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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기개, 정이품송_20210121

가는 날이 장날이 바로 이런 말이렷다. 때마침 보은장이라 복잡한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 겨우 차를 세워 놓고 시장통을 방황했다. 분주한 한길과 달리 시장길은 생각보다 썰렁한데 그나마 큰 통로는 행인이 보이지만 살짝 뒷길로 접어들면 장날을 무색케 한다. 그래도 내겐 여전히 신기하고 정감 가득한 곳이다. 재래시장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바로 순대와 먹거리다. 메인 통로인데 진입로가 북적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적하다. 이름 멋지다. 결초보은이라~ 낮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정이품송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서둘러 법주사 방향으로 출발했다. 역시나 빠져나오는 것도 쉽지 않아 짧은 구간에서 한참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겨우 빠져나와 곧장 법주사로 향했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서서히 굵어져 법주사..

겨울을 잊게 하는 산림욕장_20210121

삼년산성 북문에서 바로 산림욕장으로 나아갔다. 너른 공간임에도 시선에 굶주릴 만큼 인적이 드물어 적막과 더불어 내린 눈이 대부분 고스란히 쌓여 있고, 대부분 공간을 채우는 소리는 청명하게 울려대는 새들의 지저귐이다. 가끔 예상 밖의 시설도 있지만 도심 숲과 비교 되지 않는 자연의 녹지와 가공이 적어 친숙한 길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곳곳에 쉼터는 빠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집에서의 접근성이 좋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왜 이제서야 방문했을까 뒤늦게 꽁꽁 숨겨진 숨은 그림을 찾은 성취감도 얻었다. 맨발숲길의 작은 늪과 데크길, 그리고 쉼터가 차분하게 이어져 있다. 뒤돌아 우뚝 솟은 삼년산성의 동북치성을 바라봤다. 꽤나 두텁고 거대해 보였다. 한길 따라 내려오면 극기훈련장과 산림욕대가 있었는데 두터운 낙엽이 쌓..

겨울 바람도 침묵하는 삼년산성_20210121

보은 시가지와 인접한 삼년산성과 삼림욕장은 일전에 방문 했던 충주산성처럼 군민들이 애용하는 녹지며 공원이다. 속리산을 가기 위한 관문인 보은 방문은 처음이지만 어느 제약회사 트레이드 마크인 정이품송과 법주사가 유명하다는 것 외엔 아는 바가 없어 이틀 머무르기로 한다. 미리 여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편이 아니라 대략 유명한 곳만 탐색해 보니 말티재와 삼년산성이 눈에 들어왔고, 때마침 말티재 휴양림을 일찌감치 예약한 뒤 간단히 위치 정도만 파악한 상태로 보은에 도착하여 우선 가장 인접한 삼년산성을 들렀다. 산림욕장 내부는 넓고 잘 다져진 길로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얼마 전 내린 눈과 얼어 붙은 여울이 오로지 한다. 걷기 좋은 탄탄한 길을 버리고 여울 따라 울퉁불퉁한 길로 들어서 걷는데 왠지 매끈한 길..

보은 삼년산성 초입 고분_20210121

밤새 달려 보은에 도착, 급히 허름한 숙소를 잡아 따끈한 바닥에 기절하듯 잠들고 이튿날 일어나 밍기적 기어 나와 삼년산성으로 향했다. 삼년산성 북쪽 숲이 산림욕장의 우거진 숲이 있어 보은군 농경문화관에 주차한 뒤 삼년산성 방면으로 걸어가자 내부에서 뚝딱뚝딱 소리가 들리는 대장간 체험장이 있었다. 대장간 체험장? 바로 앞에도 작은 주차장이 있고, 문간에는 화덕? 아궁이? 같은 게 있는데 저건 그냥 재현해 놓은 거 겠지? 호기심이 울컥 밀려왔지만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기엔 그 호기심이 그리 왕성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대장간 체험장 주차장을 지나자 공원길이 하나 연결되어 있고 그 초입에 산림욕장 안내도가 있는 걸 보면 지대로 찾아오긴 했나 보다. 길 따라 걷는데 눈에 띄는 무덤 같은 게 있고 가까이 ..

섬진강 따라, 곡성_20210120

섬진강만 그 자리에 있을 뿐 완연히 봄과 다른 겨울 옷을 둘러쓴 함허정은 지난해 여름 폭우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아쉬운 대로 주변을 돌며 강바람 짙은 향연 속에 잠시 몸을 맡긴다. 먼 길 달려온 강물은 함허정을 감싸고 잠시 쉬어 가듯 강폭이 넓어지고 웅크리는데 오랜 시간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이도 한탄과 삶의 집착을 내려놓았을까? 겸허해지는 순간 억겁 동안 지낸 강은 스승과 다를 바 없다. 세상 모든 적막들이 모여 쉬고 있는 저곳에 서는 순간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여름 장마 폭우 당시 섬진강 수자원을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강유역에 수많은 피해가 났었던 게 떠올랐다. 서쪽 섬진강에서 반대편인 동녘으로 고개를 돌리면 칼날 같은 동악산 능선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동악산 능선을 넘어 석양이 잠시 숨..

벌판에 솟구친 칼바위 능선, 순창 채계산_20210120

칼바위 능선으로 정평난 채계산은 세상이 온통 설원으로 뒤바뀐 평원과 그 사이를 가르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줄기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에 우뚝 솟은 나지막한 산이다.동강 절벽길 이후 칼끝과도 같은 위태한 길을 걷는 건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찔한 관문 뒤엔 늘 그렇듯 베일에 싸인 절경을 보여주는 답례도 잊지 않았다.언젠가부터 순창을 찾으리라 마음먹은 것도 바로 채계산이 꾸며 놓은 세상이야기를 듣고자함 인데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그 계절 아래 버티고 있는 자연은 같은 관용의 미덕으로 지나는 시간들을 쉴 수 있도록 큰 가슴 한 켠을 비워 놓는다.이제는 칼끝과도 같은 바위 능선에 문명의 도구를 덮어 절경 이면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과대한 위선을 배제하고 살짝 그 위에 배려만 덫대어 놓은 덕..

빛의 언어, 함벽루_20210103

잠깐 주어진 시간에 텅 빈 공원 거리를 산책하며 뺨을 찌르는 겨울 강바람과 잠시 시간을 보낸다. 속삭이는 귓속말처럼 강 너머 공원 불빛은 각양각색의 은은한 스펙트럼을 연주하며 청력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향기를 발한다. 10여 분간 누각에 서서 처음 밟아본 땅의 무지개빛 소리와 코끝 알싸한 바람의 향기, 잠시지만 새로운 공간의 흥겨움에 잠시 냉철한 현실을 잊는다. 잠시도 소홀하지 않고 약속한 때가 되어 불빛이 바뀐다. 강에 기댄 그 컬러가 아른거리며 혀 끝의 달콤한 캔디 같다. 도심가를 등지고 있어 멋진 도시 야경은 기대할 수 없지만 텅 빈 세상에 홀로 선 기분을 선물해 준다. 강가 전망을 적나라게 알려주는 누각으로 빛과 강의 질감이 눈으로 전해진다. 불 꺼진 작은 절을 지나 강변길과 산책로를 걷는다. 계속..

창 너머 새해 일출_20210102

1월 1일은 살짝 흐린 하늘로 인해 적절한 일출을 놓쳤지만 이튿날은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하늘을 보여준다. 매일 뜨는 해라 특별한 일은 없지만 특별한 날의 의미를 덧씌워 연일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스스로 타파하는 시도가 있기에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되뇌이게 되겠지? 그 해 겨울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고, 제야의 종소리와 해돋이는 은둔 속에서 조용히 맞이했었노라고. 산 너머, 바다 건너 솟구치는 태양이 아닌 올해는 특별하다 여기자. 고층 건물과 아파트를 박차고 나오는 특이한 일출이니까.

설경에 함락된 충주산성_20201218

눈이 소복이 덮인 성벽을 따라 걷는 동안 무심한 시간을 탓할 겨를 없이 허공을 채우고 있던 연무와 햇살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일상을 한발 벗어나고, 인파를 잠시 등지고 있던 찰나가 마치 정적에 휩싸인 허공처럼 한결 같이 머릿속을 맴돌던 잡념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뿌연 안개처럼 걷히며 무념의 가벼움에 도치되었다. 대부분의 산성들이 근래 들어 고증된 역사를 발판 삼아 복원되었지만, 그 땅에 서린 처절 했던 흔적과 달리 마냥 평화롭기만 했던 건 어쩌면 수 없이 흘린 피의 궁극적인 신념과 바램 아니었을까? 위태로운 비탈길을 따라 밟는 오르막길보다 더욱 긴장되는 내리막길은 양귀비의 마력에 혼이 나간 나머지 제 생명을 압박하는 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반증하는 만큼 때론 중력이 잡아 끄는 방향을 모르는 게 약이라..

충주의 천리안, 남산 충주산성_20201218

올해 눈과 인연이 많다. 봄의 정점에서는 미리 잡은 여행에 맞춰 뜬금없는 폭설이 내리고, 이번 또한 다를 바 없이 추위를 안고 맹렬한 기세로 눈발이 날렸다. 디딛는 발끝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고, 무심코 걷던 발걸음에 위태로움은 끊임없이 균형을 쥐락펴락하지만 몇 알 굵은 소금이 반찬의 풍미를 더욱 맛깔스럽게 미각을 현혹하듯 현재와 미래, 기억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끈끈하게 뒤섞일 수 있도록 잡념의 티끌마저 하얗게 채색시켰다. 충주 시민이라면 삼척동자도 안다는 산기슭을 오르며 가는 시간의 안타까움마저 잊어버렸던, 찰나 같지만 울림이 깊은 하루였다. 처음 찾아온 곳이라 정확한 진입로를 몰라 헤맬 수 있으므로 충주시무공 수훈자공적비 공영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한 뒤 진입로가 있는 방면으로 걸어갔고, 생각보다 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