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소소한 절경의 향연, 수주팔봉_20220103

사려울 2023. 2. 9. 03:14

거리에 부담이 없으면서 막연히 성취감을 얻고 싶었다.
그러기에 언뜻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곳, 충주 수주팔봉을 향해 달렸고, 더도 말고 거의 1년 전과 비슷한 감흥을 기대했다.
내린 눈이 얼어 아슬아슬한 충주 초입을 벗어나 수안보 방면으로 달릴 땐 다행히 눈 내린 흔적은 거의 없었는데 뽀송뽀송한 도로 컨디션을 보고 운전하기 수월한 19번 국도 대신 예전 도로인 문산재로 꺾어 서행으로 꼬불길을 올라갔다.

강, 산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오작교, 수주팔봉_20210128

오죽하면 강산이 고유명사처럼 사용 되었을까? 뗄 수 없는 인연의 골이 깊어 함께 어울린 자리에 또 다른 강이 함께 하자고 한다. 태생이 다른 세 개의 사무친 그리움이 심연의 갈망을 이루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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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만 여겼던 곡선이 언젠가부터 걸리적거리고, 불편해져 외면이 남긴 공허만 자리를 지키는 고갯길.
굽이 사이로 사람 살아가는 자취가 있고, 굽이 너머 사람들의 온기는 여전한데 이제는 그마저도 외면의 촉수가 상흔처럼 깊은 그늘을 길게 드리웠다.
다시 찾을 약속을 지켜 새삼 되돌아보면 그 선이 부드러운 붓끝의 아름다운 선율 같았다. 

낙차가 크거나 산세가 험하지 않지만 고갯마루를 넘는 이들에 대한 배려의 종착점은 곡선이었다.

곡선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이 함께 뒤섞여, 그래서 아름답다 단언해도 적절했다.

조용할 거란 예상과 달리 줄지어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빈센조에서 노출된 영향력 덕이란다.
이른 점심을 먹고 도착하자 텅 빈 주차장이었는데 잠시 준비하는 사이 거짓말처럼 차량이 줄줄이 들어오더니 그리 작은 주차장이 아님에도 순식간에 반 정도 들어찼다.
문화 컨텐츠의 파괴력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다행이라면 전날 극심하던 초미세먼지 지수가 보통 수준으로 오른 만큼 반짝 추위가 몰려왔지만 어차피 겨울이라 한파가 몰려오더라도 청명한 대기가 낫다.
이래저래 충주에 정감을 떨칠 수 없어 찾아온 날에 실컷 즐기고 가야지. 

경관이 빼어나다면 굳이 길고 매끈한 현대식 출렁다리에 관심은 없었다.
어차피 한 때를 풍미하는 즐길 거리라 여겼기 때문이고, 그런 시대의 풍미에 무심한 듯 수주팔봉은 경쟁보다 호연지기를 택했다.
비록 짧고 덜 출렁이고 빼어나지 않더라도 쉽게 낡고 싫증 나는 인공 구조물 대신 억겁 동안 추앙받는 경관은 아무리 가공하려 해도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걸 통찰했기 때문이었다.

절묘한 자리에 살짝 올려놓은 전망대는 가는 길에서부터 이곳 진가를 매번 마다 느끼게 해 줬다.
출렁다리와 함께 같은 선상의 높은 자리에 위치한 그 모양새도 멋지지만 역으로 전망대에 올라 지나온 길과 그 일대를 관망하는 것만으로도 수주팔봉의 고유 매력을 확연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처럼 두룽산 정상까지 답습할 결심에 출렁다리를 건너 데크길을 따라가던 중 순창 채계산의 명물을 연상시키는 칼바위 능선이 보였다.

칼바위 능선을 지나 짧은 구간이긴 해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자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잠시 오르던 길에 멈춰 호흡을 가다듬으며 뒤를 돌아보자 출발점과 출렁다리가 보였다.
꾸준히 차가 들어오는 만큼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새 빠지는 차들도 많았다.

짧은 구간이긴 해도 미려하고 첨예한 칼바위를 흘러 넘길 수 없다.

두룽산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보면 이런 기암들은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물고기 비늘 같거나 신선들이 모여 술 한 잔 뽀개는 반주상 같았다.
물론 편평한 바위가 기울어져 있긴 한데 신선들의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어느 순간 꼭지가 돌아 뒤엎었는지도 모르겠다.

바위에 섞인 석영 결정들을 미루어 2기에 걸쳐 다져진 바위임에 틀림없다.

인류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패턴과 질감.

삐쭉 서 있는 바위가 먼 데서 보면 사람 같았다.
올라오느라 욕본다, 마치 그렇게 위로하는 형상이었다.

한동안 앞만 보고 힘겹게 걸음을 옮겼고 정상 도착 전 약간 위태로운 길이 있는 바위를 만났다.
옆이 급경사 낭떠러지라 다리는 살짝 트위스트 개다리춤 시전?

무심한 듯 자리를 지키는 바위에도 많은 생명들이 잉태하고 있었다.
바위에 박힌 석영 결정이 꽤 이쁜 보석 같았다.

정상에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무 틈바구니 사이로 보이는 출발점이 꽤나 까마득해 보였다.
가쁜 숨 몰아쉬며 힘겹게 올랐는데 그래도 결국엔 정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산에 흙이 쌓인 곳이라면 꼭 이런 바위도 견고하게 박혀 있었다.

정상 도착!
오르는 길는 늘 힘들기 마련인데 그걸 무색하게 만드는 길 옆의 수많은 사연들이 형상화된 바위가 무척이나 독특했다.
지구가 뜨거웠던 시절, 이 능선 자체가 거대한 물고기가 그대로 선 채 돌이 되어 버린 것처럼 능선은 날카롭고, 흙 위를 뚫고 선 비늘 같은 바위도 마치 마을처럼 간헐적으로 퍼져있었다.
허리를 굽혀 날카로운 바위에 좀 더 시선을 다가서면 석영의 결정이 뒤섞여 산 자체 형상도 그렇거니와 그 산에 석상처럼 선 바위 또한 범상치 않았다.
물결처럼 겹겹이 입체 패턴이 새겨진 것도 그리 흔한 작품은 아닌데 이런 특이한 형상에 넋이 나가버린 상태로 어느덧 정상까지 올라 텅 빈 세상인 양 무념에 잠시 취했다. 
 
대부분의 산들과 달리 처음 도입부가 상대적으로 힘든 대신 정상과 가까워지면 도리어 완만한 길을 마주하고, 여러 갈래길이 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달리 홑길과 다름없어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다만 꽤 높을 것만 같은 고도는 생각보다 낮아 내 체력의 문제인지 고도계 문제인지... 

정상석 옆에 가칭 연인바위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렇게 봐도 두 연인이 사이좋게 세상을 내려다보는 뒷모습 같았다.

정상을 지나 10~20m 정도 더 진행하면 이런 평탄한 공터가 있는데 여기가 정상석이 있는 자리보다 고도가 높았다.

내려오는 길에 이런 어미바위와 새끼바위도 있었다.
어미에게 기댄 아이 같은 형상인데 유한한 존재라 여긴다면 언젠가 어미바위는 떠나고 아이는 기울어진 상체를 떼어내고 홀로 새 삶을 이뤄야 한다.

출렁다리는 출발이자 도착이라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는데 동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수주팔봉을 만든 달천은 어릴 적 교과서에도 등장했다.
물맛이 으뜸으로 옛날 옛적부터 유명했단다.

수주팔봉을 건너 달천 유원지에서 보는 경관은 완전히 다르다.
차량 출입이 폐쇄되기 전까지 차박의 성지와도 같았다는데 걸어서 출입은 가능한 상태라 멀찍이 주차한 뒤 강변으로 걸어가던 중 전망대 같은 시설 부근에서 몇 마리 냥이를 만났다.

냥이 집사가 되고 나서 녀석들의 불우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들에게 있어 겨울은 혹독한 시련이라 내가 내민 한 줌 밥도 갈증 해소에 불과할 뿐 한 뼘 이 땅에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이지만 근원적인 해결은 거대한 바다를 헤엄쳐 건너는 것처럼 막막하게 보였다.
냥이에 대한 막연한 혐오는 그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생존의 갈망을 편견에 가두고 스스로 타인에 대한 방종의 벽을 쌓는 것이었다.
녀석들이 병을 퍼트리고 음식물 더미를 훼손하여 환경을 저해한다는 편견은 가만히 앉아 편하게 간주하고, 그 명분으로 억압된 굴욕을 녀석들에게 화풀이하는 추한 내면의 발로였다.
인류와 오랜 시간 공존한 생명은 분명 그 역할이 분명할 터, 아주 천천히 녀석들에 대한 인식이 변한 만큼 따스한 손길에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혐오의 그릇된 지식이라도 거두면 된다.

길에서 생활하는 녀석들이라 적절한 경계와 호의가 눈빛에 서려 있었다.

어린 요 녀석은 울 냥이와 같은 품종인데 가까이 다가가면 옆 하수구로 들어갈까 싶어 멀리서만 바라봤다.

턱시도는 처음의 경계와 달리 잠깐 사이 안면을 익혔다고 눈인사를 건넨다.

조금은 대담한 녀석이라 가까이 다가서도 화들짝 도망가지 않고 나중엔 그윽한 눈인사를 곁들였다.

포장마차 같은 식당 옆길이 강변으로 연결된 길이라 그 길 따라 강변으로 걸어가 수주팔봉이 보이는 가까운 자리에 서서 사방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찾던 수주팔봉 전망대는 이제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휑한 흔적만 짓눌렀다.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후다닥 자리를 벗어나는 새떼가 찍혔다.
급한대로 아이폰 울트라 와이드로 찍었는데 비교적 감각적으로 담겼고, 해가 서녘으로 많이 기울어 광량도 적절했다.

강변을 벗어나 주차한 자리로 걸어가는데 바로 옆 움푹 패인 자리는 식당 공터가 아닌 옛유적지였고, 자연 지형을 활용한 흔적과 함께 옆에 아궁이도 있었다.

삶의 흔적, 다 그렇겠지만 충주 또한 인간의 발자취가 많이 뒤섞인 지역이었다.
탄금대가 그렇고, 중원 고구려비가 그랬다.
역사가 오랫동안 신선도를 유지한 곳인데 위험할 땐 산에 의지할 수 있었고, 평화로울 땐 평야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 가능한 지역이며, 더불어 수량이 풍부한 남한강과 달천이 흐르는 곳이었다.
서편에서 시작된 평야, 구릉지형이 충주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급격한 산세로 바뀐다.
그래서 충주는 단조롭지 않고 재밌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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