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의 휴일 중 셋째 날, 용인 부아산으로 향했다 오르는 길을 찾지 못해 그냥 발길을 돌렸고, 마땅히 여정을 즐길 만한 곳이 없어 주저하는 사이 차량은 어느새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정 장애를 일으킬 때면 만만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반석산이나 독산성이었는데 반석산의 경우 가을 이후로는 거의 가지 않았지만 뻔질나게 드나들던 장소라 이렇게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아 독산성으로 급히 방향을 선회했다.
평일이라 독산성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했는데 길가에 아직도 건재한 빙판이 한몫을 한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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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량을 세워두고 걸어서 오르는 길은 포장만 되어 있을 뿐 비교적 가팔라 걸치고 있던 얇은 패딩 안으로 땀이 베일 정도였고, 산을 오른 것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가쁜 숨은 가슴을 한 없이 부풀렸다.
그래도 약한 모습 보일 소냐, 잰걸음으로 산성에 도착하기 전에 언제나처럼 가슴을 활짝 펴고 맞이하는 나무의 모습에서 모처럼 찾은 독산성의 결정에 안도했다.
늘 저렇게 거대하고 멋진 나무를 보면 인간과 흡사했다.
아니 인간의 모든 조직에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는 혈관과 흡사했다.
그래서 인간은 나무와 별개의 생명이거나 우월한 존재가 아닌 동등한 생명이며, 그래서 나무 또한 고귀한 존재라 여겼다.
독산성을 들기 전에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게 나무였다면 독산성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보적사였고, 단아한 사찰의 규모에 비해 사찰이 맞닿은 세상은 거대했다.
종교가 없다고 하더라도 절에 가면 최소한의 읍례 정도는 해줘야지.
교회에 들르게 되면 작은 염원을 담아 간단한 기도를 하듯이.
보적사를 지나면서부터 공식처럼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앞서 모든 팔을 활짝 벌려 맞이해 줬던 나무는 성곽 외부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번뇌를 초월한 모습으로 항상 세상을 응시했다.
그 나무를 지나면 성곽은 내리막길로 향했는데 여기서부터 시계가 트이며 남동쪽으로 넓게 뻗은 대지가 맞이했다.
다행히 대기에 미세먼지가 적은 날이라 여정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한 번 더 되뇌었다.
나무의 존재만큼이나 강인하게 기개가 굳은 바위는 땅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세상을 향해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었다.
인간이 규정한 생명은 없지만 자연이 규정한 생명은 심장이 없더라도 세상 만물에 존재의 심장을 부여해 설사 그 곁을 지키는 먼지 하나조차 더불어 가치의 혈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래서인지 볼 때마다 저 바위는 신령이 아닐까 상상해 봤다.
그 수많은 바위들 중에서 유독 관심에 흡수되고, 가치의 활력은 터질 것만 같았으니까.
성곽을 따라 걷던 중 무심코 청명한 하늘을 쳐다보자 자갈을 포개어 쌓은 연약한 돌탑이 보였다.
의미가 남달랐던 바위에 근접하자 규정 지을 수 없이 오래 자리를 지킨 통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섰다.
바위에 도착하여 그 바위가 변함없이 지켜봤을 세상을 내려다봤다.
이제는 대도시가 되어 버린 동탄을 위시해 발아래엔 조금 더 젊은 도시인 오산의 세교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때를 돌이켜 보면 동탄1도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이라 동탄2 방면은 미지의 벌판과 같았는데 이제는 여러 지류가 모여 거대한 강이 되는 것처럼 이 도시도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도시가 되었고, 그에 이어진 인가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굴곡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난 그 변화에 무심했던 게 아니었을까?
자책이라기보단 듬성듬성 이어진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의 거대한 변화와 같았음을 지나고 나서야 인지하게 된 훈훈한 깨달음을 이렇게 멀찍이 섰을 때 느낄 수 있었다.
선 채로 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여전히 하늘로 뻗은 혈관, 대동맥과 거기서 여러 갈래 뻗은 동맥들, 그리고 다시 셀 수 없이 많은 갈래갈래 뻗은 모세혈관들.
하늘이라는 피부에 기운을 불어넣어 청명한 기운을 이어주는 혈관 같았다.
바위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성곽은 비교적 급격한 내리막길로 옷을 갈아입었고, 성곽의 유실이나 파손을 막기 위해 접근을 금지시켜 놓았다.
그나마 성문은 접근이 가능해 거기서 왔던 길을 바라보자 마치 하늘로 향하는 길처럼 맞닿아 있었다.
거대한 뱀이 꿈틀거리듯 성곽은 산허리를 꿈틀거리며 남쪽 산어귀를 돌고 있었다.
역시 청명한 날답게 아주 먼 곳까지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다.
겨울은 냉혹한 것 같지만 추위와 함께 아득한 추억과 숨겨진 세상의 모든 점을 또렷하게 보여줬다.
비교적 가파른 성곽이 완만해지자 다시 성문이 맞이했는데 과거엔 하늘을 찌르던 피비린내 나는 함성이 있었다면 현재는 전망대로 바뀌어 감탄의 함성이 대신했다.
산 쪽을 바라보자 언뜻 헐벗은 나무 사이로 세마대가 보였다.
성문에서 집이 있을 법한 방향을 응시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집에서 보면 보적사와 내가 선망하던 나무는 보였지만 그 외엔 오색둘레길의 일부인 석산에 가려 보이질 않았는데 대신 단지 일부는 개미 똥꼬만큼 보였다.
다시 가던 길을 걸어 다음 성문이자 전망대가 나왔다.
비교적 거리가 있긴 해도 일대에서 전망 좋기로 소문난 나지막한 산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엔 사람들의 터전이 보였다.
지나왔던 방향을 바라보자 성곽은 그리 거대하지 않았지만 비교적 가파른 산의 지형에 기대어 요새로서 손색이 없었다.
지나왔던 방향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가야 될 방향 또한 마찬가지.
다만 내려왔던 성곽이 이제는 다시 오를 일만 남았다.
저 끝에 우뚝 솟은 파수를 넘어서면 원점과도 같았던 보적사가 보인다.
잠시 길동무가 되어준 까치 한 마리가 적막을 달래줬다.
조심조심 빙판길을 지나 우뚝 솟은 성곽에 도착했다.
높이 솟아있던 성곽의 파수대와 달리 생각보다 더 넓은 세상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가던 방향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원점인 보적사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잠시 곁길로 새어 산 정상과도 같은 새마대로 향했다.
보적사 바로 뒤편 세마대로 가는 지점에 홀로 벤치가 앉아 있었다.
그 벤치 너머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동탄이 광대하게 뻗어있었다.
그래봐야 온통 아파트 숲인 걸.
세마대에 도착.
우뚝 선 정상임에도 은둔의 정취를 이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세마대는 전쟁의 상흔과 풍류의 획이 서려있었다.
세마대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산림욕장이라 명명한 숲을 거닐고 싶어 오후 햇살이 살짝 기울기 시작할 무렵의 조바심으로 인해 걷는 보폭을 넓혔다.
산성길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보적사에서 길거나 힘든 여정이 아닌 떠나기 전의 아쉬운 한숨을 뱉었다.
여전히 청명했던 그날.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산능선의 연속성과 함께 하늘과 맞닿은 성곽 또한 선명하여 그로 인해 기억의 족적도 또렷했다.
보적사에 오면 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자승들.
이 문을 나서면 독산성의 멈춘 시간을 벗어나 다시 급격히 소용돌이치는 세속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올 때처럼 갈 때도 습관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나무 행님께 경례!
주차장과 연결된 산림욕장에 들어서 텅 비다시피 한 숲 속을 배회했다.
이따금 만나는 사람들이 반가웠고, 그러다 멀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시간, 거창하거나 거대하지 않지만 나무의 숨결이 밀도 있던 산림욕장을 끝으로 짧은 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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