵 밤새 지치지 않고 흐르는 여울로 나가 지저귀는 새소리를 곁들인다. 잠에 취한 눈에 비해 머릿속은 놀랍도록 맑아진다. 산골에 맺힌 빗방울은 도시와 달리 더 영롱하고 쨍하다. 아주 미묘하게 약초향이 가미된 영락없는 미나리와 같은 녀석은 산미나리란다. 이미 꽃이 만발하여 먹기..

생태숲의 숨겨진 얼굴에 반하다_20191024

숲속광장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세세히 가을을 낚은 뒤 생태숲 가장 깊이 있는 하늘광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고프로로 계속 촬영을 하며 허술하게 둘러봤던 소나무숲을 천천히 둘러봤다.허나 그 전까지 몰랐던 진면목,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빼곡한 소나무숲이 압권이었다. 하늘광장에 도착하여 비록 가늘어진 빗줄기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는 상태라 비를 피할 수 있는 야생허브원 앞 천막에 타입랩스를 작동시킨 상태로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뽀개고, 광장 일대를 돌아 다녔다.그 전에 그리 많던 전나무가 대부분 잘려져 나간 상태인데 노랗게 변하는 잎이 그대로 인걸 보면 얼마 전에 나무를 쳐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가을에 맞춰 녹색 이파리가 가지에서 부터 샛노랗게 물드는 모습이 전나무숲을 이룬 상태에서 빛결이 고왔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