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F16-55 433

황매산의 분홍 나래_20210428

하루 주어진 시간이 졸음에 힘겨워할 무렵 한참을 달려 황매산에 도착했다. 이미 차량 행렬은 수문을 빠져나가는 물길처럼 줄지어 하산하는 길이지만 다행히 낮은 머물러 떠날 채비는 늑장이었다. 가는 길에 특히나 시간이 걸렸던 건 헤아릴 수 없는 곡선의 휘어진 도로와 그 도로 양편 가로수 터널의 멋진 자태 덕분에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었던 데다 가는 중간중간 차를 세워 굳이 하차 하지 않더라도 나무터널을 사진과 가슴에 담고 싶었던 욕심이 과했기 때문이다. 이제 갓 피어난 신록으로 이런 무성한 점을 찍어 터널을 만들 정도면 녹음이 우거졌을 때는 어떻게 멋짐을 감당할까? 해는 이미 서산마루를 넘어 집으로 돌아가며 땅거미만 희뿌옇게 남겨 두고, 볼그레 얼굴 붉힌 무리들은 사라진 햇살이 그리워 지나는 바람의 옷깃을 부..

봄의 진중하고 경쾌한 발걸음, 해인사_20210428

해인사 가는 길에 함께 걷는 봄의 동행으로 말미암아 미소 짓고, 말미암아 감동한다. 천년 고찰이라는 엄숙한 무게감에 첫 발을 내딛는 기억도 잊고 어느새 봄의 친근한 조잘거림에 역시나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나부끼는 연분홍, 새하얀 손짓에 이끌리다 보면 엄숙 했던 취지는 망각되고 주객은 전도되어 인위로 축조된 사찰은 욕망의 과대포장으로, 천년 시간을 거스른 나무는 진정한 경전이 된다. 봄인데도 벌써 나무 터널은 견고해진다. 보기 힘든 대나무 꽃이라고? 봄의 설렘을 녹색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색깔과 모양일까? 왕벚꽃이 활짝 만개하여 연신 연분홍으로 감염시킨다. 아래 밭을 갈던 보살(?)의 구수한 훈수에 잠시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챙긴다. 바위에 걸터 앉은 철쭉 한 송이. 해인사로 향하는 길에 여러 사찰이 많..

봄마루 정상에서, 오도산_20210428

봄이 늦게 찾아오는 1천 미터 고지에도 결국 봄이 오기는 온다. 높은 고지에 봄이 늦은 건 늑장을 부려서가 아니라 등정하며 깊은 잠에 빠진 생명을 일일이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고, 겨울의 황막한 횡포에 일침을 가하기 위함이다. 오도산 정상에서 언제나처럼 천리안의 능력을 빙의받아 사방을 훑어본다. 육신은 자리에 머무르지만 상상의 날개는 이미 바쁜 날갯짓을 하며 너른 세상을 유영한다. 여지껏 가장 대기가 뿌연 날이다. (오도산 정상에서 천리안의 시선으로_20191126, 우뚝선 한순간, 오도산_20200615) 호수 너머 황매산 조차 어렴풋하다. 전날 머물렀던 휴양림 숙소가 바로 발치 아래 있다. 비록 대기는 뿌옇지만 산 틈틈이 피어나는 신록의 싱그러운 망울은 미세 먼지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는다. 염주괴불주머..

오도산 가는 날_20210427

여행의 출발과 함께 늦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성묘를 꽃피는 춘삼월 끝물에서야 감행했다. 이미 세찬 바람에 잔뜩 실려 세상을 떠도는 송화가루가 자욱하지만 도심을 벗어나 뺨을 간지럽히는 숲 속 향기는 간절한 휴식의 내음과 흡사했다. 매번 방문 때마다 같은 자리에 서서 정독하는 계절의 정취를 보는 재미는 마치 애써 찾는 파랑새의 자취를 쫓는 것 마냥 졸립던 눈마저 초롱해진다. 최종 목적지인 오도산 휴양림으로 출발하여 고령을 지나는 길에 식사를 해결하고 동네를 둘러보던 중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한옥에 발걸음이 멈췄다. 너른 마당 본채와 문간 사랑채는 고전적인 한옥을 그대로 살렸고, 옆채는 현대식의 단촐한 현대식인데 나무를 잘라 인간이 편의에 따라 만든 형태를 보면 꽤 오래전 부터 지붕을 받들어 나무 특유의 무늬와..

나른한 4월 눈_20210405

4월 눈이 내리던 나른한 오후에 봄이 지나던 길목에서 꽃잎의 콧노래를 따라 걷는다. 계절은 등을 보이지 않고 시나브로 이 길을 따라 떠나지만 이미 지난 발자국이 구구절절 아쉬울 때, 그때마다 모든 계절이 머물던 자리에서 피어나는 싹에게서 품은 감사의 씨앗을 추스른다. 얼마나 머나먼 길이기에 떠난 자리의 여운은 이다지도 클까? 퇴근길에 벚나무가 줄기차게 늘어선 길은 때마침 부는 한차례 바람이 햇살과 버무린 눈송이를 휘감는다. 봄의 전령사가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사진들을 연속으로 넘기면 우수수 떨어지는 눈발이 살아서 번뜩인다. 그래도 아직은 눈구름이 두텁다. 봄의 쾌청한 기운에 맞춰 가슴 이끄는 걸음 또한 경쾌하다. 신록이 눈발을 밀어내는데 그 또한 봄의 하나다. 녀석은 하루..

정상을 향한 욕망, 단산 모노레일_20210307

오를 땐 가장 뒷좌석에, 내려올 땐 가장 앞 좌석에. 소문 듣고 찾은 단산 모노레일은 생각보다 한산하다. 국내 최장이라는데 20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가파른 경사를 꾸역꾸역 넘어가다 보면 어느새 지겨워질 무렵에서야 승강장에 도착한다. 길어서 오래 걸리는 것보다 느려서 오래 걸리는 게 더 맞겠다. 정상에 다다를 무렵 급경사 구간이 나오고 얕은 함성도 들리는데 비교적 경사가 급하긴 하나 짧은 구간이고 나머지는 뿌듯한 오르막이다. 호기심에서 타보면 괜찮은데 가장 멋진 경험은 문경 일대 백두대간과 완만한 지표면에 홀로 우뚝 솟아 있던 크고 작은 봉우리를 통틀어 그 경관이 멋지다. 서울과 남부지방에서의 접근성을 이점으로 근래 각광받는 문경은 역시나 백두대간의 큰 품에 기대어 멋진 산세를 쉽게 관망할 수 있다. ..

고립을 넘어선 회룡포_20210306

조만간 만나야 될 낙동강이 그토록 설레고 그리웠던지 흐르던 강도 잠시 주춤하여 어눌한 듯 발걸음도 굽이치어 오히려 그 자취는 휘몰아치는 붓끝처럼 육지 속에 아름다운 섬을 만들었고, 그 환각을 잊지 못해 발길 끊어질 새 없이 소박한 다리가 강 위를 떠다닌다. 회룡포는 그 자체로도 지형이 특이하지만 그를 둘러싼 나지막한 산새 또한 허투루 하게 넘길 수 없다. 회룡포의 풍류 가득한 지형을 볼 수 있고, 그러기 전에 내성천 위를 위태롭게 가로막는 뿅뿅다리는 자연히 걸음을 유혹한다. 회룡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회룡포(回龍浦)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일대에 있는 농촌마을이자 관광지이다. 명승 제16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일대에 ko..

먼 길 떠나기 전, 삼강주막_20210306

강의 두물머리에 옛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던 자취는 덩그러니 터만 남아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야속하게 바라보며 속절 없이 웅크리고 있다. 어쩌면 시간 앞에서 자연도 휘청이는데 사람인들 건재할 수 있을까? 유별난 강바람도 계절 따라 분주히 오갈뿐 무심한 시간에 떠밀린 옛터의 흔적처럼 벙어리 되어 유유한 강물에 투정이다.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두물머리 상류에 회룡포가 있다. 전형적인 겨울의 강변 정취다. 나루배를 재현시켜 놓았는데 이마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삼강의 물결이 한데 합쳐지는 두물머리에 삼강절경? 표지석이 눈에 띈다. 삼강문화단지에 옛 모습을 재현시켜 놓았다. 낙동강을 건너면 행정구역상 문경이고, 이렇게 두 고을을 잇는 달봉교는 특이하게도 전망대까지 설치하여 여행객에 대해 배려해 놓았..

안타까운 절경, 서강 선돌_20210304

함께 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숙명에 구슬픈 서강 줄기는 말없이 흐른다. 어느덧 선돌 머리에 봄을 예고하는 전령사들만 분주할 뿐 여전히 그를 둘러싼 세상은 바람 소리만 사치로 들린다. 산수유 망울이 여차 하면 터질 기세다. 여차 하면 봄이 뿌리 내린다는 것. 양지바른 곳이라 주변을 세심히 둘러보면 봄소식을 품은 흔적들이 보인다. 영화 '가을로'에서 바로 이 구도로 나왔다. 바닥에 넙쭉 달라붙어 매일 조금씩 봄이 전해주는 기운을 영양 삼아 땅을 박차고 나온다.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는 두 수직 바위는 갈망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숙명의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그 슬픔을 절경이라 부르고 감탄이라 되씹는다. 흥행하지 않았지만 소설로, 영화로 가을 매력을 흠뻑 발산한 교과서 같은 '가을로'에 살짝 언급되..

애잔한 강물의 흐름처럼, 아우라지_20210303

더 이상 철마는 달리지 않지만 시간이 견고히 다져놓은 철길엔 레일바이크가 지나며 간이역처럼 잠시 머물러 아직도 식지 않은 추억의 향수를 심어 놓았다. 지금은 비록 두터운 눈에 덮여 있지만 이 길이 섞어 문드러지지 않는 한 출렁이는 바퀴는 철로에 의지한다. 설경 위에 서린 평온. 레일보다 더 높이 쌓인 눈을 밟으며 이리저리 오가는데 초소에서 한 사람이 나와 뭐라고 소리친다. 뭐라는 겨?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만간 열차가 지나가니까 조심하란 게 아닐까? 과거엔 이 철길이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하고 레일바이크를 위해 가끔 달리는 귀여운 열차로 재탄생했다. 애틋한 심정을 아리랑에 녹여낸 정선아리랑의 고향이자 두 강이 바다를 향한 갈망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두물머리가 아우라지란다. 전설과 민담은 괜한 투정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