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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새해 햇살이 머물던 곳, 진천 봉화산_20250101

사려울 2025. 5. 20. 21:04

새해 첫날, 감회가 남다를 것 같지만 왠지 나이가 들수록 그 감회에서 오는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일상의 그저 하루, 아니 스치는 휴일 중 하루로 여겨졌다.

그리 이른 아침은 아니었지만 따사로운 햇살에 잠을 떨치고 덕성산을 찾았는데 처음 찾아간 휑함이 낯설어 다시 차를 돌려 봉화산 잣고개 산림욕장에 들렀다.

지난 가을에 한 번 들렀다 전날 내린 비가 길을 진흙탕으로 만들었던 데다 내부 공사가 한창이라 당시 돌렸던 발걸음이 아쉬워서였다.

그런 아쉬움을 하늘이 알았던지 정말 쾌청한 날씨였는데 대기엔 옅은 미세먼지가 있어 먼 시계는 조금 혼탁했다.

진천 봉화산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던 산이라고 하여 봉화산, 봉화뚝으로 불리운다. 소나무가 무성한 솔산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이는 지명으로 소을산(所乙山), 소인산(所仁山), 소을산(蔬乙山), 소월산(所月山) 등이 있다.
지리적으로 진천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문안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남쪽으로는 미호천을 둘러싼 평야와 청주 방면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진천읍내가 조망된다.
[출처] 봉화산_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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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지 못한 진천 잣고개 산림욕장_20241001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을 떠나 21번 국도로 진입하여 진천읍 방향으로 달리는 길에 문득 잣고개를 넘어서자 산림욕장 팻말이 보여 길가 여유 공간에 차량을 주차한 뒤 산림욕장으로 향했다.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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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고개 산림욕장은 산에 기댄 공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은 오래된 유원지처럼 소소하고 별반 특징은 없었다.

때마침 차량 한 대가 주차된 상태였는데 아마도 이 길을 앞서 밟은 사람 아닐까?

불과 3개월 전에 찾았던 때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 길의 형태는 그대로였지만 길 주변 녹음은 어디론가 숨어 깊은 잠에 빠졌다.

지난 가을에 한창 공사 중으로 중장비가 바쁘게 일했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공사가 끝나 일대가 어엿한 공원의 모습을 갖춘 곳으로 바뀌었다.

방문 목적이 봉화산이라 여기 방문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계속 진행했다.

너른 포장길이 끝나고 길은 두 갈래, 하나는 봉화산으로 짐작되는 방향으로 곧장 오르는 길과 나머지 하나는 봉화산 정상과 반대 방향의 능선이 보이는 길이었는데 어차피 시간도 넉넉했고, 산자락에서 봉화산 너머 경관도 궁금하여 두 번째 길을 택했다.

너른 포장길이 끝나면 전형적인 오솔길이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닿지 않아서인지 길엔 낙엽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지만 가파른 오르막을 상쇄시키기 위해 길은 지그재그로 꺾여 완만했다.

길은 딱 한 사람이 걷기 알맞은 폭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산 능선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능선길에 접어들자 예상대로 봉화산 남서쪽 방면이 훤하게 보였다.

봉화산에서 서쪽 방면엔 해발고도가 거의 비슷한 문안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능선길이 끝나 산언저리에 거짓말처럼 너른 길과 터가 나왔다.

이름하야 봉화산 둘레길이라 명명해 놓았는데 산허리에 이렇게 너른 길을 만들어 놓다니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얼마나 산이 몸살을 앓았을까 싶기도 해서 묘한 양면성이 불쑥 솟았다.

각 지역이 살아남기 위한 묘책 중 근래 가장 활발히 진행형인 게 바로 이런 둘레길이라 개발에 대한 비판은 없지만 관리의 지속성이 아쉬운 흔적들이 많아 장마철처럼 자연재해에 대비가 있을까 걱정은 숨길 수 없었다.

부디 여긴 그런 자연재해에 피해 없길.

차량이 넉넉히 지날 수 있는 봉화산둘레길에 드문드문 이런 너른 쉼터가 있었다.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패여나간 흙과 널브러진 돌, 그리고 벤치의 나무를 보면 새것 느낌이 물씬했다.

둘레길을 조금 걷다 문득 정상 방면으로 이어진 오솔길 비스무리한 게 보여 과감히 그 길로 들어섰다.

진천에 오면 이렇게 작지만 산을 기어가는 멋진 길이 유독 눈에 띄었고, 이런 촘촘한 길의 유혹을 참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발치 아래 좀 전까지 잠시 거닐었던 봉화산 둘레길이 굵은 선을 그렸는데 도로에 비유하자면 마치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연상케 했다.

이런 산에 저런 길을 만들 정도면 기술도 대단하다.

길은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을 조금이라도 상쇄시키려는 의지인 양 지그재그로 굽이굽이 쳤는데 그마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적막을 자욱한 낙엽이 덮고 있었다.

이 길이 없었다면 이곳 방면에서부터 봉화산을 오를 수 있었을까?

산허리를 돌아 길이 비교적 완만한 건 가파른 구간을 길게 우회해서 정상으로 향한 의지에 한숨을 돌리고자 함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길은 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산허리에 이리 한적하고 걷기 좋은 길을 이제서야 알게 된 건 삶의 시선이 늘 앞과 바닥으로 향하며 집착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어 숙연해졌다.

차에서 내려 출발한 지 약 25분 정도 지나 길이 급격히 완만해질 무렵 갈림길에 섰다.

숲길 사이로 어렴풋이 쉼터 정자가 보였고 봉화산 정상에 가까운 능선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했다.

잣고개 산림욕장 초입에 있던 한국전쟁 참전비는 바로 여기 일대에서 발견된 유해 발굴을 기리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이토록 평온한 자리에서 총포 소리가 울렸다는 게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었고, 그래서 마치 비현실적인 꿈속 같았다.

여기서 약 200m만 오르면 봉화산 정상이었는데 이 구간은 여타 다른 산처럼 봉우리부근의 경사도가 급격했다.

그래도 힘내자!

경사가 가파른 구간이라 계단으로 이어진 길에서 희끗희끗 산정상이 보였다.

산 정상을 바로 코앞에 두고 더욱 가팔라진 경사의 길가엔 돌탑이 서있었다.

인간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탑일까, 아니면 염원의 집합체일까?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이곳에 돌탑은 예사롭지 않았다.

차에서 걷기 시작한 지 대략 30분 정도 지나 드뎌 정상에 도착.

가파른 길을 올라서인지 너른 정상은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래도 위태로운 휴식이 아닌 느긋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

정상에 올라 가장 먼저 시선이 닿는 건 탁 트인 전망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우뚝 선 150년 수령의 느티나무였고, 동시에 그 나무를 지나 꽤 높이 솟은 초소였다.

정상에서 처음으로 반가이 맞이하는 느티나무의 자태에 감탄하느라 바로 사진으로 담지 못하고 거기를 지나 급히 뿜어져 나오던 한숨을 돌린 뒤에서 세상 앞에 당당히 선 나무를 재조명할 수 있었다.

정상에 오르면 진천을 위시하여 그 일대 탁 트인 조망이 압권이었다.

물론 150년 동안 세상을 우러러본 느티나무의 자태는 시선에 깊이 각인되었고, 비교적 너른 대지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기도 했다.

지도에서 단순히 진천 일대의 너른 평원이 이렇게 보면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났으며, 마치 자연이 다져놓은 지형은 정교하리만치 편평했다.

대기에 옅은 미세 먼지가 끼어 있어 시야는 비교적 좁아지긴 했으나, 상상의 시야는 거칠 것 없었다.

북쪽으로 이어진 경사가 급한 길을 이용해 봉화산 정상에 올랐다면 남쪽으로 이어진 길은 북쪽과 달리 완만하게 뻗어있었다. 

정상을 홀로 지키는 가파른 계단의 초소에 올라 서쪽으로 바라보면 앞서 산행 중에 봤던 문안산이 홀로 우뚝 솟아 있었고, 그 뒤로 고도가 비슷한 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진천 일대가 너른 평야에 북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장벽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세를 보면 전형적인 분지 형태였는데 그래서 여름에 바람이 거의 없는 무더운 찜통더위가 휩쓸었나 보다.

그래도 이렇게 늘어선 산세가 꽤 멋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감동을 추스르고 갈증과 가벼운 허기를 달랜 뒤 자리를 떠나기 전, 다시 마주할 느티나무 앞에 섰고, 그 모습은 마치 인체의 혈관을 연상케 했다.

앞서 굳게 문이 잠긴 초소의 가파른 사다리에 올라 세상을 한 번 더 감상시켜 준 고마움도 놓치지 않았다.

새해 첫날은 한겨울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비교적 포근한 겨울이라 정상에서 약 30분 정도 세상 구경에 흠뻑 취한 뒤 떠나는 아쉬움에 뒤돌아 멋진 나무 행님께 인사를 드리곤 곧장 대흥사로 출발했다.

진천은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또한 맑은 물과 기름진 너른 벌판이 있어 하늘이 내린 곳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진천을 한눈에 굽어보고자 하면 봉화산 중턱에 자리한 대흥사가 제격이다. 대흥사는 고려시대의 절터로서 조선후기에 참의 벼슬을 하던 조중우(趙重愚)가 창건하고 영은암이라 했던 것을 1907년에 다시 조창호(趙昌鎬)가 중건한 사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흩어져 있는 대부분의 작은 사찰들이 그러하듯이 근래까지도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으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람을 일신하고 있다. 옹색했던 터전은 널찍한 도량으로 변모를 했고, 겨우 비바람을 피할 정도의 법당과 당우(堂宇)는 아름다운 처마곡선을 뽐내고 있다.
[출처] 대흥사(진천)_한국관광공사

대흥사는 앞서 전쟁 희생자 유해발굴지역에서 산으로 오르던 방향 그대로 진행하면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 조용한 새해답게 사찰 내부도 무척 평온했다.

진천읍을 발치에 둔 사찰이라 봉화산 정상만큼 진천읍을 위시해 그 뒤로 펼쳐진 평야의 탁 트인 조망을 할 수 있어 나름 지역 명소로 자리 잡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보통 사찰 내부가 가장 깊숙하거나 높은 곳에 산신각이 있어 여느 때처럼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 진천읍을 바라보자 절은 물론 진천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막상 산신각에 오르자 여느 사찰의 좁고 아담한 법당이 아닌 비교적 너른 터에 상대적으로 큰 법당이었다.

앞서 오르던 분들이 법당에 들어가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것 같아 내부엔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걸로 만족했다.

어차피 종교적인 믿음이 없어 이 자리에서 살짝 읍소 정도만 하곤 왔던 길로 내려갔는데 그러는 사이 한 무리 사람들이 몰려와 잠시 전의 적막은 흩어져 버렸다.

산신각에서 내려가는 길에 덤덤히 걸린 풍경이 잠잠한 바람에도 영롱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산신각과 대웅전을 연결하는 길에서 옆으로 자라는 고목이 있었다.

계단을 오를 때엔 먼발치 세속에 매료되어 있었지만, 내려갈 때 비로소 이 모습에 감동으로 반응했던 만큼 잠깐 사이 세속에 길든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걸까?

그리 큰 나무가 아니었음에도 상당한 세월의 흔적은 역력했고, 그로 인해 많은 풍파를 겪은 고뇌가 드러났다.

역사가 깊은 대흥사에 비해 법당들은 대부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법당의 주춧돌과 탑은 무척 뽀얀 빛깔이었다.

대웅전 위로 드리우는 빛내림.

조용하던 사찰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들러 떠들썩했고, 봉화산을 충분히 즐긴 시점이라 대흥사를 끝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오를 때는 산길을 이용했다면 내려갈 땐 대흥사와 연결된 봉화산 둘레길로 걷다 잣고개 산림욕장으로 연결된 오솔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산허리를 따라 크게 도는 봉화산 둘레길은 시종일관 걷기에 전혀 무리 없을 만큼 탄탄했고, 조금 걷다 앞서 봉화산 정상 방향의 골짜기에 기도터 같은 곳을 발견했다.

얼핏 보면 무당 기도터처럼 보였는데 그런 상상 때문이었는지 움푹 들어간 골짜기에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음산했다.

다행히 길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라 여기를 경유하지 않아 잰걸음으로 지나갔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음산함이 더해져 섬뜩한 느낌도 드는 곳이었다.

산허리를 따라 크게 도는 봉화산 둘레길은 시종일관 걷기에 전혀 무리 없을 만큼 탄탄했고, 조금 걷다 앞서 봉화산에 오를 때 봤던 둘레길 표지석에서 잣고개 산림욕장 방향 분기점과 거기를 연결하는 오솔길이 보였다.

이렇게 보면 잣고개 산림욕장이 그리 멀지 않아 겨울의 앙상해진 나무숲 사이로 산림욕장이 보였다.

예상처럼 산림욕장은 인척이었는데 지난번 한창 공사 중의 중장비가 있던 너른 터를 포함해 산림욕장은 규모가 그리 작은 건 아니었다.

길 따라 소소한 정원도 꾸며놓았고, 그 정원도 각기 다른 테마를 품고 있어 꽃피는 봄에 방문하면 괜찮겠다.

여기엔 오래된 추억의 기구들이 있었는데 농기구며, 아궁이 불씨를 불어주는 풍구도 있었다.

어릴 적 큰집에서 쓰던 풍구가 여기 있었다니!

신기하게도 불이 서서히 꺼져갈 무렵 입으로 불면 불은 별로 타지 않으면서 눈만 매캐하던 아궁이가 이 풍구를 쓰면 불길이 미친 듯 춤을 췄었다.

어린 눈으로 봤을 때 얼마나 신기했던가!

전시된 옛 기구들 아래엔 이렇게 먹다 버린 빈 박카스병이 남아 있었다.

이런 상실된 개념을 행동으로 옮긴 자에게 작은 저주를 선물해 주소서!

잣고개 산림욕장은 규모에 비해 텅 빈 공원이나 다름없었고, 산행을 시작할 때 이따금 들리던 인적은 오후가 무르익자 어디론가 떠나 적막만 남아있었다.

낮이 짧아 해도 서쪽으로 비교적 많이 기울었고, 봉화산 북녘의 골짜기에 들어선 산림욕장이라 더더욱 일찍 어둑해져 내려오는 길은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주중을 관통하는 짧은 새해 첫날은 낮도 찰나 같았지만 추억만큼은 한아름 풍성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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