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74

나무와 동물숲을 떠나며_20200507

가뜩이나 더위가 성급한 대구에서 하루 차이로 서울과 완연히 다른 계절의 파고를 실감한다. 숲 속에 은둔한 숙소를 이용한 덕에 생각지도 못한 애증의 생명들을 만나던 날, 가련함이 교차하여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거리를 활보하는 공작이 이색적이긴 하다. 오전 느지막이 봇짐을 챙겨 떠나는 길에 숙소에서 마련한 차량을 거절하고,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애니멀밸리를 관통하게 되는데, 고도가 가장 높은 숙소에서 차량이 있는 입구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반대로 지속된 내리막이라 이른 더위에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넉넉한 시간을 핑계 삼아 꼼꼼히 둘러보기로 한다. 프레리독. 사진도 충분히 귀엽지만 실제 녀석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더 귀엽다. 카피바라? 한길을 중심으로 꼬불꼬불 엮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익살맞은 귀염둥..

졸업 이후 첫 재회_20200506

까까머리 학생은 어느새 중년으로, 당시 중년에 접어들었던 스승은 자글한 주름이 얼굴을 뒤덮은 장년으로 시간이 변화시켜 버렸다. 사시는 댁 가까이에서 마주쳤을 때 뒷모습만으로도 그 분임을 알아차렸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스승께서도 금세 익숙한 듯한 눈빛으로 화답하셨다. 스승을 모시고 산세가 빼곡한 숙소 부근 카페로 모셨고, 강이 발치에 보이는 야외 테라스에 나와 그간의 미뤄왔던 이야기 보따리를 각자 풀어놓았다. 점심 조금 지난 시간에 만나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는데 스승의 입담은 여전하셨고, 덕분에 어색할 틈도 없었다. 여기 카페 경관이 꽤 좋았는데 카페 뒤뜰 지나 강이 흐르고 그 강 너머엔 경사가 급한 산이 장벽처럼 둘러쳐져 있어 눈앞이 완전 녹지나 마찬가지였다. 테라스에서 강과 산을 바로 앞에 ..

스승님 만나러 가는 길_20200506

올 때처럼 내려갈 때도 리조트 차량을 이용할 수 있지만 어차피 계속된 내리막길이라 주변도 구경할 겸 해서 도보를 이용하여 주차장까지 가는데 여기가 네이처파크의 애니멀밸리인가 보다. 숙소는 길 따라 가장 깊고 높은 곳에 있는데 네이처파크의 동물원으로 둘러싸인 길이라 여러 동물이 섞여 있었다. 숙소에서 출발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바로 조류 테마존인데 내 눈이 잘못되었나 싶을 정도로 공작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여기 테마가 그런가 보다. 갇혀 있지 않은 것만도 어딘가. 불행히도 고양이가 지내는 곳은 갇혀 있는데 냥이 집사로서 특히나 녀석들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부시시 일어난 러시안블루에게 다가가자 녀석은 별로 의식하지 않고 휴식을 가졌다. 아차차! 스승께 찾아뵙기로 한 시각이 임박해서..

숲 속 호텔의 이색적인 경험_20200505

신천지 코로나 사건으로 홍역을 앓은 대구에 무수히도 많은 시민들이 속절없이 피해를 보고 어느 정도 상처가 치유될 무렵 회사 복지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궁금증을 불러내던 리조트로 여행을 떠난 건 학창 시절 스승을 직접 뵙기 위함이었다. 전날 저녁에 도착하여 리조트 입구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자 이쁜 경차가 내려와 가족을 싣고 미리 예약된 숙소로 이동하는데 산중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겉과 완연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캐리어에 갇혀 있는 보따리를 풀고 홀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 차로 이동할 때와 또 다른 조경과 불빛이 어우러져 산길을 산책함에도 지치기는커녕 쾌속으로 지나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 숙소는 산속의 고급스런 통나무집처럼 나무향이 그윽하고, 한옥 쪽문을 연상시키는 후문이 있어 가족은 마..

부산에서 상행열차를 타고_20200428

부산 형님 초대로 부산 다녀오는 길에 그 많던 기회를 홀라당 날려 버리고, 고작 부산역에서 뒤늦게 몇 장 찍은 사진만 건졌다. 백팩에서 빛을 바라며 기분이 들떠 있었던 카메라가 얼마나 실망했을까? 전날 도착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22시 이후부터 모든 식당과 술집이 문을 닫아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고, 맥주 몇 캔을 사서 숙소에서 술자리를 벌렸는데 왠지 기분이 묘했다. 다음날 그 형님과 점심 식사를 하고 투썸플레이스에서 커피를 마신 뒤 바로 헤어져 부산역으로 곧장 와버린 것도 거의 찰나 같았다. 플랫폼으로 내려가기 전, 부산역 부근을 둘러봤다. SRT를 타기 전,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하루 시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갈 줄이야. 좌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다 멍하니, 그저 떠나며 빠르게 후퇴하..

한적한 시골 마을의 맛집이라?_20191220

추위가 몰려오는 전날 대구에 내려가 지인들과 함께 조촐하게 소주잔을 기울인 뒤 미리 예약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일어나 여주로 가기 전, 문득 해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백종원 3대 천왕 칼국수 집 중 하나인 동곡 손칼국수가 있는 동네로 향했다. 길은 단순하여 거의 헤매지 않았고, 아니다, 신천대로에서 신나게 달리다 서재길로 빠져야 되는데 익숙치 않은 지리라 한 발 앞서 빠지는 바람에 칠곡 방면 매천대교로 빠져 덕분에 팔달교를 한 번 더 건너 다사 산업단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사발 옆에 낀 채 동곡에 도착했다. 역시 백종원 브랜드 파워인지 이곳이 소개된 이후로 동네길을 중심으로 손칼국수집이 몇 개 들어서 칼국수 마을로 재탄생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냄새. 큰 아궁이에 솥가마가 올려져 있고..

문화 찬가, 김광석 거리에서_20190622

이튿날 일어나자 마자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커피 한 사발 들이킨 후 간소한 차림에 카메라를 담은 슬링백을 메고 대구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날아간 곳.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 대기가 맑은 만큼 햇살이 무척이나 따갑다.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구민 운동장역에서 전철을 타고, 대봉교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흐르는 땀이 등줄을 간지럽힌다. 자근하게 곡조를 뽑아내는 멋진 음악가가 '서른 즈음에'를 '마흔 즈음에' 감성으로 읊조린다. 문화의 갬성과 먹거리 갬성이 잘 맞아 떨어지는 곳이 바로 대구 김광석 거리다.김광석을 추모하며, 또한 문화와 낭만을 버무리고, 주변 경관은 덤이다.남녀노소 없이 문화의 열정을 거침 없이 표현하는 사람들과 갓 생산된 따끈한 문화를 소비하기 위해 발품도 마다 않는 사람들.주말이라는 황금..

대구 하면 막창 공식_20190621

퇴근 후 바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 이내 폭우에 가까운 비가 내려 홀라당 젖어 버렸다.숙소로 잡은 라온제나 호텔은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하는 수 없이 줄을 서서 택시를 타고 숙소에 체크인 하자 지인도 호텔 로비에 도착 했단다.뭔 행사가 있는지 일본 중년들이 꽤 많아 지정 객실로 올라 가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만원이라 타지 못한 사람들은 심지어 몇 번을 기다려야 될 정도.다행히 북적대는 층을 넘어 고층으로 배정 받아 객실 내에서 시끌벅적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22시 경에 모두 모여 소주 한 잔 기울이기로 했지만 마땅한 막창 집이 없어 지도 검색의 묘를 발휘, 가깝지만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에 적당한 막창 집이 있어 택시로 이동했다. 이 비쥬얼!대구 하면 막창, 막창 하면 숯불과 특..

작별, 그리고 아버지 성묘_20190306

대구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일어나 오마니 뫼시러 합천으로 향하는데 최악의 미세 먼지 습격이다.대기가 뿌옇게 짓눌려 있는 건 기본이고 마치 자욱한 안개가 끼인 양 텁텁한 공기 내음까지 한 몫 한다.근래 들어 전국적으로 최악의 미세 먼지 농도란다. 합천에 오마니 모시러 가는 길, 지도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카페에 들러 잠시 여유와 따스한 향에 취해 본다. 처음 만난 친지-외가 쪽이라 외삼촌, 외숙모-를 모시고 따스한 진지상 한 번 대접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마실에 만만히 다니시는 백반집으로 가신다.백반도 좋지만 평소 잡숫는 식사보다 좀 특별한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한사코 거기로 가시는 고집을 어찌 꺾을 소냐.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작별 인사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께 뒷모습을 보이며 터벅터벅 걸어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