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대한 사색

낡고 썩어버린 낭만, 고한 메이힐즈_20210301

사려울 2023. 1. 18. 01:44

겨울이 봄에게, 추위가 따스함에, 응축된 대지가 푸른 새싹에게 애증과 더불어 그간의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시기.
때마침 내리는 비소리와 기차 경적이 그리운 태백선이 교차하는 풍경과 더불어 묘하게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태백에서 고한으로 넘어오는 길에 해발 1,000m가 넘는 거대한 두문동재를 만난다.
꼬불꼬불 고갯길을 일직선 도로로 닦고, 금대봉 아래 긴 터널을 뚫었다지만 여전히 거대한 고갯길은 일기가 좋은 날에도 숨을 허덕이게 만들 만큼 차량 엔진소리는 꽤 오래 둔탁하다.
그런데 오후 들어 폭설 수준의 눈발이 날리자 가뜩이나 힘겨운 고갯길에 꼬리를 잡아끄는 심술이 동반되었고, 운 좋게 제설차량을 만나 몇 번의 슬립이 있은 후 그나마 수월하게 고갯길을 넘어 무사히 숙소에 다다랐다.
밤새 자욱한 눈발은 그칠 줄 몰랐지만 차가운 밤바람을 피한 뒤 설야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와 배시시 웃음 짓는다.
그 모습에 좀 전까지 치열했던 눈길 위의 한바탕 소동은 잊고, 나도 모르게 덩달아 평온에 도치된다. 

태백선이 바로 뒷편에 있어 간헐적으로 기차가 굴러가는 소리는 몽환적이다.

이 모습 때문에 이곳을 선택했지만...

이튿날, 다행으로 하염없이 퍼붓던 눈은 그치고, 거짓말처럼 하늘은 화창했다.

숙소 베란다 너머 설경을 보며 자리를 정리한다.
온도 조절이 안되어 실내 온도는 언제나 22도를 나타내는데 이 정도면 제법 서늘하여 난방 요청을 하자 저층의 온돌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에 그냥 거절하고 지냈지만 여긴 좀 아니다 싶다.
난방비를 획기적으로 줄여 마진을 많이 남기는 건 사용자에게 선택권이 없는 희생이다.
어차피 오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객실이 꽤 많은 곳이라 앞으로 나처럼 추위에 떨 사람들이 많다는 뜻 아닌가.
매력적인 설경에 위안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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