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197

일상_2191008

이른 아침에 보이는 가을 풍경에 잠깐이지만 주위를 둘러 봤다. 버스 정류장과 거리가 좀 있긴 해도 잠시 이 길에 물들어가는 가을색의 유혹을 참을 길 없다.잠깐 걷는 동안 귀찮거나 초조함보다 각박한 일상의 작은 틈바구니에 누릴 수 있는 스릴감이 넘쳐 나는 건 뽀나스, 지난주까지 긴팔 셔츠조차 갑갑하게 느껴지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이 이른 추위로 몸이 잔뜩 움츠렸다. 도로가 인도에 얼마 전 제초 작업을 한 흔적 아래로 들국화 하나가 가지가 꺾여진 채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듯 화사한 노랑 꽃송이 하나 피었고, 가던 걸음 잠시 멈추어 허리를 숙여 그 꽃에 빠졌다. 아침 이슬이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가을 내음이 물씬한 오늘 아침, 임실 가는 날이라 그런가? 마음이 무척 설레고 추운 날씨에 반해 기분은 훈훈..

일상_20191007

새벽부터 더 깊은 가을을 재촉하는 제법 굵은 비가 내렸다.오후가 기울 무렵 우산을 쓰고 자주 걷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텅빈 산책로에 선명한 비소리가 듣기 좋아 걷던 사이 노작 호수 공원까지 걸었다. 얼마 전까지 이파리가 무성하던 나무가 올 들어 자주 드나 들던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길바닥에 자욱한 낙엽과 더불어 나뭇가지가 급격히 앙상해져 여름 동안 멋진 그늘과 볼거리를 만들어 주던 나무 터널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외에 이 길 내내 따라 붙는 빗방울 소리가 가을을 앞둔 마당에 듣기 좋은 선율 마냥 가슴 설레게 한다.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을 보면 늘 드는 생각이 곱게 뿌려 놓은 보석처럼 영롱하다.비가 그치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녀석들이라 보석으로 비유한 들 틀린 말은 아..

일상_20191005

간편한 차림은 약간의 한기를 느낄 수 있는 가을스런 날씨가 열어놓은 창을 넘어 온 집안 구석구석 퍼진다.마음에 단단히 벼르고 벼른 다짐 중 이 귀한 계절을 잠시도 허투루하게 보내지 말자고 했던 만큼 몸에 덕지덕지 붙은 귀차니즘을 털어 내고 약간의 한기를 그대로 느끼며 집을 나섰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대로 반석산 둘레길에 올라 길을 따라 자라고 있는 계절의 흔적들을 면밀히 살피며 천천히 걸어갔다.평소 같으면 이렇게 세심한 관찰 없이 후딱 한 바퀴 돌았을 터인데 오늘 만큼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 마음 끌리는대로 보폭도 조절하고 쉬고 싶을 때 자리를 가리지 않고 쉬기로 했던 만큼 시선이 멈추는 걸 마다 않는다.길 가장자리에 넝쿨들이 여기저기 촉수를 뻗고 있는 모습을 보자 단단한 지형지물에만 자라는게 아니구나..

한적한 충주 남한강변을 거닐다_20191001

여느 마을마다 주변 지형지물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명과 이름을 달아 놓은 걸 보면 옛사람들은 세상 모든 걸 의인화 시키고 동격화 시켜 생명이나 자연을 함부로 경시하거나 차별을 두지 않았다.심지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들판의 바위에도 닮은 것들을 유추시켜 이름을 달아 놓았고, 부를 때도 마치 사람처럼 친숙한 어법을 사용했는데 그렇게 자연스레 배운 것들을 구전으로 남겨 어쩌면 세상 모든 것들과 어울려 공존공생하는 방법을 말문 터지듯 습성으로 익혔다.마을을 한 바퀴 크게 돌며 지형과 그런 친숙한 우리말에 재미난 동화를 경청하듯 세세히 들으며 반 나절을 보내고, 혼자 자리를 떠나 부론으로 넘어 갔다.사실 흥원창으로 갈 계획을 세웠지만 어중간한 여유를 갖다 보니 확고한 목적지를 정한게 아니라 결정 장애를 겪었고..

힘찬 개울소리가 휘감는 학가산 휴양림_20190924

역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늦잠을 잤다.밤에 도착한 학가산 휴양림은 조성된 지 오래된 흔적이 역력하여 숲속의 집에 들어서자 특유의 냄새와 더불어 구조 또한 가파른 계단이 연결된 복층이 딸려 있었다.허나 오래된 만큼 위치 선정이 탁월하여 통나무집 바로 옆이 견고한 제방으로 다져진 개울이라 여름 피서로 오게 된다면 바로 옆 개울로 뛰어 들어 물놀이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다듬어져 있었고, 비교적 가파른 길을 통해 듬성듬성 배치된 통나무집이 꽤 많았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개울로 트여 있는 발코니 창을 열자 바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힘차게 흐르는 개울과 그 너머 쨍한 가을 햇살이 바로 비췄다. 텅빈 숲을 오롯이 채우는 물소리가 아름다운 선율의 뉴에이지 음악처럼 밤새 들리며 회색 도시에서 찌든 소음을..

마을 수호신, 원주 부론_20190915

보호수이자 시골 마을마다 전해져 오는 전설 같은 당산나무들. 마을의 평온과 번영을 지켜 주는 갖가지 전설이 설사 꾸며진 이야기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 수호령에 무던히도 많은 위안과 안도를 꿰차고 시련을 극복해 왔었다. 수 백 년, 거센 바람과 병충에도 견뎌 온 걸 보면, 또한 지나는 길에 제 한 몸 바쳐 뙤약볕을 막아 그늘을 내어준 것만으로도 치부할 수 없는 생명의 존엄을 느낄 수 있다. 강원/경기/충북이 만나는 지역이자 원주/여주/충주가 인척이 지역은 사투리도, 지역 성향도 비슷하다. 부론의 보호수로 나무가지가 집 안으로 뻗자 그 자리를 내어줬던 과거 흔적들이 이제는 잘려져 나가고 차단되어 버렸다. 훈훈한 장면이었는데... (시간의 파고에도 끄덕없는 부론_20150307, 추억과 시간이 만나는 곳) 여..

일상_20190911

가을 장맛비는 여전하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깊게 패여 있다. 급하디 급한 빗방울이 지나가자 이내 가을 흔적이 진하게 내려 앉았다. 파란 여름 위에 애태우는 가을비. 가을이 뿌려 놓은 은빛 가루는 자욱하게 남은 여름을 덮고 대기에 녹아 있던 빛을 응집시킨다.어느 계절마다 사연이야 없겠냐만 그토록 감성의 심장을 두드리던 가을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칠까?기다리고 기다려 구름 자욱한 창가에 앉아 가쁜 숨 가라 앉히고, 그저 흘러가는 구름의 향연에 시선을 미끼 마냥 던져도 좋을 법한 시절이다.여전히 미비한 흔적임에도 이미 도치된 설렘을 어루만져 출렁이는 가을에 대한 상상에 착각인 들 한 번 빠져 봐도 좋겠다. 짙은 여름색을 뚫고 뽀얀 속살을 내민 또 다른 생명이 눈부시다. 무성하던 칡넝쿨..

태풍 링링이 오던 날_20190907

올 들어 유독 예년에 비해 태풍 소식이 잦다.태풍 링링의 북상으로 비는 그리 많지 않지만 바람이 강력한 태풍이라는데 오늘 하루가 절정이자 고비란다.전날 집을 나서 원주에 들러 하루 지내는데 창 너머 바람 소리가 꽤나 강력한 태풍임을 직감할 수 있었고, 점심 해결하고 여주로 넘어와 종영형 잠깐 만나기 전에 커피 한 잔 사서 말 그대로 얼굴만 보고 헤어져 지인이 계시는 곳으로 왔다. 여주IC에서 내려 여주읍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돈까스 집 건물 외관이 특이하다.적벽돌로 쌓은 뒤 통유리를 외부에 덧대어 미관상 돈까스 집이 아니라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첫인상이다.종영형과 헤어져 지인이 계시는 곳에 도착하자 태양초-엄밀히 이야기하면 태양초가 아니고 건조기로 말린 건데 집에서 태양초 만들어 보면 정말 햇볕 좋은데..

일상_20190901

다리를 다친 이후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주 걷던 산책로를 따라 걷기 테스트를 해봤다.처음 망설임이 어느새 증발하고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걸으며 다리에 부하가 걸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완급 조절을 해가며 걷다 6km 정도 산책 했는데 역시나 집에 틀어 박혀 있는 것보다 이렇게 바깥 공기를 쐬며 주위 풍경을 보는 기분이 더 낫다. 나무 터널이 울창하다. 이렇게 길을 걷다 보면 바닥에 뒹구는 낙엽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강아지풀 군락지. 동탄 열림교 아래로 진입하는 내리막길에 이 꽃이 늘 피어있는데 한 번 피면 잘 지지도 않고 오래 만개해 있는 꽃이다. 들판의 무법자, 칡꽃은 자세히 보면 상당히 매혹적인 만큼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향이 무척 좋아 늘 벌레가 들끓는다.약한 생명들의 온실과 같..

자연이 펼쳐 놓은 평온에 잠시 기대다, 안동 고산정_20190713

마당을 나서 다른 가족을 데리러 안동역으로 가기 전, 작년부터 찾아 가겠노라 다짐했던 고산정을 찾았다.봉화 청량산을 지나면 행정 구역상 이내 안동이 나오고 그 첫 머리에 이런 절경이 환영을 한다.    강에 기댄 기암 절벽이 펼쳐져 있고 그 절벽이 끝나는 시점의 작은 터에 마련된 고산정은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고산정이 그저 평이한 강가에 있었다면 돋보일 수 없었겠지?장엄한 자연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함께 빛을 내기 때문이다.  강을 건너 고산정으로 가자 초입이 이런 멋진 느티나무가 한껏 가지를 펼친 채 반가이 맞이해 준다.    사실 고산정은 평이한 고택에 불과하다.그리 알려지지 않아 이 공간에 머무는 내내 새소리와 바람소리, 심지어 몇 방 물어 뜯긴 모기소리 조차 선명하게 들린다.강 너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