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삶과 삶 사이로, 오산 오색둘레길_20250303

사려울 2025. 6. 25. 00:16

적당한 맛과 멋, 적절한 땀과 그때그때 주어지는 보상.

게다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둥지와 터전 사이로 지나가는 오산의 오색둘레길은 냉정하게 말하면 동탄에서 허벌나게 돌아다닐 때만큼 흥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 가까이 자연과 문명을 버무린 길이 있어 다행이었다.

2009년 동탄에 이사를 했을 때 회사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동탄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들이 열에 아홉이었고, 그마저 아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편견으로 한 마디 거들었다.

그 먼 곳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다니냐, 동탄이 화성?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그 화성?, 반도체 공정에서 불산이 나오면 어쩌나 등등

막상 동탄에서 사는 난 그 쾌적함에 처음부터 대만족이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음에도 매끈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주변과 하루 종일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법한데 공원이나 공공장실은 무척 깨끗하거니와 이용에도 불편이 전혀 없었고, 자연 녹지를 공원으로 살짝 버무린 반석산의 경우 밤새 길이 환해서 무서울 게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주변 카페는 24시 영업하는 곳이 많았고, 어디든 들어가 자리를 잡아도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사람이 적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거리에 사람들이 적은데 비해 카페는 비교적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친구들 불러다 밤새 돌아다니거나 피자를 사서 길에서 먹었겠나.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오산에 오는 순간부터 불편한 게 몇 가지 생겼다.

물론 초창기 도시와 비교해서...

공원은 있는데 장실은 내내 문이 잠겨져 있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10분은 걸어가야 했으며, 가끔 찾아야 될 상급병원이 없었다.

또한 고속도로에서 나와 오산 도심을 관통할 때면 시간이 만만찮게 걸렸고, 녹지 산책로를 걷더라도 등불이 없어 야심한 밤엔 무리거니와 무섭기도 했다.

그러다 만난 게 바로 오색둘레길.

아직은 겨울이라 해도 의심이 들지 않는 초봄의 풍경 사이로 나지막한 산기슭로 이어진 길은 세교 외곽과 산업단지 경계에 이어진 둘레길이었는데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을 걷다 보면 도심에서 동떨어진 산길을 걷는 착각이 들었다.

앞서 둘레길을 걸어 첫 관문인 석산까지 갔던 기억이 덧대어 조금 힘을 내 비교적 우뚝 솟은 노적봉까지 도전하기로 했다.

노적봉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되는 길목, 석산으로 가는 길은 세교 경계를 지나는 서부로의 터널, 금암터널 위를 지나게 되는데 아직 남은 겨울색으로 인해 앙상한 나무 사이로 시원스럽게 뚫린 서부로를 볼 수 있었다.

앞서 오색둘레길 탐방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갔었고, 어쩌면 그때 탐방하지 못한 오색둘레길을 다짐했었지.

석산으로 가는 완만한 능선길엔 비교적 돌무더기가 많은 지역이 있었는데 혹시 산성의 흔적 아닐까?

먼지처럼 흩날린 역사의 단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석산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길은 그래도 산이라는 타이틀답게 조금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었다.

석산에 마련된 쉼터는 비교적 갖출 것들은 다 갖췄다.

오르막길에 피로해진 다리를 쉴 수도 있고, 여느 근린공원처럼 간편한 운동도, 아니면 산속에서 영원한 로맨스처럼 독서도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구색은 갖췄다.

석산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 가장산업단지가 보였다.

규모가 그리 큰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티가 났다.

다시 오색둘레길을 따라 지난번 가지 않았던 길을 재촉하면 지속적인 내리막을 지나 생태터널 윗길이 나왔다.

주변엔 듬성듬성 무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길은 그런 무덤들을 피해서 지면 가까이 뻗어 있었고, 이 생태터널을 지나면 다시 오르막길과 함께 산속에 우뚝 솟아 있던 아파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생태터널을 지나 오르막길로 접어들기 전,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꽤 오래 동안 사람들의 흔적이 없었던 것 마냥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쉼터를 지나 뿌듯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창 너머 산속 아파트의 실체가 드뎌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2천 세대 아파트가 산허리를 뚝 잘라 거기에 들어섰다.

오색둘레길은 양옆이 잘려 아파트와 가장산업단지 사이로 교묘하게 지나갔고, 아직도 진행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게 오색둘레길의 특징임을 걸으며 읽을 수 있었는데 때로는 조성 중인 도시를 관통하다가도 수풀이 무성한 곳을 지나는가 하면 어느새 삶을 대표하는 주거와 일자리를 끼고 그 가운데를 관통했다.

길을 걷다 문득 집사만이 느낄 수 있는 촉이 자극되어 옆을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냥이들이 아직 남은 추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물론 작은 가방에 츄르는 챙겼지만 녀석들은 경계심을 드러냈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누군가 녀석들을 챙겨준 흔적들이 보여 그냥 지나쳐 녀석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대단지 아파트를 지나던 중 아파트 사이에 뭔가 익숙한 장면이 드러났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독산성이었다.

비교적 대기가 청명한 날이라 그 모습이 또렷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건 처음이라 퍼뜩 알아차리지 못했고, 산 정상을 다듬은 모습은 영락없이 산성이라 유일한 이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일대엔 산성이 없으니깐.

아파트 단지를 지나쳐 한참을 숲 속 길만 바라보고 걷다 지도상으로 최종 목적지인 노적봉이 가까워진 지점에서 시야가 뻥 뚫린 묫자리가 나왔고, 거기선 특이하게도 동탄 방면으로 시야가 트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시원한 조망을 감상했다.

산 아래엔 시원스럽게 뚫린 고속도로가 산 사이를 가르며 달렸고, 그 너머엔 동탄 메타폴리스가 우뚝 솟아 있어 누가 봐도 동탄임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털어냈던 한숨을 다잡고 다시 앞을 보며 걷다 드뎌 정상을 앞둔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길을 남겨뒀다.

그래도 산이라 평지와 달리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걸었는데 마지막 오르막은 산 정상답게 그나마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라 참아왔던 깊은 숨도 거칠게 튀어나왔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걷기 수월한 매트길이거나 매트가 없는 구간도 많은 사람들이 다져놓아 위험하지는 않았다.

이번 여정의 최종 목적지인 노적봉 정상에 도착.

아무것도 없을 거란 예상과 달리 간단한 운동 기구에 빈약하긴 해도 벤치가 있어 무거워진 다리를 쉬게 할 수 있었다.

정상은 폭이 좁았지만 능선의 연장선상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고, 양 옆은 비교적 가팔라 나무숲이 가려져 있지 않아 상대적으로 전망이 뻥 뚫려 시원했다.

노적봉 정상의 남쪽은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았던데 반해 북쪽 방면은 서랑저수지와 독산성이 마주했다.

이렇게 보면 독산성과 높이가 별로 차이 없어 보였지만 지도 어플을 실행시키자 독산성 정상인 세마대는 갓 200m가 넘는 반면 노적봉은 160m 정도였다.

대략 40m 정도 차이치곤 별로 고저 차이를 느끼기 힘들기도 했고, 한편으론 160m 정도 산에 오르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물론 산길을 따라 길게 돌아서 걸어온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체감하기로 앞서 조망했던 메타폴리스와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내 감각이 무디거나 아니면 노적봉을 측정한 고도계가 망가졌거나.

노적봉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왔던 길을 그대로 답습하듯 내려왔고, 대단지 아파트를 지나면서 왔던 길을 버리고 옆길로 내려와 일반 도로를 따라 가장산업단지를 관통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걸음수는 1만 6천보를 넘겨 비교적 많은 걸음수를 찍었는데 거창한 여정길 없이 재미있는 즐길거리를 찾은 뿌듯함에 큰 피로를 느낄 겨를 없었다.

더불어 봄이 오면서 낮의 길이도 길어져 조금 늦게 출발하더라도 하늘 등불은 오래 켜져 있어 부담도 없었다.

이렇게 숲과 산, 대규모 주거단지와 산업단지를 번갈아 가며 즐긴, 특이한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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