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498

그리움의 육지 섬마을, 회룡포_20220126

회룡포가 재조명 받은 건 삶의 진수가 녹아든 추억의 류와 다르게 억겁 동안 강이 만든 작품에 대한 감탄의 표현 중 경의에 찬 화답이었다. 주변에 발달한 평야의 가운데 우뚝선 작은 산에서 회룡포만큼 포근한 지형에 기대어 종교적 염원을 쌓아 올린 건 인류의 원초적인 방법인데 종교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는 나로선 비교적 빈번한 종교인의 거룩을 가장한 타락이 아니라면 이런 자리에 불명확한 미래의 공포와 안도를 넋두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멋진 회룡포의 자태를 더욱 경건하게 하는 건 인간에게 대하는 인간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때마침 찾은 날은 무거운 적막이 아름다운 침묵으로 인지되기에 충분했다. 회룡포를 전망할 수 있는 회룡대로 가는 길에 산책할 심산으로 멀찍이 차를 두고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무척 적막하고 ..

석양의 자장가에 잠들다, 취묵당_20220103

발아래 흐르는 달천의 유유한 평온을 싣고 마치 뒷짐을 진 채 유유자적 서산마루로 넘어가는 석양이 하루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며 불그레 세상 이야기를 아름답게 흩뿌렸다. 새해가 밝아도 여전히 시간은 제 앞길만 바라며 주위를 둘러볼 틈 없이 빠르게 흐르건만 그 사이를 흐르는 강물은 고뇌를 달래느라 흰물결을 겨울 아래 숨기고 발자국 소리 없이 시나브로 지나간다. 겨울 낮이 짧아 아쉬움은 배가 되어 떠나는 석양의 뒷모습에 작별 인사할 겨를 조차 없었다. 취묵당 취묵당은 1662년(현종3년)에 김시민의 손자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이 만년에 세운 독서재(讀書齋)이다. 팔작지붕에 목조 기와집으로 내면은 통간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

고요한 민족의 혼, 김시민 장군 충민사_20220103

시간도 잠시 쉬며 추모하는지 석양도, 강물도 얼어 버린 채 하늘은 붉게, 강물은 하얗게 물든 김시민장군 충민사는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낡은 다리를 건너 적막강산에 고이 서린 영혼이 잠들어 다시 불거질 핏빛 치욕을 암시했건만 과욕에 눈은 멀고, 그로 인해 원숭이가 한반도를 다시 능욕하였다. 역사를 배운다는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인데 악마에게 영혼을 헌납한 나머지 사욕으로 흘린 피가 범람하는 강과 같다. 백성을 버리고, 국민을 찌른 역사가 반복되는 건 그 숭고한 정신으로 간파될까 두려워 덮고, 숨기는 것. 따스한 겨울 촉감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향긋한 낙엽 내음의 작은 위로로 길 나선 여행에서 든든한 온기로 되돌려 받는다. 김시민 - 나무위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소소한 절경의 향연, 충주 수주팔봉_20220103

거리에 부담이 없으면서 막연히 성취감을 얻고 싶었다.그러기에 언뜻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곳, 충주 수주팔봉을 향해 달렸고, 더도 말고 거의 1년 전과 비슷한 감흥을 기대했다.내린 눈이 얼어 아슬아슬한 충주 초입을 벗어나 수안보 방면으로 달릴 땐 다행히 눈 내린 흔적은 거의 없었는데 뽀송뽀송한 도로 컨디션을 보고 운전하기 수월한 19번 국도 대신 예전 도로인 문산재로 꺾어 서행으로 꼬불길을 올라갔다. 강, 산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오작교, 수주팔봉_20210128오죽하면 강산이 고유명사처럼 사용 되었을까? 뗄 수 없는 인연의 골이 깊어 함께 어울린 자리에 또 다른 강이 함께 하자고 한다. 태생이 다른 세 개의 사무친 그리움이 심연의 갈망을 이루기 위meta-roid.tistory.com  편하게만 여겼..

역사의 배흘림 기둥, 부석사_20211224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무거운 역사를 떠받든 나무의 곡선으로 유명하다. 매서운 삭풍마저 거대한 장벽처럼 버티고 선 백두대간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때 천년 사찰의 나부끼는 시간은 진중한 나뭇결 따라 파란만장한 인류의 애닮은 애환을 속삭인다. 세상 모든 사물에 사연은 있겠지만 역사와 동고동락한 나무 기둥엔 사연이 더해진 생명이 움터 마치 고행의 업을 지고 사는 수도승의 땀방울처럼 온통 갈라진 틈 사이로 휘몰아치는 번뇌의 눈동자가 초롱하다. 세속에서 부석사로 가는 길에 늘어선 나무조차 사욕을 간파한 시선이 돌아오는 길엔 온화한 동행의 미소로 승화된다.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6)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종조(宗祖)인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王命)으로 창건(創建) 한 화엄..

섬진강과 수많은 능선 사이, 용궐산 잔도길_20211221

채계산과 더불어 섬진강 따라 가공된 길을 찾아 순창에 도착, 극심한 미세먼지와 포근한 겨울의 공존은 따로 뗄 수 없는 명제가 되어 버렸다. 이왕 겨울을 누릴라 치면 살을 에는 추위와 함께 청명한 대기를 선택하겠지만 내 의지와 도전을 대입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에 차라리 퍼즐 조각 맞추듯 기억을 채색시키는 편이 낫다. 잠깐의 가쁜 숨을 달래면 위대로운 바위벽에서의 아찔한 육감도, 산을 뚫고 바다로 달리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의지도 가슴을 열어 장엄하게 누릴 수 있다. 이왕 순창에 왔다면 칼바위 능선도 감상했다면 좋으련만 걷잡을 수 없는 욕심으로 고개를 쳐드는 결정 장애를 어쩌나!용궐산 순창군 동계면 강동로에 위치한 용궐산(645m)은 원통산에서 남진하는 산릉이 마치 용이 자라와는 같이 어울릴 수 없다는 듯..

여명 아래 안개낀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_20211221

그래서 담양을 왔다. 기억의 빛바랜 모습에 다시 채색이 필요하여 따스한 겨울 품이 움튼 담양을 왔다. 매끈한 아스팔트와 고색창연한 도시의 불빛이 역겨워 잠시 피하면 감은 눈에 아른거리고, 밟은 땅에 돌이 채여 이미 익숙해진 딱딱한 질감의 문명에 멀리 떠나지 못한 채 습성의 담장을 넘지 못한다. 차라리 잊으라 치면 발길 돌릴 수 없는 매력에 눈이 멀고, 상납하던 영혼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그래서 담양에 왔다. 햇살 나부낄새라 새벽 여명과 세상 빛이 안개로 승화된다. 여유의 세계, 금성산성_20200623 이번 담양 여행의 목적은 국내 최고의 인공 활엽수림인 관방제림과 강천산과 이어진 산자락 끝에 담양 일대를 굽이 보는 금성산성. 소쇄원, 메타세콰이아길, 죽녹원은 워낙 유명 인싸인데다 특 meta-roi..

한 때의 영화, 옥방정류소_20211030

한 때 동해로 가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머무르던 옥방정류장은 높은 답운재를 넘기 전 잠시 동안 긴 한숨을 들이쉬던 길목으로 여기서부터 구부정 고갯길이 시작되지만 이제는 조급한 문명의 직선에 외면당해 과거의 영화를 마냥 기다리는 곳이다. 마을 부근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생수터가 있어 옆에 차를 세워 놓고 한 모금 물을 들이키자 영락없는 생수다. 힘차게 넘치는 생수가 아닌 우물처럼 고여 있는 물을 길러야 되는데 그리 차갑지는 않고 시린이빨이 걱정되는 사람에겐 딱이다. '산삼의 고장 옥방생약수'란 표지석이 있는 것 보면, 그 위에 제사 지내듯 종이컵 물 한 잔을 드려놓은 것 보면 나름 지역 분들이 신성시하는 약수터겠지? 바로 도로 옆이라 물 긷기 편한데 우물처럼 고인 물에 떠있는 건데기를 잘 봐야 되겠다...

깊어가는 통고산 가을_20211029

해 질 무렵 이번 가을의 마지막 페이지에 살짝 책갈피 끼운다. 하루 해가 지고 남은 땅거미와 그 아래 어스름 피어난 가을 물감이 잠들기 전, 흔들어 깨우는 속삭임에 부시시 영근 미소로 울긋불긋 화답하는 인사가 끝나면 겨울 피해 깊은 잠에 빠져 들겠지? 잠시 잡은 손 놓기 싫어 잰걸음으로 길을 타지만 어느새 졸음 참지 못하고 하나둘 가을 등불이 눈을 감는다. 불영 가을 습격 사건_20141101 이제 희귀해져 버린 가을을 본격적인 사냥에 나서기로 한 프로젝트 1탄, 이름하야 불영 계곡 가을 습격 사건 개봉 박두~ 두둥!! 10월의 마지막 밤에 급작스런 회사 일정으로 늦게 끝나 버렸어 ㅠ meta-roid.tistory.com 통고산에서 삼척까지_20151105 여전히 산골에 남아 서성이는 만추의 풍경이 그..

울진에서의 가을 안부_20211029

영양에서 곧장 여기를 달려온 이유, 명소의 가을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닌 이유와 같다. 오래된 것들과 이미 사라져 고독해져 가는 것들의 조화로움에 가을이 깃들어 기억의 액자로 남은 장면을 꼭 만나야만 했다. 하나만 보자면 그리 이채로울 게 없는, 축 처진 나뭇가지와 오래되어 낡고 지독한 인적의 그리움에 찌든 인공 구조물은 두 개가 함께 만나 각자의 공허함을 상충시켜 비움에서 채움으로 극복했다. 통고산에서 삼척까지_20151105 여전히 산골에 남아 서성이는 만추의 풍경이 그리운 가을과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쉬운 발로일까? 바다와 산을 아우를 수 있는 통고산으로 가는 길은 늦은 밤,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 meta-roid.tistory.com 설 익은 가을을 떠나며_20161016 시간은 참 야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