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숨겨진 아름다움, 영월 상동 가는 길_20190422

사려울 2019. 8. 28. 02:28

만경사를 거쳐 상동으로 가던 중 통과 의례로 거치게 되는 솔고개는 나도 모르게 주차를 하고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겨 천천히 오르게 된다.

하루 종일 따가울 만큼 강렬한 햇살이 내리 쬐이며 그에 더해 힘겹게 오르던 솔고개를 넘어 서자 하나의 성취감과 더불어 단조롭던 길을 따라가다 만나는 특이한 풍채에 반해서 마법의 덫에 걸린 양 끌려 가는게 아닐까?





솔고개의 주인공 소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서 면밀하게 살펴보면 세월의 굴곡이 무척이나 많이 패여 있다.

한 해가 지나도록 뭐가 그리 달라 졌겠냐마는 자주 올 수 없는 길이라 변화를 찾는게 아닌 존재 과시에 안도한다.



솔고개 너머 단풍산은 여전히 아래를 굽이 살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산신령처럼 이 지역을 다스린다.

늘 무고하게, 그리고 앞으로도 둥지처럼 평온하게 지키는 파수꾼이자 멘토로.



매년 찾아와 새로운 걸 찾는게 아니라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담으며 추억을 표류하는 행복에 집착한다.

그러면 기억 속에 숨겨진 추억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재현되며 하다 못해 벤치에 앉아 간헐적으로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이 닿는 느낌 조차 고스란히 되살아 나는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은 행복을 춤추게 하는 촉매와 같다.



최대한 같은 자리에서 같은 구도로 담기 위해 고민하는 사이 세상 모든 시름을 잊게 되는 걸 보면 사람의 정신이란 참으로 야릇하다.

잠시 버리고 잊기 위해 취미 생활을 지속하거나 발굴하고, 거기에 몰입함으로써 달궈진 흥분을 다스리는 법까지 배우게 된다.

그래서 여행이란 쉽게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더욱 열광하고 열중하나 보다.




소나무는 거의 변화가 없어도 그 일대는 조금씩 바뀌고 올 때마다 공사 장비가 분주히 움직이는 소음이 들리더라도 말끔하게 다듬어진 잔디 사이로 고개를 내민 야생화의 익살은 한결 같다.

이런 풍경이 편안하고 좋아 잠시라도 벤치에 앉아 평온을 만끽하게 된다.

만약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없다면 시간의 흐름에도 무뎌질텐데 어느 순간 퍼뜩 정신 차리고 자리를 털며 일어나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한다.

솔고개에서 멀지 않은 상동은 가장 깊이 숨어 있는 마을이라 최종 목적지로 낙인이 찍히게 되지만 어쩌면 가장 진중한 주인공의 무게감도 함께 갖추고 있다.



꼴두바우는 상동의 상징과도 같다.

그래서 좀 더 깊은 사연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

이미 져 버린 벚꽃이 그 사연을 듣느라 이제 기지개를 편다.



상동 꼴두바위로 무작정 달려와 목적지에 도착한 인증을 스스로 내리곤 편하게 돌아다닌다.

생각지도 못한 봄꽃들이 길을 따라, 인적을 따라 주저리 열려 있건만 상동이라는 마을 자체가 아직은 수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벗어난 덕에 이 모든걸 혼자서 누리는 착각도 들었다.

좁은 협곡에 위치한 상동은 길가의 인가가 길게 늘어서 있고, 지형적인 특수로 마을은 시작과 끝이 규모에 비해 아주 길다.

그렇게 긴 마을의 시작부터 가장 깊은 곳까지 만개를 시작한 벚꽃과 이따금 산아래 피어난 핑크빛 진달래의 향연이 마을의 이미지를 새로 부각시키는 걸 보면 계절의 위대함도 거듭 느끼게 된다.




시상에나!

아직 망울조차 완전히 안 터졌다.

아직 여긴 초봄이란 건가?

이미 벚꽃이 지고 신록이 퍼진 지금, 다시 봄꽃을 만난 반가움이 어떤 비교되는 말로 설명 가능할까?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거미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 않고 자기 일에 열중이다.



같은 자리에 늘 깨끗한 재털이를 보면 어쩐지 담배 꽁초 하나 버려져 있는 모습이 어색할 거 같다.

깔끔한 공원은 이런 작은 정갈함과 관심이 모여 이루어진 산물이다.

잠시 주변 사진을 담고 고프로를 이용해 늘 조용한 도로를 느리게 달리며 몇 번을 촬영하는 사이 다시 석양이 다가 오고 약속된 집으로 가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깊은 산중의 희망을 캐던 상동은 땅 속 깊이 숨겨진 노다지처럼 문명을 피해 꼭꼭 숨겨진 테라비시아 같았다.

영화를 누리던 시절, 이곳을 오기 위해 덜컹이는 버스를 타고 구부정한 곡선길을 거쳐 얼마나 힘들게 왔을까?

봄의 전령사들이 이미 떠난 줄 알았건만 상동에 들어와 또아리 틀듯 자리를 잡고 하나씩 꽃망울을 터트리며 그 숭고한 날개깃을 펄럭이려 한다.

예전 나그네들이 지나며 무수히 많은 고뇌를 자근히 듣고 위로해 주던 소나무는 더욱 고결한 빛을 발하며 그 눈부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어쩌면 영원 불멸의 존재일 수 있겠다.

상동을 등지고 돌아오는 길은 숨겨둔 보물이 무사히 잘 있었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생각지 못한 복이 넝쿨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어 반전의 묘미까지 선물 받았다.

마음은 이런 작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씨앗에 크나큰 열매를 맺게 해 주며 그 수확을 한아름 안고 이번 여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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