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늦게 찾아오는 1천 미터 고지에도 결국 봄이 오기는 온다.
높은 고지에 봄이 늦은 건 늑장을 부려서가 아니라 등정하며 깊은 잠에 빠진 생명을 일일이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고, 겨울의 황막한 횡포에 일침을 가하기 위함이다.
오도산 정상에서 언제나처럼 천리안의 능력을 빙의받아 사방을 훑어본다.
육신은 자리에 머무르지만 상상의 날개는 이미 바쁜 날갯짓을 하며 너른 세상을 유영한다.
여지껏 가장 대기가 뿌연 날이다.
(오도산 정상에서 천리안의 시선으로_20191126, 우뚝선 한순간, 오도산_20200615)
호수 너머 황매산 조차 어렴풋하다.
전날 머물렀던 휴양림 숙소가 바로 발치 아래 있다.
비록 대기는 뿌옇지만 산 틈틈이 피어나는 신록의 싱그러운 망울은 미세 먼지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는다.
염주괴불주머니란 이름의 야생화 군락지는 눈부신 노랑빛결 외에 분주한 벌들 마을 같다.
벌이나 사람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공통 분모가 있나 보다.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키는 철쭉 하나.
바람이 제 아무리 흔들어도 다짐까지 흔들 수 없다.
외길에 들어서 거듭 화사한 꽃에 취한 벌이 분주하다.
카메라가 가까이 있어도 제 할 일에 몰두하여 신경 쓸 겨를 조차 없다.
제비꽃인가?
무튼 매력적인 노랑이다.
한 그루 덩그러니 산벚나무가 서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확실히 바람결에 실린 냉랭함은 있지만 계절의 향기 또한 잊지 않고 전해주는 계절의 여신, 역시나 봄 내음에 살짝 취해보는 게 먼 길 떠나온 보람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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