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196

일상_20190706

바람 좋은 주말, 길섶에 웅크리고 있는 풍경들이 특히나 반가워 집을 나선다. 화사한 햇살, 청명한 대기로 개망초 군락지에 우뚝 솟은 나무, 이 장면이 영화에 나올 법한 수채화 같다. 2016년 처음 보게 된 새끼 고라니는 혹독한 겨울을 지나 초록이 넘쳐나는 먹이의 풍년을 누리고 있다.허나 홀로된 두려움은 반복되는 시련일 거다. 지나는 길에 풍뎅이 같은 게 있어 허리를 숙이자 바글바글하다.바람 좋은 날, 바람 나는 날이여? 오래된 공원의 작은 길을 따라 놓여 있는 벤치가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다. 강한 바람에 넘실대는 건 비단 개망초 뿐만 아니다. 폰카의 발전은 어디까지 일까? 어느새 저녁이 다가와 교회 너머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든다.강한 햇살로 인해 늘어뜨린 그늘이 고맙고, 뜨거운 대지의 열기로 인해..

일상_20190629

늑장을 부리는 장마 대신 보슬한 비가 나풀거리던 주말, 반석산에 올라 둘레길을 따라 비가 지나간 궤적을 되밟아 본다. 개망초 꽃길을 지나. 매력적인 독버섯. 낙엽 무늬 전망 데크에 가까워질 무렵 산딸기 군락지가 있다. 벌써 밤송이가 맺혔다. 벤치로 제2의 생을 보내고 있는 나무. 뭔 사연이 있길래 나무가 이렇게 자랄까?같은 나무일까, 아니면 다른 두 개의 나무가 함께 자라는 걸까? 하늘을 향해 아득하게 가지가 뻗은 나무. 이 꽃은 뭐지?엷은 비에도 벌 하나가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을 정도다. 장미 꽃잎에 피어난 보석 결정체. 산딸기 군락지에 아직 남아 있는 산딸기의 볼그스레한 열매가 탐스럽다.어느 젊은 여성이 수풀 사이에서 뭔가를 조심스레 따먹길래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산딸기를 열심히 줍..

일상_20190609

먼 여행 대신 가까운 산책을 선택한 주말, 청승부르스 같긴 하지만 내가 사는 고장에 대한 애착은 모든 여행의 각별한 시선을 제공해 준다.어중간한 시간, 아니면 괜스리 귀차니즘에 멀리 가기 귀찮거나 움직이는 것 조차 갖은 핑계로 늑장을 부리다 포기하는 경우 느지막이 현관을 차고 꾸역꾸역 돌아다닐 때 적당한 타협점은 방황에 가까운 동네 산책이다.밤꽃향이 지천에 날리며 여름을 선동하는 시기인 만큼 무더위에 비한다면 그래도 이 계절의 이 시기는 크나큰 행복을 머지 않아 깨닫게 해 준다.하긴 전날 무주 다녀온 여독도 남았는데 뭔 거창한 여정이여!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위에 나풀거리는 나비의 춤사위가 쏟아지는 햇살을 잘게 부수어 화사한 파도를 일렁인다.어찌나 사뿐한지 살며시 다가서서 한바탕 흥겨운 춤을 보다 다시 ..

금강을 마주하는 향로산_20190430

작다고 무시했다가 큰 코 다치는 사람 수도 없이 많이 봤다.뭔 썰인고 허니 애시당초 무주 향로산 휴양림에 숙소를 잡으면서 그저 휴식만 취하는 이색적인 그렇고 그런 마실 뒷녘 정도로만 봤다가 도착하자 마자 모두들 연신 탄성을 질렀다.이 정도 삐까한 시설에 비해 옆차기 할 정도의 저렴함, 가뜩이나 겁나 부는 바람에 밤새 오즈의 마법사에서 처럼 공중부양 중인 통나무집이 헤까닥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불안함을 금새 잠재우는 묘한 매력.미리 계획했던 적상산을 다녀온 뒤 찔끔 남은 여유 덕에 향로산에 올랐다 초면에 무시했던 생각에 송구스럽기까지 했다.낮지만 지형적으로 큰 산들이 가진 특징을 아우른 멋진 산이란 걸 알았다면 진작 왔을 터인데.게다가 무주는 생각보다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가족 일원이 임시 둥지를 만들어..

무주에서 구름처럼_20190430

아침에 무주를 거쳐 끝 없을 것만 같은 오르막길을 따라 적상산으로 향했다.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멋진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1천m 이상 고지는 보통 산의 무리들이 뒤섞여 있건만 적상산은 혈혈단신이라 무주 일대와 사방으로 늘어선 첩첩 산능선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한참을 올라 도착한 적상호 옆 적상산휴게소에 다다르자 거대한 물탱크를 살짝 개조한 전망대가 있어 나선형 모양의 계단을 따라 어렵잖게 올라가자 사방으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늘어선 백두대간이 있다.대호산, 거칠봉 방면으로 보자면 거대한 장벽처럼 시선을 막고 있는 백두대간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구름에 쌓인 덕유산 봉우리는 특히나 우뚝 솟아, 가던 구름조차 걸려 버렸다. 적상산으로 올라온 길이 산 언저리를 타고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구름도 쉬어가는 곳, 무주 향로산_20190430

전날 밤, 사위가 구름에 휩싸인 상태로 원두막 같은 숙소의 창을 열자 마치 공중부양한 상태처럼 떠 있는 착각에 빠졌다.두렵거나 무섭지 않은데 묘한 위태로움이 공존하는 극단의 복선이랄까?물론 기우에 불과했다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고, 근래 찾은 여느 숙소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쳐짐은 없었다.게다가 주변 환경의 쾌적함이나 새벽 운치, 적당한 거리를 둔 통나무집이라 아무리 떠들어도 엥간하면 방해 되지 않았던 만큼 아늑의 극치 였다.3일 동안 향로산 휴양림 내에서 머무른다고 할지라도 지루함은 찾아 볼 수 없을 테고, 쉼 없이 지저귀는 새소리와 적당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람소리는 줄곧 듣더라도 이물감이 없었다.물로 무주에 왔으니까 한 자리에 머물 수 없겠지만 작은 산임에도 가파른 비탈과 주..

일상_20180428

봄은 짧은 게 아니라 붙잡고 싶은 미련이 눈을 멀게 해서 그런가 보다.이렇게 동네 곳곳에 봄이 자리를 잡고 있건만 거창한 계절이라는 스스로의 탐욕에 도치되어 먼 곳만 바라 보게 된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고, 휴일 졸음을 떨치면 주위에 봄은 쉽게 누릴 수 있더라.잠시 걷는 다는 게 꽤 시간이 흘러 많은 봄을 낚아 챘다. 적벚꽃이란다.우리가 흔히 봤던 벚꽃이 지면 이 친구가 등장한다는데 곱기도 하다. 진달래꽃이 떨어지면 파란 이파리가 돋아난다. 반석산을 걷던 중 복합문화센터 뒷편의 산언저리가 화사하다. 아파트 울타리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 터널길.여름이 되면 무성한 그늘의 터널이 자란다. 적단풍이 마치 가을에 온 듯한 착각으로 물들인다. 청단풍의 청아한 신록. 넌 뭐지?

일상_20190426

봄의 종말을 고하는 비일까?봄비의 소리가 구슬프다.그럼에도 피부에 살포시 내려 앉아 조잘거리는 비가 반갑다. 단풍색이 젖어 걷고 싶어지는 길. 말라버린 무성한 칡 더미에서 새로운 싹이 꿈틀대며 허공을 향해 팔을 뻗기 시작한다. 한껏 망울을 펴고 싱그러운 포옹이 한창인 봄꽃들.봄의 전령사들이 지난 자리에 같은 궤적을 그리며 솟아난다. 비가 그치고, 서산 마루에 걷히던 구름의 틈바구니로 석양과 노을이 하늘을 뜨겁게 태운다.

숨겨진 아름다움, 영월 상동 가는 길_20190422

만경사를 거쳐 상동으로 가던 중 통과 의례로 거치게 되는 솔고개는 나도 모르게 주차를 하고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겨 천천히 오르게 된다.하루 종일 따가울 만큼 강렬한 햇살이 내리 쬐이며 그에 더해 힘겹게 오르던 솔고개를 넘어 서자 하나의 성취감과 더불어 단조롭던 길을 따라가다 만나는 특이한 풍채에 반해서 마법의 덫에 걸린 양 끌려 가는게 아닐까? 솔고개의 주인공 소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서 면밀하게 살펴보면 세월의 굴곡이 무척이나 많이 패여 있다.한 해가 지나도록 뭐가 그리 달라 졌겠냐마는 자주 올 수 없는 길이라 변화를 찾는게 아닌 존재 과시에 안도한다. 솔고개 너머 단풍산은 여전히 아래를 굽이 살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산신령처럼 이 지역을 다스린다.늘 무고하게, 그리고 앞으로도 둥지처럼 평온하게 지키는 파..

숨겨진 아름다움, 영월 만경사 가는 길_20190422

첫 목적지 망경대산으로 가는 길은 곳곳에 도사리는 봄 물결이 발목을 붙들어 가는 길이 쉽지 않다.분명 몇 년 전에 비한다면 도로는 산을 뚫고, 강을 넘어 쉽사리 첩첩한 산골로 이어져 수월해 졌지만, 시선에 미련의 덫을 놓는 봄 운치로 체증이 심한 도로를 힘겹게 전진하는 품세다.이미 다음 봄을 기약하고 떠난 봄의 전령사들이 북녘으로 넘어 가기 전 이 골짜기에서 긴 여정을 위해 한숨을 고르며 쉬고 있나 보다. 영월 시내를 지나 남한강이 흐르는 협곡에서 양 옆 산세에 널려 있는 봄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어느 정도 달리다 고씨동굴 조금 못 간 지점 베리골 교차로 버스정류장에 잠시 차를 세워 놓고 사진 몇 장을 찍는데 햇살이 워찌나 따가운지 홀라당 익는 줄 알았다.전형적인 봄이라고 하기엔 약한 더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