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철마는 달리지 않지만 시간이 견고히 다져놓은 철길엔 레일바이크가 지나며 간이역처럼 잠시 머물러 아직도 식지 않은 추억의 향수를 심어 놓았다.
지금은 비록 두터운 눈에 덮여 있지만 이 길이 섞어 문드러지지 않는 한 출렁이는 바퀴는 철로에 의지한다.
설경 위에 서린 평온.
레일보다 더 높이 쌓인 눈을 밟으며 이리저리 오가는데 초소에서 한 사람이 나와 뭐라고 소리친다.
뭐라는 겨?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만간 열차가 지나가니까 조심하란 게 아닐까?
과거엔 이 철길이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하고 레일바이크를 위해 가끔 달리는 귀여운 열차로 재탄생했다.
애틋한 심정을 아리랑에 녹여낸 정선아리랑의 고향이자 두 강이 바다를 향한 갈망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두물머리가 아우라지란다.
전설과 민담은 괜한 투정이나 푸념이 아니라 분명 촉발의 도화선이 있기 마련인데 한강의 어엿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이곳에서부터 한양과 비롯된 랩소디는 오랜 삶의 반증에서 단순히 하나의 물길에 그치지 않고 희로애락 또한 비롯되었음을 방증이 아닐까?
비교적 초봄의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음에도 본능에 이끌린 생명의 잉태를 위해 자욱한 모기떼를 보더라도 분명 첩첩 산중이 보호하고 있는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작은 문명 또한 한강 물줄기와 같이 잉태되고 떠내려가며 여러 고을의 문물과 함께 했을 터, 비교적 너른 강변에서 산책하며 소소한 시간의 단맛을 지그시 삼킨다.
온통 눈에 쌓인 주차장에 차를 두고 눈 밟는 재미를 만끽하며 아우라지로 간다.
새로 생긴 흔들다리를 지나자 자그마한 주막촌이 나오는데 현재 휴업 중이라 사람이 있을 자리에 눈이 쉬고 있다.
서둘러 냥이 한 녀석이 숨길래 마루 밑을 보자 두 녀석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숙소에서 밥 좀 가져오는 건데!
사람만 이 자리에 쉬어가란 의미로 벤치를 두지 않았다.
늘 대화가 그립던 벤치에게 눈이 내려앉아 포근한 공감을 나누는 중이다.
아우라지의 얼굴 마담 격인 여인상은 늘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서서 강물이 흘러 서울로 향하는 하류를 응시한다.
얼마나 애틋했으면 시선조차 굳어 버렸다.
비교적 큰 두 개의 강이 만나 하나가 되어 종내엔 한강이 된다.
상류가 벌써 이렇게 큰 물줄기라면 능히 서울까지 갈 정도 되겠다.
좌측은 용평에서 먼 길 달려온 송천, 우측은 검룡소에서 달려온 골지천
예전엔 꽤 큰 고을 아니었을까?
누군가 하얀 설원 위에 사랑의 서약을 해놓았다.
근데 눈 녹으면 이내 사라질 것을.
그저 평온만 남은 설원.
어엿한 한강의 원형을 갖췄다.
원시적인 오작교인가?
강 건너 육각정에 여인상이 서 있다.
어느새 여인이 그토록 바라던 총각이 돌아왔다.
조형이 특징적이다.
현재의 교각을 대신했던 돌다리 사이로 요란한 물길이 지난다.
벌써 모기가 우글거린다.
모기들이 모여 구애를 하는데 난 빠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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